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도보 성지순례와 산행 / 고계연

고계연 베드로 전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입력일 2022-06-28 수정일 2022-06-30 발행일 2022-07-03 제 3301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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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방학을 맞고 일반인들은 여름 휴가철 계획을 짜는 7월이다. 여기저기서 국토순례니 성지순례니 걷기 프로그램들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봇물을 이룬다. 방송통신대학에 다니는 아내도 종강을 하자마자 지난 주말에 목포를 다녀왔다. ‘국토순례 방문단’이란 이름으로 200여 명이 함께한 1박2일의 여정이었다. 버스 타고 수학여행 하듯이 목포와 신안의 명소 몇 군데를 방문했다. 지난 2년여 동안 코로나19로 짓눌려 있던 사람들이 이제 ‘보복 여행’에 나서고 있다.

필자가 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는 가톨릭언론인산악회(가언산)에는 거친 우스갯소리가 있다. ‘주뻑산 우뻑산’이 그것이다. ‘주님은 뻑하면(툭하면, 자주) 산에 가셨다. 우리도 뻑하면 산에 가자’의 줄임말이다. 뒤풀이에서 가끔 등장하는 일종의 구호이자 건배사다. 가언산은 매월 첫 토요일 성지순례 겸 산행을 한다. 서울에서 지하철로 갈 수 있는 곳을 골라 회원들이 함께 걸으며 힐링을 한다.

예수님은 실제로 산에 자주 가셨다. 성경의 몇 대목만 봐도 알 수 있다.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마태 14,23)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루카 6,12) 지금 같은 등산 장비를 챙기고 알록달록한 복장도 아닐 테지만 어쨌든 높은 산에 오르셨다. 무엇보다 일상의 번잡을 벗어나 성부께 기도하기 위함이었다.

가언산은 이달 경기도 광주 천진암성지에 버스를 빌려 다녀온다. 산행에 앞서 몇 주 전 산행대장과 함께 사전답사를 했다. 당일에 길을 잃거나 헤매지 않도록 시간 안배를 하고 코스를 익혔다. 산길을 찾아 숨 가쁘게 걷고 또 걸었다. 이 험한 산등성이를 오르내렸을 이벽·이승훈·권일신·권철신·정약종 등을 떠올려본다. 1779년 주어사와 인근 천진암에서 천주학을 강학하고 한국천주교회의 초석을 놓았던 분들이다. 박해시기에 목숨을 건 그들의 발걸음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산속은 나무 숲 그늘이라 시원했고 등산로는 갈잎이 수북이 쌓여 이색적이었다. 박석고개 표지를 지나 앵자봉에서 감탄사가 절로 터졌다. 사방으로 탁 트인 풍광, 대자연의 웅장함, 숭고함과 거룩함에 하느님을 찬미하게 된다.

안셀름 그륀 신부의 「인생이라는 등산길에서」(생활성서)를 소환해 본다. 다양한 산행 단상과 영적 풍요로움으로 기억에 남았던 책이다. “새로운 길을 걸을 때면 만끽할 수 있는 경험은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산꼭대기에 서면 언제나 가슴이 뛴다. 저 멀리 펼쳐진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시야가 넓어지는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가! 산에 오름으로써 나의 영혼이 하느님께 들어 올려진다고 믿기에 나는 오늘도 산에 오른다.”

“산이 있어(산이 거기 있으니까) 그곳에 간다.” 영국인 조지 말로이가 1924년 마지막이 된 에베레스트 등정을 앞두고 남겼다는 말이다. 다소 투박하게 들릴지 모르나 산악계의 명언으로 남아 있다. 산을 오르거나 평지를 걷거나 마찬가지다. 마침 인천교구에서는 청년도보성지순례가 있었고, 원주교구에선 ‘길 위의 사제’ 최양업 신부님 시복시성을 위한 ‘희망의 순례’를 시작했다. 올해는 여름휴가로 가족과 손잡고 도보 성지순례를 나서 보는 건 어떨까. 성지에서 순교자들과 신앙 선조들의 얼과 숨결을 되새기자. 자신의 믿음을 추스르게 되고 재충전은 덤으로 주어지지 않을까.

고계연 베드로 전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