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특집] ‘공익소송’ 의미와 교회 차원의 노력은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22-07-26 수정일 2022-07-26 발행일 2022-07-31 제 3305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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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존엄성 실현을 위해… 약자의 편에서 공정을 외치다
불합리한 사회제도·국가 권력남용에 맞서 소수자 권익 보호 목적
사형제폐지 위한 헌법소원·기관 대상 정보공개소송 등이 대표적
천주교인권위 운영 소송기금 등 뒷받침 위한 후원과 관심 절실

천주교인권위원회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등이 7월 15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공익소송 패소 시 소송비용 규정의 개정을 요구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제공

지난 7월 15일 장애인들의 권리 향상과 권익 보호를 위해 천주교인권위원회(이사장 김형태 요한 사도, 이하 천주교인권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등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전형적인 ‘공익소송’이다.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전동차와 승강장 사이 간격(단차)에 휠체어 바퀴가 빠져 이동권을 차별받고 있는 문제에 대해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가 패소하면서 소송비용 1000만 원을 물어주게 된 것이 이번 헌법소원의 계기다. 천주교인권위와 시민단체들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권익 확대를 위한 소송인 ‘공익소송’에서 패소하더라도 승소자가 지출한 소송비용을 패소자가 부담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공익소송의 의미와 교회와 신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알아본다.

■ 공익소송이란

공익(公益)소송은 아직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개념이 정의돼 있지는 않다. 사회적으로는 ‘약자 및 소수자의 권익 보호, 국가권력으로부터 침해된 시민의 권리 구제 등을 통해 불합리한 사회제도를 개선하고, 권력의 남용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소송’으로 일컬어진다.

공익소송이 개인 간의 일반적인 소송과 구별되는 핵심개념은 ‘다중의 확산이익’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이다. 소송 제기자가 타인의 이익을 위하거나 자신이 승소를 통해 받는 이익이 타인의 이익으로도 확산될 때 공익소송으로 이해한다. 공익소송은 국가나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제기되는 ‘약자 대 강자’의 구조라는 속성으로 인해 개인이 수행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 공익 법조단체나 공익 변호사가 지금까지 법적 구제를 받지 못한 공적 이익에 대해 새로운 판례를 이끌어 내고자 법원이나 헌법재판소에 제기한다.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박동호(안드레아) 신부는 “가장 약한 존재를 일으켜 세우면 모든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라는 교회정신과 공동선 실현을 최우선으로 하는 가톨릭 사회교리 원리에 의해 공익소송은 교회가 당연히 관심을 갖고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신부는 ‘공익’의 개념과 관련해 “사람들은 흔히 공익을 대중이나 대다수 시민의 이익으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톨릭교회에서 말하는 ‘공’(公)은 다수나 전체가 아닌 가장 약한 자, 소외된 소수자를 의미한다”면서 “정치공동체와 종교의 공통성은 소수의 인간존엄성을 실현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고 공익소송의 정당성도 인간존엄성 실현에서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천주교인권위에서 공익소송을 담당하는 강성준(사무엘) 활동가는 공익소송은 주로 인권, 환경, 의료, 소비자, 노동 분야에서 수행되며, 국민의 ‘알권리’와 투명한 행정집행을 촉구하며 공공기관에 제기하는 정보공개소송도 전형적인 공익소송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한국교회가 앞장서고 있는 사형제폐지를 위한 헌법소원 역시 대표적 공익소송이라고 덧붙였다.

■ 공익소송의 어려움-미래 승소 위한 패소

공익소송은 개인이나 시민단체에 비해 절대 강자인 국가나 공공기관을 상대로 제기하기 때문에 패소하는 비율이 높다. 강성준 활동가는 “정확한 통계를 낼 수는 없지만 소송 제기자(원고)가 패소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소송의 내용이 금전이나 개인 권리가 아닌 법 규정과 공적 제도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고 국가 기관들이 ‘정의 실현’보다 ‘법적 안정성’을 추구하는 속성으로 공익소송의 패소 비율은 높을 수밖에 없다.

박 신부는 이와 관련해 “역사에서 경험하듯이 교회 관점에서는 ‘최고의 정의는 최고의 불의’가 될 때가 많다”며 “법원에서는 법 규정대로 판단하는 것을 정의라고 하지만 법을 앞세운 ‘기계적 정의’가 얼마나 불의한지 우리는 수없이 보아 왔다”고 비판했다. “국가나 공공기관이 사회적 합의로 해결해야 할 사안을 공익소송이라는 이름으로 법정까지 가져가게 하는 현실을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공익소송을 수행하는 천주교인권위를 비롯한 시민단체와 공익 변호사들은 공익소송 패소를 ‘미래 승소를 위한 패소’라고 부른다. ‘그날 그날의 날씨가 아닌 미래의 기후를 판단하는 소송’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공익소송 제기로 현재의 소수 의견이 시간이 흐르면서 미래의 다수 의견이 되고 이것이 결국 법과 제도의 개선, 인권과 인간존엄성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이다.

공익소송의 가장 큰 어려움은 7월 15일 제기된 헌법소원에서 알 수 있듯 패소 시에 부담해야 하는 소송비용이다. 정보공개소송의 경우 대법원까지 가서 패소하면 물어줘야 하는 소송비용은 1300만 원가량이나 된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김조은 활동가는 “현재의 소송비용 규정은 정부와 공공기관을 상대로는 질문을 하지 말라고 위협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공익소송의 희망-‘유현석공익소송기금’

공익소송 패소자에게 비용 부담을 면제하거나 일정액 이하로 제한해야 한다는 논의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국회에는 ‘패소자 비용 부담’ 규정을 개정하는 법률안이 계류 중에 있지만 뚜렷한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공익소송이 금전 부담으로 높은 벽에 가로 막혀 있는 현실에서 천주교인권위가 운영하는 ‘유현석공익소송기금’은 하나의 해답을 제시한다. ‘유현석공익소송기금’은 평생 인권변호사이자 신앙인으로 헌신한 고(故) 유현석 변호사(요한 사도, 1927~2004) 유가족들이 고인의 5주기인 2009년에 기금을 출연해 만들었다. 천주교인권위는 이 기금을 바탕으로 다수의 군 의문사 사건의 진실을 밝혔고, 군사정부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이들을 도왔다. 또한 유치장과 구치소, 교도소 수용자들의 처우 시정을 이끌어 내고 있다.

고 유현석 변호사의 아들인 유이규 신부(프란치스코·작은형제회)는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만든 기금이 10년 넘게 꼭 필요한 공익소송에 쓰이고 있어 감사한 마음”이라며 “유가족들은 앞으로도 기금이 유지될 수 있도록 재정적인 뒷받침을 하겠고, 교회와 신자들도 공익소송에 지지와 관심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권분야에서 기념비적 판결로 평가받는 교도소 과밀수용 피해자에 대한 지난 7월 15일 대법원의 국가배상판결은 ‘유현석공익소송기금’ 지원을 받아 천주교인권위가 수행한 헌법소원에서 2016년 12월 29일 헌재가 ‘과밀수용은 위헌’이라고 결정한 것에 따른 판단이었다.

또한 7월 21일 헌재가 선거기간 중 선거에 영향을 주는 집회와 모임을 금지한 공직선거법 조항은 위헌, 벽보와 현수막, 인쇄물 사용을 금지한 조항은 헌법불합치로 결정해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확대했는데 이 소송도 ‘유현석공익소송기금’ 지원으로 진행됐다.

‘유현석공익소송기금’ 운영 실무를 담당하는 강성준 활동가는 “천주교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들이 드러내지 않고 천주교인권위 활동을 후원하고 계시지만 계속적인 후원과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요청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