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 임선혜

임선혜 아녜스(소프라노)
입력일 2022-08-17 수정일 2022-08-17 발행일 2022-08-21 제 3307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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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당신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나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하고자 하오니 하느님께는 영광이 되게 하시고 저에게는 천국을 허락하소서.”

10여 년 전 어디선가 이 기도를 발견하고 메모를 해 두었습니다. 보자마자 ‘아, 이렇게 기도하면 되겠구나!’ 하고 무릎을 쳤거든요. 찾아보니 「바오로가족 기도서」에 나오는 ‘겸덕을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얼마 후 작곡하는 피아니스트 노영심(마리보나) 언니가 휴가를 보내러 제가 머물던 바르셀로나에 왔길래, 언니에게 이 기도문을 보여 주고 곡을 붙여 달라 청했습니다. 우리는 건반 앞에 나란히 앉아 이렇게 저렇게 불러 보며 뚝딱, 금세 노래를 완성시켰지요. 한국으로 떠나기 전 언니는 작은 오선지 노트에 가지런히 정리한 손 글씨 악보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기도가 노래가 되니 금방 외워졌어요.

당장 무대에 오르기 전 바치는 기도에 추가시켰습니다. ‘음식’ 대신 ‘시간’으로 바꾼 ‘식사 전·후 기도,’ 「가톨릭 기도서」 ‘아침 기도’에 나오는 ‘봉헌의 기도’ 그리고 이 노래를 가장 마지막 기도로 속삭이듯 노래하고 고개를 숙여 ‘영광송’을 바치는 것이죠. 10년이 지나도록 공연 때마다 한 번도 빼먹지 않았을 거예요, 이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기도를요!

저는 운이 좋고 얕은 재주를 제법 여러 개 갖고 있어 무얼 하든 호기롭게, 재밌게 할 자신이 있는 사람입니다. 성악가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네 다섯 개쯤은 될 거라 자신했지요. 그러다 문득 떠오른 한 물음에 몸서리쳤습니다. ‘너에게서 목소리를 거두어 가시면?’ 그 중 하나도 안 남더군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고 점점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 해도, 하느님의 뜻 없이 혼자서는 그 어떤 것도 해내기 힘든, 그분 앞에서 나는 사랑스럽지만 한없이 작은 존재라는 것을요. 잘난 듯 살다가 한번씩 이를 다시 깨닫게 하실 때면 원망도 되고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려워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기도는 낮음을 향한 덕분에 한층 더 높아진 하늘의 청량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고 할까요?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하고 나의 부족함을 고백하니 그것이 곧 겸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낮아짐은 제가 마주한 일의 본질과 초심에서 벗어나지 않게 종종 저를 도와주더군요. 또 두려움과 낮아짐으로 ‘당신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나이다’라고 믿음을 고백하는 순간 천군만마를 얻은 듯 용기가 나는 것은 여전히 기쁘고 신기합니다.

고백이 희망이 되어 돌아오는 이 첫 문장만으로도 충분할 듯한데, 내가 하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할 수 있다니요! ‘그리고 ‘천국을 허락해 달라’는 청으로 기도를 마칠 때면 마치 어린 아이가 아빠에게 조르는 듯한 느낌마저 드는데요. ‘아마 이게 내가 청해야 하는 최상의 선택이겠지?’하며 공연 전 미소를 짓게 되는 것도 이 기도 덕입니다.

가톨릭교회에는 이와 같이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기도 샘플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타교 신자들로부터 ‘꼭 그대로 해야 하냐’는 물음을 받기도 하는데요. 저에게 이 기도들은 ‘등대’와도 같습니다. 제가 삶 안에서 바치는 기도가 어디로 향해야 할지 알려 주는 환하고 든든한 등대 말입니다!

임선혜 아녜스(소프라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