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사제로 살아가는 보람 / 정연진 베드로 신부

정연진 베드로 신부,홍보국 부국장
입력일 2022-08-23 수정일 2022-08-23 발행일 2022-08-28 제 3308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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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 없이는 잠을 청하기 힘든 어느 여름날이었다. “따르릉~” 전화가 울렸다. 동이 틀 무렵 내 방에서 휴대전화가 아닌 유선 전화가 울린다면 미사 시간이 임박하였음을 알리는 수녀님의 전화일 확률이 높다. 나는 화들짝 놀라 번개처럼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인사보다 사과가 앞섰다. “정말 죄송합니다. 수녀님…, 지금 바로 나갈게요!”

그러자 수녀님은 “그게 아니고요!”라며 다급히 내 말을 가로막았다. 처음 겪어보는 전개에 당황하여 멍하니 서 있었더니, 수녀님께서 말씀을 이어가셨다. “신부님, 다름이 아니라…, 지금 급히 병자성사 요청이 들어왔는데 가능하시겠어요?” 미사에 늦은 것이 아님에 안도하며 시계를 보니 새벽 3시50분을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아이 그럼요. 당연하죠! 나가서 준비하고 있을게요.”

서둘러 성당에 도착하니 병자성사에 필요한 것들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이윽고 성사를 요청한 분이 성당 안으로 들어왔는데, 폐암으로 인해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음에도 매일 미사에 나와 열심히 성가를 부르시던 자매님이셨다. “제가 급히 입원하게 되었는데, 꼭 병자성사를 받고 가야 할 것 같아서요. 이렇게 이른 시간에 부탁드려 죄송합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는 그분께 나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니, 죄송해하실 필요가 없다고 말씀드리면서 병자성사를 정성껏 거행했다. 그러나 며칠 후 자매님께서 하느님 품으로 떠나시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준비한 장례미사를 마치고 유가족과 인사를 나누는데, 유가족 대부분이 신자가 아님에도 나에게 다가와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어머니를 닮아 집안 전체가 훌륭한 성품을 지녔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유가족 대표가 나를 찾아왔다.

“어머니께서 병원에 입원하신 날, 기분이 너무 좋아 보이시더라고요. 왜 그렇게 기분이 좋으시냐고 물었더니, 오늘 아침에 신부님이 병자성사를 주셨는데 지금 일어나서 춤이라도 추고 싶을 만큼 기쁘다고 하셨어요. 그러시더니 임종 직전에는 이런 말씀도 하시더라고요. 병자성사를 받았으니, 두렵지 않다고…, 기쁘게 하느님께 갈 수 있을 것 같다고요. 정말 행복하다고 말씀하시고는 떠나셨어요. 신부님 정말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사제로 살아가면서 어느 때에 보람을 느끼냐고 묻곤 한다. 그러면 나는 ‘성무 활동’을 할 때라고 답한다. ‘참 시시한 대답이구나’하며 실망한 표정이 역력할 때는 위의 이야기를 전해드리곤 한다. 그러면 고개를 끄덕이며 내 대답의 의미를 이해하고는 쉽게 공감해주셨다.

사제는 사제의 삶에 고단함을 느끼다가도 신자들이 하느님을 체험할 때면 모든 피로가 녹아내린다. 성무 활동이 겉으로는 단조롭고 시시해 보이지만 가장 강렬한 이유다. 본당 생활은 사제 삶의 꽃이라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 가지 간절한 생각이 떠오른다.

‘아! 나도 꽃을 피우러 본당에 가고 싶다.’

정연진 베드로 신부,홍보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