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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아무것도 너를 / 김영주 니코메디아의 베드로 신부

김영주 니코메디아의 베드로 신부,제1대리구 서천동본당 주임
입력일 2022-10-25 수정일 2022-10-25 발행일 2022-10-30 제 3316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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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너를’이라는 성가를 아시나요? 성가의 가사 말은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께서 자기 기도서에 끼워놓고 자주 보셨던 구절이라고 하는데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박경자(암브로시아) 수녀님께서 독일 파견 당시 성녀의 전기에서 이 글을 접하셨는데, 당시 힘든 시기를 보내고 계셨던 수녀님께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수녀님께서는 한국에 돌아와 김충희(호세아) 수녀님께 성녀의 글을 보여주시며 곡을 부탁하였고, 아름다운 성가 ‘아무것도 너를’은 그렇게 두 수녀님을 통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이가, 또한 숱한 일이 다가왔다 떠나가곤 합니다. 어떤 때에는 왔는지도 모르게 지나가는가 하면, 어떤 때에는 많은 상처를 남기고 지나가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에는 잊지 못할 따스함을 남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녀께서는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십니다. 결국 다 지나가고 사라지기 마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허나 모든 것이 순간임을 알고 있을지라도 막상 그 상황 안에서는 그것을 알아차리거나 인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혹은 끝내길 싫어하는 집착이 저를 흔들어놓곤 합니다. 아직도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위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부족한 사람이기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당연한 것이 아니냐며,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앞에서 혼란스러워하시지 않으셨냐라고 이야기한다면 군색한 핑계일까요?

그런 저에게 위의 성가는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네는 것 같습니다. 지나가는 것을 잡으려 하지 말길, 지나갈 것에 사로잡히지 말길, 바래야 할 것이 따로 있음을 잊지 않길, 불변하는 그것을 바라라고 이야기를 건네는 것 같습니다. 만약 지나갈 것을 놓지 못한다면 정작 소유해야 할 것을 소유하지 못하게 되겠지요.

그렇다고 다가오는 것들이 가치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것은 행복을 줌으로써 어떤 것은 저의 한계를 보게 함으로써 제게 의미가 되어줍니다. 그리고 그러한 유의미가 제게 없다 할지라도 세상 모든 것은 하느님의 섭리를 담고 있기에 그것만으로도 아름답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만 하느님의 것을 내 것으로 하고자 하는 마음이 갈등을 야기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하느님께서 불러주시는 것을 받아 적었을 뿐 선율을 만들기 위해 고민을 하지 않았다는 김충희 수녀님의 말씀처럼 ‘만약 그것이 하느님께서 제게 주신 선물이라면 자연스럽게 다가오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함께하여 봅니다. 그리고 그 선물은 소유하려 하지 않을 때 더 큰 은총을 주고 말이지요. 그렇기에 오늘도 성가를 읊조리며 감사하되 소유하려 하지 않길 소망해 봅니다.

김영주 니코메디아의 베드로 신부,제1대리구 서천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