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길 / 박천조

박천조 그레고리오(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입력일 2022-11-29 수정일 2022-11-30 발행일 2022-12-04 제 3321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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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관심과 프로그램 준비하시는 신부님의 소개로 11월 들어 서울 흑석동성당에서 매주 수요일 진행되는 ‘흑석동 강학회’에 가고 있습니다.

교재는 「복음과 공동선」인데 강학회 내용은 가톨릭 사회교리에 관한 내용을 4복음서 말씀을 통해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4복음서 주해서를 이전에 읽어 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공부는 오감(五感)이 모두 활용돼야 효과가 큰 것 같습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도 듣고 입으로도 흥얼거려야 이해도가 높아진다는 생각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함께 참여하시는 분들 중에는 저처럼 교구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출석하는 자매님 일행이 계십니다. 한번은 자매님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인 삶을 들어 보면서 어떻게 저런 상황 속에서 시간을 내서 이 먼 곳까지 올 수 있을까 놀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다행히 직장이 서울이라 퇴근 직후 가볼 수 있지만 그분들께서는 반나절 이상의 시간을 투자해야 올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분들께서는 강의 듣는 시간을 매우 기뻐하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는 1770년대 말 눈 속을 헤치고 주어사를 넘어 ‘천진암 강학회’에 참여했던 이벽 성조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아울러 진리를 밝히고자 함께 그 길을 걸으셨던 신앙선조들의 모습도 말입니다.

남북관계의 어려움이 지속되다 보면 ‘민족화해’라는 단어에 대한 교우들의 소극적인 반응을 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성경 말씀은 인간사의 변화에 좌우되는 것이 아님에도 인간이기에 현실적인 모습에 반응하고 생각이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같습니다.

그럼에도 성경 말씀에 따라 엄혹한 현실 속에서도 진리의 길을 굳건히 가셨던 240여 년 전 신앙선조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래서 저는 ‘길’이라는 단어와 관련된 글귀들을 자주 읊조려 보곤 합니다.

“갈 길이 따로 있습니까. 아직 못 가 본 길이 갈 길입습죠.”(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루쉰 ‘고향’)

“길은 내 앞에 놓여 있다. 나는 안다 이 길의 역사를.”(노래 ‘길’)

‘흑석동 강학회’에 뚜벅뚜벅 참여하는 발걸음처럼, 저도 민족화해라는 역사의 발걸음에 제 발을 올려 봅니다. 여러분도 함께 이 길을 걸어가 주시길 기원합니다. 아멘.

박천조 그레고리오(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