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내가 인간이 아니라고요? / 정민

정민 안드레아(한국언론진흥재단 경영기획실장),
입력일 2022-11-29 수정일 2022-11-29 발행일 2022-12-04 제 3321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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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로봇을 만듭니다. 처음에는 인간을 ‘닮지 않은’ 로봇입니다. 그런 로봇에게는 주로 인간이 기피하거나 직접 할 수 없는 일이 맡겨집니다. ‘로봇’(robot)의 어원이 체코어로 ‘노동’, ‘노예’, ‘힘들고 단조로운 일’을 의미하는 ‘robota’인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은 인간과 ‘가장 닮은’ 로봇을 만듭니다. 강하고 단단하지만 무식한 로봇에서, 약하고 유연하지만 생각하는 로봇으로 진일보합니다. 그 끝은 어떤 모습일까요? 작가의 상상력은 이제,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김영하의 장편소설, 「작별인사」(복복서가, 2022)입니다.

주인공 ‘철’이는 인간과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입니다. 심지어 자신이 인간임을 추호도 의심치 않던 기계였습니다. 이름처럼 ‘철’학을 공부하고 윤리를 학습합니다. 즉, “인류와 인공지능을 연결하는 상징적 존재”(185쪽)입니다. 쉽게 말해서 ‘갈 때까지 간’ 로봇과 인간과의 화해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소설에서 인간과 로봇은 상대의 멸종을 위해 싸웁니다. 그 배경은 ‘미래’이지만 곧 닥칠 우리의 ‘현실’ 같아 보입니다.

주인공 로봇, ‘철’이는 ‘선’이라는 이름의 인간-그마저도 인간배아를 복제해 만든 클론(clone)이지만-을 만나 함께 역경을 겪으며 ‘인간다움’을 체득합니다. 그는 몸체를 잃는 위기 속에서도 ‘의식’만으로 네트워크를 넘나듭니다. 그 후, ‘다시’ 만들어진 ‘몸’에 들어간 그는 이미 늙어버린 인간, 선을 만납니다. 망가진 로봇, 병든 클론, 그리고 개와 닭과 같은, 공존하는 동물들과의 ‘아름다운’ 공동체 생활 끝에 그도, 그녀도 죽음에 직면합니다. 그는 인간인 선과 달리, 네트워크를 떠다니는 ‘의식’으로 영생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선택합니다. 아니, 그 로봇은 ‘재활성화’를 포기합니다. 꿈꿔온 ‘인간다움’을 선택하면서 세상에 ‘작별인사’를 보냅니다. 로봇 이야기일 뿐인 소설을 읽던 저는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저는 ‘인간’임이 분명합니다.

임영태의 「여기부터 천국입니다」 (문이당, 2005) 역시 인간의 ‘복제 이후’를 상상한 소설입니다. “나는 무엇인가? …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다”(임영태의 책 117쪽), “나는 무엇일까? 기계라는 거겠지.”(김영하의 책 91쪽) 두 책 모두 주인공 자신이, “너는 인간이 아니다!” 라는 통보가 사실임을 깨닫는 순간의 고통을 실감나게 표현합니다. 두 책을 읽은 독자라면 스스로 ‘인간’임을, ‘인간으로 대접받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닫습니다. 두 작가는 어쩌면, 그 말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대림 2주일은 인권주일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인간답게’ 존중받고 차별 없이 평등해야 합니다. 인간 존중과 인권 보호는 복음의 요구입니다. 인간은 모두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적 질서 안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로봇을 ‘인간답게’ 만들기 이전에, 인간 누구라도 ‘인간답게 살 권리’를 침해받는 일은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과학도 윤리적 책임과 함께 진보해야 합니다.

그리스의 시인 소포클레스가 쓴 「안티고네」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두렵고 무서운 것은 많지만 아무것도/인간보다 더 두렵고 무서운 것은 없나니.” 인간을 믿긴 하지만 두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정민 안드레아(한국언론진흥재단 경영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