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많이 알려지지 않은 교회사] 張貞溫(장정온) 院長修女(원장수녀) 共産軍(공산군)이 앗아가

周美
입력일 2023-01-02 수정일 2023-09-13 발행일 1966-01-23 제 503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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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遺德聖母修女會(유덕성모수녀회)서 길이 빛내고

영원한 도움의 성모회 수녀들은 외부활동보다 내적 생활의 충실을 무엇보다 소중히 하면서 자신의 완덕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것은 학(學)과 덕(德)을 겸비하여 후배들에게 수덕생활이 어떤 것임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준 바 있는 초대 성모회 수녀원장 장 악네다(貞溫) 수녀의 영향력이 지배적이었다고 들었는데 현재 동회 수녀원의 수련장직을 맡고 있는 강 베드루 수녀는 어디까지나 악네다 원장수녀의 뜻을 이어야 할 의무가 자기에게는 있다고 하면서 악네다 원장수녀가 공산군인들에게 끌려가던 당시의 일을 생각만 하면 가슴이 뭉클해져서 견딜 수 없다고 한꺼번에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장 수녀는 서울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1922년 「뉴욕」의 「메리놀」 수녀원 본원에서 수련을 마치고 「메리놀」회 수녀가 되었다.

1927년에 귀국하여 평양 서포에서 「메리놀」 수녀들과 함께 일하고 있었다. 「메리놀」 수녀들은 한국인 장 수녀의 놀라운 신심생활에 항상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지금도 수녀원 성당벽에는 장 수녀의 이름과 사적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제2차대전이 벌어지자 일본인들의 시달림에 견딜 수 없어 「메리놀」회 미국인 수녀들은 모두 본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 「메리놀」 수녀원장은 그동안 한국인 수녀 양성을 하고 있었는데 이를 맡아서 할 것을 장 수녀에게 그리고 부원장으로 강 베드루 수녀를 지명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장 수녀는 초대 성모회수녀원장수녀가 되었다. 하지만 미국수녀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고 나니 곧 경제적인 고통에 부딪쳤다. 그야말로 굶주림의 시련이 다가왔다. 그당시는 돈을 가지고도 식량을 마음대로 살 수 없는 형편이었으니 얼마나 일반사람들의 생활도 어려웠겠는가 짐작할 수 있겠다. 너무도 심한 굶주림 속에서 수련생들이 애처롭게 여겨졌던 원장수녀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돌아가도록 하가는 허락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한사람도 가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을만큼 장 수녀의 학과 덕을 겸비한 지도력은 대단했다.

온순하고 착하면서도 의지가 굳었으며 말없이 실천에 옮기는 과단성 양순하기 그지없으면서도 매서운데가 있었고 그 매서움을 그대로 나타내지 않고 덕으로 양순하게 다스려 나갈 때 모든 수련생들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속에서 생사를 같이할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1950년 10월 4일 평양에서 90리 떨어진 송림리에서 공산군인 세사람에게 끌려간 후 세월은 거침없이 흘러갔지만 오늘날 성모회 수녀들의 가슴속엔 모두 장 원장수녀의 뜻이 그대로 살아서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6·25동란이 나기 전 공산군은 주교나 신부를 잡아가두고 5월 15일 수녀원을 해산시켰다. 원장수녀는 종합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척추 「가레스」를 앓은 일이 있었는데 그때도 그랫다. 이때 베드루 수녀의 언니는 십리길이나 되는 곳에서 매일 식사를 날랐다. 그만큼 장 원장수녀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왔다. 병원에도 오래 있을 수 없게 되자 이집 저집 숨어 다녔지만 숙박계 없이는 하루밤도 잘 수 없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송림으로 우거진 마을 송림리에 가서 숙박계를 하고 교우집에 묵게되었다. 이때 장 원장수녀 · 베드루 수녀 · 헤레나 수녀가 함께 다녔다. 10월 4일이었다. 어슬어슬했을 저녁시간에 군인 셋이 마당에 들어서면서 큰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집에 장정온이 있지?』 평양 내무성의 명령으로 찾는데 아주 훌륭한 분이어서 우리가 데려다가 병도 고쳐주고 잘 대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베드루 수녀는 지금 척추염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 다음날에 다시 와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래서 달구지를 미리 준비해가지고 왓다고 하면서 소달구지를 가리켰다.

약 두시간 가량 입씨름을 했지만 군인들은 물러나지 않고 방으로 뛰어들었다.

『베드루 수녀! 나는 주의 뜻이니 가야해! 수녀는 남아서 수녀원을…』 이렇게 한마디 남기고….

장 원장 뒤를 따라서 베드루 수녀가 갔다. 10분쯤 갔을 때 군인 하나가 베드루 수녀 가슴에 총을 대고 너는 내일 오도록 하라고 위협했다.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장 악네다 수녀는 순교했음이 확실하다고 전해주었다. 장 원장수녀는 장면 박사의 매씨(妹氏)다.

周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