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연중 제3주일·하느님의 말씀 주일·설 -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박용욱 미카엘 신부,대구대교구 사목연구소장
입력일 2023-01-16 수정일 2023-01-17 발행일 2023-01-22 제 3328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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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민수 6,22-27 /  제2독서  야고 4,13-15 / 복음  루카 12,35-40
재물에 대한 욕망 가득한 세상 속
하느님께 기대는 삶 사는 신앙인들
주님이 주실 참된 보상 기다리며
새해 하느님의 축복 안에 머무르길

니콜라스 마스 ‘게으른 종’.

올해부터 나이 세는 방법이 만 나이로 통일되었습니다. 이제는 나이 먹는 게 싫어서 떡국을 물릴 일도 없어진 셈입니다. 사실 광대한 세상에서 작디작은 존재일 뿐인 인간에게, 나이 한두 살이 그다지 큰 의미를 지니지 않을 터입니다. 제2독서에서 말하듯, 사람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야고 4,14)같은 존재니까요. 아무리 계산이 빠르고 철두철미한 모사꾼이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제 앞일을 다 헤아리지는 못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희 날수를 헤아리도록 가르치소서. 저희 마음이 슬기를 얻으리이다”라고 기도하는 화답송 시편은, 제 수명을 단 하루도 제 힘으로 늘릴 수 없는 인간의 겸손한 고백입니다.

인간은 앞날뿐만 아니라 지난날과 오늘을 헤아리는 데도 서투릅니다. 많은 이들이 지난날 기울였던 자신의 수고와 노력은 과대평가하고, 하느님과 사람들로부터 받은 것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했다고 투덜거립니다. 내가 누리는 오늘이 결코 내 힘만으로 얻어진 것이 아닌데, 마음대로 써도 되는 나만의 소유인 양 허투루 보내기도 합니다. 그처럼 한편으로는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며 셈이 빠른 척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하루 앞도 헤아리지 못하는 우리에게 새해 첫날 복음은 우리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하느님 안에서 짚어보도록 초대합니다.

먼저 루카복음 구절은 우리가 어디에 희망을 두고 무엇을 바라야 할지 알려줍니다. 오늘 복음 구절을 포함한 루카복음 12장 전체와 16장은 현세적 재물에 대해서 줄곧 말합니다. 재물은 예나 이제나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던 안전장치였습니다. 또 재물은 쓰는 사람의 욕구를 채우는 단계를 넘어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세상이 그러하니, 차안대(遮眼帶)를 쓴 채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욕망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도 늘어갑니다. 어쩌면 더 많은 보상과 더 많은 재물을 추구하는 영혼의 기갈(寄褐)은, 실은 불안한 미래 앞에서 흔들리는 나약함의 다른 표현일지 모릅니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재물이라도 쌓으면 평안과 평화를 얻을 수 있으리라 착각하는 것이지요. 오늘의 나를 살게 해주신 하느님의 은총과 다른 이들의 수고를 외면하고, 또 내일의 나를 살게 하시는 하느님의 보호를 잊으면서 인간은 재물과 현세적 보상에 집착합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또 다른 형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내주셔서, 재물이 아니라 하느님께 기대는 삶이 어떤 것인지 알려 주셨습니다. 하느님 백성의 역사 안에는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현세의 보상에 매달리지 않으며 뚜벅뚜벅 신앙의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가진 것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 하느님을 따른 아브라함부터 이집트 노예살이를 끝낸 모세, 그리고 수많은 예언자들이 그랬습니다. 결정적으로 하느님께 온전히 의지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1-2)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결정적으로 알려주신 것은, 하느님께서 어떤 상황, 어떤 처지에서든 우리를 지켜주시고 함께하시며 이끌어주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설교와 기적과 치유로 뭇 사람들의 주목을 받던 성공의 시간에만 하느님과 함께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함께하심을 실감하기 어려웠던 병자, 죄인, 배척받는 이들과 더불어 계시면서 그분의 현존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결정적으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의 순간까지 시종일관 하느님께서 함께하심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 곧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삶이 하느님으로부터 왔으며 하느님과 함께하고 있고 또 하느님 안에서 완성되리라는 것을 배우고 깨친 이들입니다. 오늘날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 가운데도 재물이나 현세의 보상에 관계없이 하느님께 의지하며 제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채색 소박한 옷차림으로 수도생활에 매진하는 이들, 양들을 위해서 제 것을 아끼지 않고 헌신하는 사목자들, 가정과 직장에서 남이 알아주든 말든 제 몫을 해내는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이들이 오늘 복음이 말하는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루카 12,36)일 것입니다. 그들이 기대고 바라는 참된 보상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어주실”(루카 12,37) 하느님 바로 그분뿐입니다.

이 참된 보상을 기다리며 설날 미사에 바치는 본기도는 제1독서에 등장하는 아론의 축복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 새해 축복들은 우리가 새해에 받을 복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주님께서 지켜주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평화를 베푸시리라”(제1독서; 민수 6,24-27) 올 한해, 주님의 축복 안에 머무시길 기도합니다.

박용욱 미카엘 신부,대구대교구 사목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