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인생 이모작과 버킷 리스트 / 박천조

박천조 그레고리오(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입력일 2023-01-16 수정일 2023-01-17 발행일 2023-01-22 제 3328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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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중년의 나이에 이르다 보니 직장생활에 대한 마감과 이후 삶에 대한 고민들이 드는 때입니다. 아무래도 소속된 직장에서 정년까지 있을 것을 기대한다는 건 과욕이겠지요.

자의건 타의건 언제고 한 번은 다가올 시간이지만 아무리 준비를 잘 한다고 해도 막상 닥치면 여러 혼란과 좌충우돌이 있을 것 같습니다. 미리 잘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면 상황이 닥쳐야 고민들이 구체화될 것도 같습니다.

이후의 삶은 ‘먹고사는 문제의 준비’와 ‘못해 본 것 해 보기’로 나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먹고사는 문제의 준비’는 ‘인생 이모작’으로, ‘못해 본 것 해 보기’는 ‘버킷 리스트’(Bucket List)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의 준비’면에서 보자면 하고 싶은 일, 즉 민족화해에 기여하면서 수입을 얻는 현재와 같은 직업군에 종사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후의 삶은 가치관과 수입을 얻기 위한 경제활동이 분리된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인생 이모작’만큼이나 요즘 고민해 보는 것은 ‘버킷 리스트’입니다. ‘버킷 리스트’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적은 목록이라는 점에서 처음에는 노는 측면에서 정리해 봤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신앙적인 측면에서 리스트를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중 우선 두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첫째, 제가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 신앙공동체를 만들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단톡방을 만들어 아프거나 힘든 직장 동료를 위해 함께 기도하자고 청했더니 벌써 호응해 주고 계십니다. 둘째, 국내 성지순례하기와 북녘 성지 알아보기입니다. 주교회의가 지정한 국내 성지와 사적지 등이 167곳으로 모두 돌아볼 수는 없지만 틈틈이 다녀볼 생각입니다. 아울러 저는 북쪽의 본당 터와 순교지도 틈틈이 알아볼 생각입니다. 오늘날 그 공간들이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구글 어스’와 같은 것들을 활용해 위치라도 알아보고 싶습니다.

제 인생의 좌우명처럼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영화 ‘빠삐용’의 대사입니다. “내 죄가 뭐냐”고 억울해 하는 빠삐용에게 검사는 “인생을 낭비한 죄”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먹고 사는데 게으른 것뿐 아니라 신앙인으로서 게으른 것도 지옥에 갈 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일단 국내에서 순례를 해 보되 북쪽에도 그 지향을 두어 보겠습니다.

박천조 그레고리오(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