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10·29 참사 100일, 남겨진 이들의 목소리

이소영 기자
입력일 2023-02-07 수정일 2023-02-08 발행일 2023-02-12 제 3330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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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지현씨의 어머니 김채선씨가 2월 3일 충남 당진 자택에서 지현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0ㆍ29 참사가 발생한 지 100일이 지났다. 희생자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거리에서 여전히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촉구하고 있고, 이 같은 현실은 추운 날씨에도 계속되고 있다. 하루아침에 자녀를 잃은 그 부모와 가족들은 지난 100일을 어떻게 지내 왔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또 사회가 ‘우리’로서 함께해야 할 역할들은 무엇일까.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고(故) 김지현씨(프란치스카ㆍ향년 27세) 어머니 김채선씨(엘리사벳·55·대전교구 당진 본당)

“왜 못 돌아왔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을 뿐…”

갈 수 있는 거잖아요. 이태원에. ‘왜 갔느냐’가 아니라, ‘왜 못 돌아왔느냐’고 물어야죠. 저도 처음엔 ‘왜 갔어’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래요. 방치한 거잖아요. 살려달라고 전화했어도 조치를 안 했다잖아요. 안전할 줄 알고 믿고 간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에요. 해마다 축제가 열렸고, 거리두기 해제로 사람 많을 것도 예상된 곳이었어요. 그래서 지현이에게 말하고 싶어요. 미안해하지 말라고.

지현이는 애교, 정이 많은 애예요. 집에 올 때도 ‘엄마~’하고 뽀뽀하면서 들어왔어요. 10월 22일에도 26일이 아빠 생신이라 평일에 못 오니까 미리 와서는 아빠·엄마한테 영화 티켓 끊어 줘서 다녀왔더니, 케이크 촛불 켜 놓고 기다리면서 깜짝 파티 해주고. 정 많고 세심해서 주변 지인 알뜰살뜰 챙기고, 그날도 같이 간 친구랑 손을 놓쳤는데 연락이 안 되니까 친구 찾으려고 다시 갔다가….

학교 다닐 때도 늘 베풀고, 지현이 소식 듣고 한 콜센터 직원분은 우셨어요. 대부분 전화 그냥 끊는데, 지현이는 바빠도 ‘1시쯤 연락 다시 주실 수 있을까요?’ 물어보고 그때 연락받아서 친절하게 답변 다 해주고, 그래서 그분이 그날 하루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면서. 선했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고.

저도 겪어 보니까 누구도 예외가 없어요. 안전은 스스로 지켜야 된다 싶더라고요.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어요. 알려 줬으면 좋겠어요. 왜 그날 인파 관리가 안됐는지, 지금도 하루하루 지내고 있지만, 잠도 못자요. 남편과 정신과 치료받으면서 약 먹고 매일 기도하는데, 약 안 먹고 자려 한 날에는 뜬눈으로 지새웠어요. 의사 선생님은 말씀하시더라고요. 첫 번째 약은 소통이고 공감이고 대화, 위로라고.

서명 운동 동참해 달라고 나섰을 때 외면하고, 2차 가해하는 사람들 있었는데 내 아픔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우리 일이잖아요. 따뜻한 관심 가져 달라고 말하고 싶어요. 물질만능주의, 이기주의가 인간 안에 선한 마음, 진심까지 메말라가게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분향소에서 애써 주시는 봉사자분들, 함께해 주시는 신자분들 보면 그분들이야말로 영웅이에요. 지현이가 ‘엄마, 성당 가셔야죠’해서 성당도 다시 다니게 됐는데, 평생 기도할 거예요. 사람 함부로 대하지 않고 서로 공감하고 함께 아픔을 느끼고 사랑하는 선한 사회가 돼 가기를.

故 유연주씨의 아버지 유형우씨가 2월 6일 연주씨의 다이어리를 보고 있다.

■ 고(故) 유연주씨(가타리나ㆍ향년 21세) 아버지 유형우씨(미카엘·53·서울 청구본당)

“매일 밤, 끙끙 앓는 모습의 딸 아이 꿈을 꿨어요”

연주가 제 옷을 잘 입었어요. 그날 일어났는데 제 러닝셔츠를 거꾸로 입었더라고요. ‘입으려면 똑바로 입고 나오지’ 이러면서 ‘오목이나 한 게임’ 하면서 같이 두고, 일대일로 무승부로 두고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어요. 자다 일어나 부스스한 모습에 제 옷 거꾸로 입고 아빠한테 그 자상한 표정….

당연히 안전이 보장되는 줄 알았던 거죠. 그런 일이 있을 거라면 안 보냈고, 가지도 않았겠죠. 연주는 의협심이 강해서 경찰 공무원도 꿈꿨고, 마지막 가기 전날까지도 「다시 태어나도 경찰」이란 책을 읽고 접어놓고 갔더라고요. 자기 슬픈 것보다 상대방 감정 먼저 생각하고.

‘그런 애들한테 뭐 그러느냐’는 말들이 있는데, 주변 자료들 다 정리하면서 봤어요. 결국 연주더라고요. 너무 고맙고 그냥 눈물 날 정도로 열심히 살아준, 다른 애들도 열심히 살다가 잠시 놀러 갔다가 사고를 당한 애들이더라고요. 알려야겠다고 생각했고, 참사 경위에 대해 진상 규명이 될 줄 알았어요. 길지 않은 시간 내에.

답답해요.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는 거예요. 미사 봉헌하고 나면 ‘연주 하느님 품 안에 있으니까 편안하다’ 하는데, 밖에 나와 세상을 보면 너무 힘들고 답답한 거예요. 다 받아들이고 용서할 준비가 돼 있는데, 하루하루 지나가는 게…. 2차 가해로 애들, 연주를 욕하는 게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요. 매일 밤 꿈에 마지막으로 만났던 그 모습으로 연주가 27일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나타났어요. 숨을 거두는 모습, 아파서 끙끙 앓고 있는 모습 똑같이.

누구나 한 번 간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연주 갔을 때는 정말 힘들더라고요. 사람이 느낄 수 없는, 느끼지 말아야 할, 그런 슬픔과 고통이에요. 장례 치르는 날 엎드려서 울고 있는데, 가슴 언저리 심장을 무슨 송곳 같은 걸로 막 찌르는 듯한 고통이 밀려오는 거예요.

그러면 안 되잖아요. 사람은. ‘시체팔이’라면서 그러는 건 유가족 가슴에 대못을 박는 거예요. 심판받겠죠. 주님께서 마음을 다 움직여 주실 거예요. 저는 믿어요. 인파 관리를 매해 하는데 그날은 왜 인력이 그것밖에 없었는지, 신고가 6시34분부터 계속 있었는데 왜 출동을 안 했는지 궁금증을 풀어 주면 좋겠어요. 어떤 것도 사람보다 먼저일 순 없어요. 인파 관리가 잘 되고 사람이 가장 우선인 사회가 되길 기도하면서 주어진 삶을 살다가 가려고 합니다. 연주 만날 때까지.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