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프란치스코 교황 콩고민주공화국·남수단 순방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23-02-07 수정일 2023-02-08 발행일 2023-02-12 제 3330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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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분쟁의 땅 위로하며 그리스도인 ‘평화의 양심’ 촉구
막대한 천연자원 보유함에도
만성 빈곤 시달리는 현실 개탄
착취·폭력으로 분쟁 일으키는
서구 선진국 지도자들에 경고

내전에 의한 피해자 만나 위로
청년들에 부패 거부할 것 권고
타종교 지도자들과 일치기도회
비폭력 저항과 평화의 길 선포

5일 남수단 주바 존 가랑 묘역에서 봉헌된 교황 옥외미사 중 신자들의 춤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CNS

프란치스코 교황의 2023년 첫 해외순방지는 콩고민주공화국(이하 민주콩고)과 남수단이다. 교황은 1월 31일~2월 5일,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억압과 착취, 갈등과 분쟁, 극도의 빈곤 속에서 살아가는 두 나라를 찾아 ‘평화의 순례’를 이어갔다.

이번 순방은 지난해 7월로 예정됐었지만 교황의 건강 문제로 미뤄졌다. 무릎 통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교황의 건강을 고려해 일정이 조정됐고 양국 수도인 킨샤사와 주바 인근으로 제한됐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고통을 위로하고 정의와 자비, 평화와 화해를 촉구한 교황의 호소는 아프리카의 변화를 위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됐다.

풍부한 자원, 분쟁과 빈곤의 아프리카

민주콩고와 남수단은 모두 막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민주콩고는 풍부한 광물자원과 수력 발전, 넓은 경작지, 다양한 생물종, 세계에서 두 번째로 거대한 숲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 64%가 하루에 2.15 달러 이하로 살아간다. 남수단도 막대한 석유 매장량과 경작지를 보유하고 있지만 빈곤과 만성적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1월 31일 민주콩고를 방문한 교황은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에 대해 경고했다. 교황은 민주콩고 수도 킨샤사에서의 첫 연설에서 전 세계 지도자들을 향해 “민주콩고에 손대지 말라! 아프리카의 목을 조르지 말라!”며 아프리카 땅의 천연자원을 착취함으로써 그들의 ‘평화와 번영의 미래’를 박탈하지 말라고 말했다. 또 외부 세력과 민주콩고 정치 지도자 모두에게 “폭력의 악순환을 멈출 것”을 촉구했다.

1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민주콩고 킨샤사 교황청대사관에서 폭력 피해자들을 만나 위로하고 있다. CNS

폭력 희생자들을 위로

교황은 순방 이틀째인 2월 1일 민주콩고 동부지역 내전 피해자들을 만나 위로했다. 1994년 80만 명이 희생된 르완다 학살 이후 민주콩고에도 여파가 밀려왔다. 120여개 이상의 무장 반군이 광물이 풍부한 동부지역을 폭력으로 뒤덮었고 550만 명 이상이 난민으로 전락했다.

착취는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 이뤄진다. 이들은 헐값에 천연자원이 묻혀 있는 아프리카의 땅을 매입해 채굴함으로서 불의한 이익을 얻고, 그 과정에서 폭력과 분쟁이 야기된다.

교황은 “사람들이 강간당하고 살해되는 동안 폭력과 죽음의 원인인 상업이 번창하는 것은 추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흔히 부족간 다툼을 민주콩고의 빈곤과 폭력의 원인으로 간주하는 시각을 넘어, 서구 선진국 다국적 기업들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청년들에게, “부패에 저항하라”

교황은 이 같은 착취를 가능하게 만드는 부패한 정치를 지적했다. 2월 2일 교황은 킨샤사 ‘순교자 경기장’(Stade des Martyrs)에서 6만5000여 명의 청년들에게 “여러분의 손을 깨끗이 하고 부패에 저항하라”고 말했다.

수십 년 동안 만연한 부패를 목격해온 젊은이들은 교황의 지적에 환호하며 “부패 거부”를 연호했다. 전체 인구의 67%가 만 24세 이하인 민주콩고에서 86세 고령의 교황에게 환호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마치 세계적인 록스타의 공연을 방불케 했다.

교황은 청년들에게 “미래는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콩고에서는 인종과 부족 간 분쟁으로 인해 600만 명이 희생됐다. 교황은 젊은이들이 이러한 ‘잊혀진 학살’의 현실을 자각하고 편견과 증오의 사슬을 끊어버릴 것을 호소했다.

2일 민주콩고 킨샤사 순교자 경기장에서 열린 젊은이들과의 만남 행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젊은이들. CNS

더 이상의 피흘림은 없다!

2월 3일, 교황은 민주콩고를 떠나 남수단 수도 주바로 향했다. 영국성공회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총회 의장 이언 그린쉴즈 목사가 ‘평화의 순례’에 합류했다. “더 이상의 피흘림, 더 이상의 분쟁과 폭력, 파괴는 없다. 이제는 새로운 땅을 건설할 때입니다.”

이 자리에는 2019년 4월 교황이 아픈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발에 입맞췄던 정부 지도자 살바 키르 대통령이 영접 나왔고, 반군 지도자 출신의 리크 마차르 제1부통령은 별도로 교황을 알현했다.

내전 끝에 2011년 독립한 남수단은 2013년부터 정부군과 반군의 유혈 사태가 본격화됐다. 40만 명이 희생됐고 400만 명의 피란민이 발생했다. 2018년 평화협정, 2020년 2월 연립정부 구성에도 불구하고 분쟁의 불씨는 남아있다.

교황은 “전쟁의 시간을 뒤로 하고 평화의 여명이 떠오르게 하자”고 권고했다. 키르 대통령은 모든 분쟁 당사자들이 참석하는 평화 회담 재개를 약속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산 에지디오 공동체가 중재한 일체의 평화 회담을 중단한 바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의 양심’

프란치스코 교황과 저스틴 웰비 대주교, 이언 그린쉴즈 목사는 각각, 그리고 함께 비폭력과 평화의 길을 선포하며 그리스도인들은 분쟁과 갈등 속에서 ‘평화의 양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3명의 종교 지도자는 2월 4일 남수단 독립운동가 존 가랑의 묘역 광장에서 일치 기도회를 열고 분열의 역사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교황은 “예수가 전해준 분명한 가르침은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예수를 따라 평화의 길을 함께 걸어가자”고 권고했다.

이들은 일치 기도회에 앞서 약 2000여 명의 국내 난민들을 만났다. 교황은 이들의 고통을 위로하며 “난민촌에서 태어나 생활한 어린이들은 집, 고향, 뿌리와 전통에 대한 기억이 없다”며 “미래는 결코 난민촌에 있지 않으니 지금까지와는 다른, 더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고 말했다.

“무기를 내려놓고 평화를 건설하자”

6일간의 민주콩고와 남수단 순방 기간 동안 교황은 두 차례의 옥외미사를 거행, “무기를 내려놓고 평화를 건설하자”고 촉구했다. 교황은 순방 이틀째인 2월 1일, 100만 명 이상이 운집한 민주콩고 수도 킨샤사 은돌로 공항에서 주례한 미사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평화의 양심이 되라는 소명을 받았다”며 “무기를 내려놓고 평화를 건설하자”고 말했다.

순방 마지막 일정이 된 미사는 남수단 수도 주바의 존 가랑 묘역에서 거행됐다. 교황은 7만여 명이 참례한 이날 미사 강론에서 “과거의 잘못으로 인해 우리의 심장이 피를 흘리더라도 상대를 악으로 응징하지 말자”며 “진심으로 서로를 수용하고 사랑하자”고 말했다. 이어 “증오와 복수의 무기를 내려놓자”며 “모든 부족과 인종 공동체들을 서로 적대시하는 만연한 반목과 증오, 혐오를 극복하자”고 말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