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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가난한 이들에게 우선적 선택을 / 정희성 베드로 신부

정희성 베드로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입력일 2023-02-07 수정일 2023-02-07 발행일 2023-02-12 제 333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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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가난한 이들에게 우선적 선택’이라는 표현은 신학생 때부터 언제나 듣던 말이었고, 예비자교리 시간 가운데 특별히 사회교리를 가르치면서도 언급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언제나 보다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그들을 위해서 무언가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본당 예산 일정 부분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써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본당 사목을 하다 보니 이 표현을 실현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본당 신부였던 제 의지 부족 때문이기도 했고, 도움을 주고자 하는 가난한 이들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 모으기가 어렵기도 했습니다. 또한 도움을 나누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제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본당 안에는 언제나 일들이 많고, 드러나는 일들에 중심을 두다 보면 가난한 이들에 대한 고민은 본당의 사목적 고민 뒷부분으로 밀려났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부분은 드러나기가 쉽지 않기에, 본당 신부가 먼저 다가서지 않으면 다른 봉사자들도 주저하게 됩니다. 그 책임자인 본당 신부가 봉사자들에게 “열심히 하세요”란 말만 하고 다른 일에 열중하였으니, 봉사자들이 일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도움 줄 이들을 찾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가난한 이들인가’에 대한 고민부터, 본당 신자들로 한정할 것인지 혹은 지역으로 대상을 넓힐 것인지 기준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것들에 대해 공동체 안에서는 여러 의견이 존재했습니다. 도움을 직접적으로 나누는 것 자체도 어려웠지만, 도움받는 이들이 느끼는 불편함도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도움을 받는다는 것 자체도, 받는 이 입장에서 심적으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사회복지분과와 본당 신부만 알고 진행하고자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분들에게는 성당이 더 이상 편하게 와서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쉽지는 않았지만 그런 고민은 우리가 해야 하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몇 년 전 교구 내 한 본당에서 본당 신부님과 공동체 결정으로 본당 재화의 일부를 교구 전체의 가난한 이들과 나누기로 하고 개별 본당으로 공문을 발송한 적이 있습니다. 신자 여부를 가리지 않고, 한정된 재화를 나누기 위한 기준을 세워서, 개별 본당에서 필요하면 신청하라는 공문이었습니다. 그 공문은 제게 하나의 방법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덕분에 저 역시 본당에서 공동체 동의를 얻어 구역 내 동사무소와 함께 나눔을 실천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작은 일이었지만, 교회가 세상 속에서 해야 할 일을 한 느낌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분명 쉽지 않지만, 그래도 세상의 더욱 가난한 이들을 먼저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나눌 수 있는 교회가 되길 희망해 봅니다.

정희성 베드로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