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특집] 4대 종단 성직자들이 함께 노래하는 ‘만남중창단’

염지유 기자
입력일 2023-02-07 수정일 2023-02-07 발행일 2023-02-12 제 3330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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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하모니 이루는 기적 체험했죠”
방송에서 만난 인연으로 시작
평화의 메시지 전하기 위해 결성
노래로 교감하며 형제애도 깊어져

노래뿐 아니라 봉사도 함께할 계획
종교가 세상 속 쉼터 될 수 있도록
필요로 하는 곳 어디든 찾아갈 것

지난해 12월 22일 서울 서초동 서리풀아트홀에서 첫 공연을 하는 만남중창단. 왼쪽부터 박세웅 교무, 성진 스님, 김진 목사, 하성용 신부. 만남중창단 제공

개신교의 김진 목사, 불교의 성진 스님, 원불교의 박세웅 교무, 천주교의 하성용 신부(유스티노·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SBS 라디오 방송 ‘시사특공대’에서 처음 만난 성직자들은 JTBC 토크쇼 ‘다수의 수다’ 등 다양한 방송에 함께 출연하며 솔직하고 유쾌한 수다로 대중에게 인기를 얻었다. 이들이 새로운 형태의 만남을 시작했다. 중창단을 결성해 노래에 도전한 것. 이처럼 다양한 종단의 남성 성직자들이 중창단을 꾸린 것은 처음이다. 4대 종단 성직자들은 왜 마이크를 잡았을까? 종교의 벽을 뛰어넘고 사인사색 매력으로 오늘날 빛바랜 단어 ‘평화’에 다시 색을 입히려 모인 ‘만남중창단’을 소개한다.

평화의 메시지 전하고 싶은 ‘만남’

“사실 종교가 교리로 화합하는 건 어렵죠. 종교간 만남을 강조하지만 형식적 만남이 되기 쉽고요. 노래는 달라요. 벽돌처럼 단단한 마음을 부들부들하게 만드는 매개체거든요.”

지난해 여름, 성진 스님이 김진 목사, 박세웅 교무, 하성용 신부에게 중창단 결성을 제안했다. 방송으로 만난 인연이지만 만남을 지속하며 사회에서 선한 역할을 하고 싶었다. “여러 악기가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소리를 내듯 서로 다른 우리도 조화를 이뤄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들이 연습 첫날 부른 곡이 노사연의 ‘만남’이었고, 종교가 달라도 만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첫 발걸음이 되길 바라며 중창단 이름을 ‘만남’으로 정했다. 종교인 비종교인 모두 공감할 수 있도록 대중가요만 부르기로 약속했다.

김 목사는 “우리가 각 종교를 대표하는 인물들은 아니지만 종교가 다른 네 사람이 노래하는 모습 자체만으로도 ‘평화’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중창단은 종교인들의 화합뿐 아니라, 서로를 향해 높은 벽을 세우고 있는 사람들이 벽을 허물고 다가가는 상징이 되고 싶었다. 각박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에 평화와 위안을 전하려는 중창단은 노래라는 열쇠로 닫힌 문을 열고 함께하는 여정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19일 BTN 라디오에 출연한 만남중창단. 만남중창단 제공

형제애 샘솟는 음치 탈출기

“솔직히 처음 만나 노래해 보고 절망했어요.”(웃음)

노래로 하모니를 이루려 만난 네 사람은 한숨으로 하모니를 이룬 첫날을 떠올렸다. 고음 불가에 음정 불안, 박자 놓치기는 일쑤였다. 박 교무는 “다들 악보를 열심히 보셔서 저 혼자 못 따라갈까 걱정했는데 알고 보니 가사만 읽고 계신 거였다”고 웃으며 말했다.

모두 특훈에 돌입했다. 겨울 토크 콘서트를 계획하고 2주에 1번씩 서로의 종교 장소에서 돌아가며 모였다. 계이름과 박자부터 배우고 개별 연습에 매진했다. 계절이 무르익어 갈수록 중창단의 소리도 차츰 하나로 모였다.

하 신부의 제안으로 중창단을 지도하게 된 군종교구 앗숨성가대 홍민영(비비안나) 지휘자는 매일 숙제를 내며 호랑이 선생님을 자처했다. 그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며 매주 발전하시는 네 분 모습을 보며 정말 보람됐다”고 밝혔다. 최광희(베로니카) 반주자는 이들을 위해 곡마다 맞춤형 편곡을 했다. 그는 “각자 파트 소화도 버거워 상대의 소리를 듣지 못하던 분들이 점차 서로 소리를 듣고 화음을 이루는 것이 기적같았다”고 표현했다.

연습하며 갈등은 없었느냐고 묻자, 중창단 전원이 “스트레스를 받을 법도 한데 이상하게 그저 재밌기만 했다”며 “성직자로서 미흡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서로 인간적인 모습을 내보이니 그 자체로 행복하고 형제애가 충만해졌다”고 말했다.

네 사람은 노래를 통해 점차 교감했다. 기쁜 노래도 땅만 보고 불러야 했던 시절은 지나가고 미소를 머금고 옆 사람을 바라보며 노래하는 여유도 생겼다. 그렇게 노래는 함께하는 대화가 되고, 서로를 향한 화답이 됐다.

가는 길 다를 뿐 종착지 같은 동반자들

네 사람이 함께할 수 있는 건 서로를 향한 배려와 존중 덕분이다. 성진 스님은 “다른 종교를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상대를 이해한다는 건 높은 경지여서 이르기 쉽지 않다는 것. “믿음의 색이 달라도 거부감을 갖지 않고 마음을 열면 전부 이해하지 못해도 만날 수 있어요. 상대에게 내 것을 알려주려고 욕심내지도 말아야 해요.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 역할에 집중하며 배려하기만 하면 충분해요.”

모든 종교는 화합, 사랑, 자선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같다. 하 신부는 “교리를 내세우면 편 가르기를 하게 되지만, 같은 가치를 지향한다는 사실에 집중하면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박 교무는 가정에서 종교대통합을 하고 있다. 박 교무 아내가 신심 깊은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 “제 아내 스텔라의 신앙이 더 굳건해지길 바라요. 산 정상에 올라갈 때 다양한 길이 있잖아요. 길은 다르지만 진리라는 종착지는 결국 같거든요. ‘표현만 다르지 서로 같은 말을 하고 있구나’라고 항상 느껴요.”

내 것을 주장하지 않는 태도는 오히려 상대가 나를 더 깊게 이해하게 했다. 김 목사는 “세 종교의 가르침 안에서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고, 이미 알고 있던 것도 더 확연히 깨달으며 영성이 확장되는 경험을 했다”고 설명했다.

만남중창단이 서울 용산동 원광사에서 노래 연습을 마치고 홍민영 지휘자(맨 왼쪽), 최광희 반주자(맨 오른쪽)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만남중창단 제공

복잡한 세상 속 쉼터 되고 싶어

중창단은 노래뿐 아니라 사회봉사도 함께해 나갈 계획이다. 각자 방송 출연료 절반을 중창단 기금으로 내놓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의미 있게 쓰기로 했다. 지난해에는 동짓날을 맞아 영등포 쪽방촌을 방문해 쌀을 기부하고 직접 팥죽을 쒀서 배달했다. 오는 3월에는 중증장애인 시설에도 방문한다.

중창단은 “앞으로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 신부는 “행사하듯 노래하러 다니는 게 아니라 남녀노소 위로가 필요한 이들과 대화하고 고민상담도 하며 마음을 나누겠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연말 진행한 첫 공연에서 만남중창단은 해바라기의 ‘행복을 주는 사람’을 불렀다. 서툴지만 한 소절 한 소절 곱씹듯 노래하는 네 사람을 보며 관객들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네 사람이 진심을 담아 나눈 대화와 정답게 노래하는 모습은 그렇게 관객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성진 스님은 “종교가 결코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지만, 복잡한 세상에서 벗어나 잠시 쉴 수 있는 공원 같은 역할은 할 수 있다”며 “중창단이 공원처럼 사회적 쉼터, 마음의 쉼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네 사람은 중창단을 아름답게 지켜내기 위해 서로 더 배려하고 각자 자리에서 더 열심히 살겠다고 한목소리로 다짐했다.

종교라는 벽을 뛰어넘고 행복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고 싶은 만남중창단. 어두운 세상에 평화의 빛이 한줄기 깃들길 염원하며 오늘도 함께 노래한다.

※만남중창단 연습 과정과 첫 공연 영상은 유튜브 채널 ‘사피엔스 스튜디오’의 ‘님과함께2’ 방송에서 볼 수 있다. 인스타그램(mannam_quarter)을 통해 무료공연 신청을 할 수 있다.

염지유 기자 gu@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