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공동의 집 돌보는 평신도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3-02-07 수정일 2023-02-07 발행일 2023-02-12 제 3330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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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환경, 시급하고 장기적 문제… 평신도 자발적 대응 확산
서울평단협, 탄소중립 실천 집중
제주교구, 전국 최초 생태환경위원장 평신도 임명
인천교구, 환경 현안에 평신도 주도적 역할 모색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 1,1)

지구가 하느님이 우리에게 남긴 공동 유산임을 알리며 시작되는 성경. 창세기는 인간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창세 2,15) 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성경에 담긴 의미 있는 말씀을 읽기만 하고 덮어버린 탓에 우리는 하느님의 유산을 잘 돌보지 못했다. 그 결과 인간과 지구의 관계는 점점 벌어졌고, 우리 삶을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삶의 전환이 필요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성경 말씀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피조물 보호를 위한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실천은 그런 의미에서 더욱 값지다.

지난 1월 제주를 방문한 인천교구 가톨릭환경연대 임원들이 하논분화구를 둘러보고 있다. 제주교구 생태환경위원회는 인천교구 가톨릭환경연대와 연대해 환경운동을 펼치고 있다. 제주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오충윤 위원장 제공

■ 평신도 생태사도직 활동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회장 안재홍 베다, 담당 조성풍 아우구스티노 신부, 이하 서울평단협)는 올해 사업 목표 중 하나로 탄소중립 실천을 꼽았다. 피조물 보호를 실천하고자 평신도 단체 차원에서 뜻을 모은 것이다. 이들이 능동적으로 실천에 나선 것은 교회의 탄소중립 동참이 시급한 문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울평단협과 한국평단협이 공동 주관하는 이번 사업은 크게 기후변화 대응 전문가 양성, 탄소중립 인식 개선 교육과 데이터 구축으로 구성됐다.

탄소중립 목표연도는 2050년. 27년 뒤 교회에서 나오는 온실가스가 ‘0’이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데이터 확보다. 서울평단협은 서울대교구 본당 2곳과 청주교구 본당 1곳을 선정해 온실가스 배출 현황을 12월부터 조사하고 있다. 전문 업체에 위탁해 각 본당 건물의 전력, 수도, 냉·난방 사용량을 조사할 뿐 아니라 폐기물과 재활용 쓰레기양, 전자기기, 각종 소모품 사용 현황을 파악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3개 성당이 2040년까지 감축해야 하는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 데이터를 확보, 교회의 탄소중립 실천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향후 온실가스 배출량 조사는 전국 본당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제주교구 평신도들의 생태사도직 참여도 눈에 띈다. 전국 최초로 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에 평신도를 임명했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20일 임명된 오충윤(야고보·제주교구 서귀포본당) 위원장은 “주님께서 생태사도직으로 이끄셨다고 느껴 순명하는 마음으로 다른 평신도들과 서로 나누면서 함께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 제2공항 건설과 하논분화구 호수개발 등 생태 관련 이슈가 산재한 제주도. 이곳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성직자, 평신도 구분 없이 제주도가 ‘제주다움’을 지킬 수 있도록 생태운동에 뛰어들었다.

제주교구 생태환경 활동의 중심에는 틀낭학교가 있다. 평신도로 구성된 생태환경위 위원들이 기획하고 운영하는 틀낭학교는 제주도 지역과 관련된 환경문제와 실천방법을 공유하면서 수강자들이 생태영성활동가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틀낭학교를 통해 매년 생태영성활동가들이 양성됨에 따라 교구 내 하늘땅물벗 단체가 늘어나는 순기능도 일어나고 있다.

인천교구 가톨릭환경연대도 평신도 생태사도직 단체의 뿌리에 닿아있다. 1993년 가톨릭환경연구소로 시작해 1999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꿔 활동해온 가톨릭환경연대는 2003년 교구 환경사목부와 분리된 이후 평신도 생태사도직 활동을 본격화했다. 지역 환경정화활동은 물론이고 환경교리학교, 녹색기행단을 통해 신자들이 환경문제를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이끌었다. 또한 새만금, 경인운하, 4대강 건설 반대, 탈핵 운동 등 전국 차원의 환경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교회가 사회 안에서 해야 할 일을 모색했다.

1월 11일, 한국평단협에서 주관한 탄소중립교회 실천 아카데미에서 신자들이 ‘생태영성의 실천 과제로서의 탄소중립’ 강의를 듣고 있다.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제공

■ 생태적 회개 시급하다는 인식

생태사도직의 선봉에 있는 평신도들은 “교구나 본당에서 내려오는 지침을 따르는 데에 머물지 않고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것이 생태사도직”이라고 입을 모았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당장 실천해야 하는 시급한 문제라는 것이다.

서울평단협 생태환경위원회 김종환(바오로) 위원장은 “탄소중립은 세계가 주목하는 패러다임으로 전 세계교회에서도 동참해야 하는 필수 사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모든 본당의 탄소중립 동참도 빠르게 이뤄져야 하기에 관련 연구를 평신도 차원에서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제주교구가 효과적인 생태환경사목을 위해 선행한 것은 각 본당의 생태환경사목 지표를 모은 것이다. 본당의 생태실천과 영성, 교육활동을 조사한 결과 각 본당의 생태사목이 ‘본당활동 계획’에 머물렀다는 한계를 파악했다. 교구는 조사에 그치지 않고 생태환경위원회의 운영 주체를 평신도로 바꾸면서 문제해결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을 찾고자 했다. 생태환경은 시급하지만 장기적으로 내다봐야 하는 분야다. 생태환경 사도직 활동에 있어서도 스스로 지속할 단체와 조직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제주교구는 담당 신부가 생태환경위원회와 동행하고 있지만, 주도적인 역할은 평신도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조직의 외적인 변화는 내적인 변화로 이어졌다. 같은 시선으로 생태환경 문제를 바라보기에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을 공유하기가 수월했고, 보다 다양한 의견이 나오게 됐다는 게 제주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오충윤 위원장의 설명이다. 또한 제주교구장 문창우(비오) 주교를 필두로 교구에서 교구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평신도에게 맡긴 것이 이들의 책임감과 자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오 위원장은 “신부님이기에 편하게 하기 어려웠던 말들을 같은 평신도들끼리는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보니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게 된 것 같다”며 “신부님께서 영성적인 부분을 끌어주실 수 있다면, 우리 평신도들은 신자들 사이에 깊숙하게 들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각 교구 혹은 본당의 사목지침에 따라 생태환경사목에 편차가 생기는 단점을 평신도사도직단체 차원에서 사업을 추진하면서 보완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서울평단협 생태환경위 김종환 위원장은 “각 본당 사목회와 접촉이 용이하기 때문에 사업이 빨리 전파되고 속도가 붙을 수 있었던 것 같다”며 “환경문제는 우리 일상과 밀접한 문제이기 때문에 신자들이 책임감을 갖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는 것이 평신도사도직단체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