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우리 시대의 성인들] (5)프란치스코 마르토(1908~1919)·히야친타 마르토(1910~1920)

염지유 기자
입력일 2023-02-27 수정일 2023-02-28 발행일 2023-03-05 제 3333호 1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축일 2월 20일
파티마 성모님 만난 어린이들은 자기 삶을 주님께 온전히 봉헌했다
어린 나이에도 메시지 지키려
죄인 회개 위해 고행하고 기도
발현 100주년인 2017년 시성
평화 위한 자기 봉헌 배워야 

2017년 5월 13일 프란치스코 마르토와 히야친타 마르토의 시성식 전날, 순례객이 포르투갈 파티마대성당 앞에 운집해 있다. CNS 자료사진

1917년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전 세계가 대혼란에 빠진 시기였다. 많은 나라가 전쟁으로 고통받고, 러시아는 사회주의혁명을 거치며 무신론의 제국이 되고 있었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때, 포르투갈의 조용한 시골 마을 파티마에 사는 세 목동에게 성모님이 찾아왔다. 마누엘 페트로 마르토와 올림피아 부부의 9살 아들 프란치스코 마르토(St.Francisco Marto, 1908~1919), 7살 딸 히야친타 마르토(St.Jacinta Marto, 1910~1920), 그리고 이들의 사촌 10살 루치아 도스 산토스였다. 성모님께서 당신의 사람으로 선택하신 어린 성인들의 삶을 살펴본다.

죄인들을 위해 너희 자신을 희생하여라

1917년 5월 13일. 뜨겁고 강렬한 빛이 즐겁게 놀고 있는 세 목동을 비췄다. 빛 한가운데 성모님이 묵주를 들고 온몸을 감싸는 찬란한 흰색 망토를 걸치고 나타났다.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너희 자신을 희생해다오. 하느님의 은총이 너희가 받을 고통을 위로할 것이다.”

성모님은 10월까지 매달 13일, 모두 여섯 차례 발현해 세 목동에게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기도와 보속을 거듭 부탁했다. 특히 전쟁이 끝나고 세상에 평화가 오도록 묵주기도를 많이 바치라고 당부했다. 성모님 발현 1년 전인 1916년에는 천사가 세 목동 앞에 세 차례 나타나 이들의 길을 준비했다. 천사는 ‘용서의 기도’를 가르치고 “인류에게 모욕을 당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며 하느님께 위로를 드리라”고 했다.

성모님은 이들에게 세 가지 비밀을 전했다. 지옥의 실재,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예언, 교황의 고난에 관한 내용이었다. “지옥에 있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고 희생을 바치면 많은 영혼이 구원받을 것이다. 전쟁을 막기 위해 러시아를 티 없이 깨끗한 내 성심에 봉헌하고 매달 첫 토요일에 보속의 영성체를 해라. 그렇지 않으면 비오 11세 교황 때 더 참혹한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결국 티 없는 나의 성심이 승리하고 교황이 러시아를 내게 봉헌하며 평화의 시대가 올 것이다.” 교황의 고난이란, 흰옷을 입은 주교가 총탄에 맞아 쓰러진다는 내용이다. 이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피격 사건으로 해석되고 있다.

성모님은 자신의 발현을 모든 이가 믿도록 10월에 큰 기적을 보여주겠다고 세 목동에게 약속했다. 소문이 세상에 알려지자 10월 13일 7만여 명 군중이 파티마의 코바 다 이리아로 몰려들었다. 약속대로 발현한 성모님은 “나를 기념해 성당을 짓고,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며 죄를 뉘우치라”고 말했다. 성모님께서 말을 마치고 태양을 향해 손을 뻗자, 갑자기 태양이 사라지는 듯하다가 번갯불처럼 빠르게 땅으로 돌진하고 다시 제자리를 찾아갔다. ‘태양의 기적’이라 불리는 사건이다.

많은 사람이 태양의 기적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통회했다고 전해진다. 1930년 포르투갈 가톨릭교회는 성모 발현을 공식 인정, 5월 13일을 파티마의 성모 발현 기념일로 제정했다. 성모님이 발현한 장소에는 파티마대성당을 세웠다.

파티마 세 목동의 사진. 왼쪽부터 히야친타, 프란치스코, 루치아. CNS 자료사진

어린 성인들의 기도와 고행의 삶

태양의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는 사람들이 어린 목격자들을 불신하고 조롱했다. 사회를 혼란에 빠뜨렸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두기도 했다. 행정관들은 마리아가 일러준 비밀이 무엇인지 추궁했다. 실토하지 않으면 끓는 기름 가마 속에 산 채로 집어넣겠다고 협박했지만 어린이들은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또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주님께 바치는 희생의 하나로 여기며 담대한 태도로 계속 묵주기도만 바칠 뿐이었다.

남매는 성모님의 당부를 따르기 위해 스스로 고행을 찾아 나섰다. 쐐기풀로 다리를 문지르고 굵고 거친 밧줄을 허리에 단단히 묶고 다녔다. 고통으로 눈물을 흘리면서도 이 또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보속으로 여기며 참아냈다. 구걸하는 아이들을 위해 도시락을 내어주며 단식과 희생을 바쳤다. 식욕을 억제하려 도토리 열매나 올리브 열매를 먹고 9일 혹은 30일 동안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않았다.

장기간 단식은 어린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고행이었다. 두 성인은 어린이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기도와 희생을 바친 것이다. 이들은 고행할 때마다 이런 기도를 되풀이했다. “제가 바치는 이 선물은 당신을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티 없으신 성모님 마음을 상하게 해드린 죄인들을 대신해 바치는 보속입니다.”

조용한 성품을 가진 프란치스코는 기도로 예수님과 성모님의 성심을 위로하겠다는 마음이 간절해 틈만 나면 묵주기도를 했다. 특히 조용한 곳에 가서 혼자 바치는 묵주기도를 좋아했다. 히야친타는 자신의 고통을 희생 제물로 봉헌하는 직접적인 행동에 집중했다. “히야친타는 지옥의 환시를 본 후부터 죄인들을 대신해 자신이 희생하며 보속하겠다는 열망에 더 강하게 사로잡혔다”고 루치아 수녀는 회고했다.

평화를 위한 헌신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명

6월 13일 발현에서 성모님은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를 하늘나라로 데려가겠다고 했다. 약속대로 프란치스코는 폐렴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다가 선종했다. 프란치스코는 성모님의 약속을 믿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고통이 예수님을 위로해 드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하곤 했다. 프란치스코가 숨진 다음 해, 같은 병을 앓다 세상을 떠난 히야친타도 “우리 주님과 성모님께 내 모든 사랑을 드리기 위해 고통을 참아받겠다”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성인들에게 두려웠던 일은 단 한 가지. 이들이 열렬히 사랑했던 ‘숨어 계신 예수님’(성체)을 마음에 모시지 못하고 갑자기 세상을 떠날 것을 염려했다. 이들은 각각 10살, 9살에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다.

세 목동이 성모님을 만난 지 꼭 100년이 된 날.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7년 5월 13일 포르투갈 파티마 성모 발현지에서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를 성인으로 선포했다. 남매는 순교하지 않고 성인 반열에 오른 최연소 성인이다. 교황은 시성식에서 “두 분은 성모님의 당부를 따라 죽는 순간까지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자기 삶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했다”며 “하느님과 성모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으로 충만했던 성인들의 삶의 모범을 우리도 따라 살아야 한다”고 했다. 포르투갈 가톨릭교회는 2005년 97세를 일기로 선종한 루치아 수녀의 시복도 추진 중이다.

파티마에 발현한 성모님의 메시지를 실천하는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한국본부 부본부장 신동규 신부(다미안 마리아·대사제 예수의 사업)는 “성인들은 수도자나 신학자도 아니고, 글도 읽을 줄 모르는 단순하고 소박한 어린이였다”며 “성모님이 이 분들을 선택한 이유는 우리 모두가 평화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과 평화를 위한 기도와 희생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예언자적 소명임을 일깨우려 하신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성인은 어린이의 단순한 믿음으로 성모님의 말을 따르고, 하느님을 위한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냈다. 이들의 영웅적 삶과 세상의 평화를 위한 자기 봉헌은 환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7년 5월 13일 프란치스코 마르토와 히야친타 마르토 시성식을 앞두고 파티마대성당 내 히야친타의 무덤을 찾아가 기도하고 있다. CNS 자료사진

염지유 기자 gu@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