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교황 즉위 10주년] 프란치스코와 함께, 교회는 어디로 향하는가?(상)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23-03-07 수정일 2023-03-07 발행일 2023-03-12 제 3334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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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 향해 하느님 자비의 손길 내밀어
교황이기에 앞서 하느님 백성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기 위해
‘성녀 마르타의 집’에 살기로 선택

단죄보다 백성의 고통 치유하고자
가정 주제로 세계주교시노드 소집
피임·동성애 등 긴급한 사안 다뤄

가난한 이들 향한 형제애 요청
불의한 현실에는 신랄하게 비판
자비 실천하는 교회의 역할 강조

가난한 이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장 큰 관심사다. 지난 2월 1일 콩고 킨샤사의 교황대사관에서 내전으로 고통받는 원주민을 축복하고 있다. CNS 자료사진

2023년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지 꼭 10년이 되는 해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호세 마리아 베르골료 추기경은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유례없는 교황 사임 후 콘클라베가 시작된 지 이틀만인 2013년 3월 13일 새 교황으로 선출됐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그러했듯이 가톨릭교회에 ‘더는 미룰 수 없는 쇄신’을 촉구하고 스스로 실천해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끄는 가톨릭교회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3회에 걸쳐 성찰해본다.

하느님 백성 한가운데 머물기를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황직 수행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사목자로서의 면모다. 2013년 3월 13일, 어둑해진 성 베드로 광장에는 새 교황의 첫 모습을 지켜보려는 수많은 인파로 가득했다. 휘장이 걷히고 새 교황이 모습을 드러냈다. 교황을 상징하는 아무런 특별한 상징 없이 흰색 수단을 입은 교황은 이탈리아인들의 친근한 저녁 인사인 ‘보나 세라’(Bouna sera)로 친근함을 표시했다.

곧 이어 그는 온 세상에 축복을 내리기 전에 스스로 먼저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기에, 고개를 숙이고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기도를 청했다. 그리고 자신을 ‘하느님의 자비가 필요한 사람’이고 ‘세례받은 이들 중 한 명’으로 소개했다. 이로써 교황이기에 앞서 하느님 백성으로서 신앙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기 원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교황궁을 마다하고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거주하기를 원한 선택을 두고, 가난하게 살기를 원한 것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교황궁 자체가 그리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숙소는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떨어진 곳이다. 결국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복음의 기쁨을 함께 살아가는 사목자이기를 원했다.

판단하지 않고 위로하고 치유하기를

교황이 된지 얼마 안 된 7월 22일, 교황은 첫 해외사목방문지인 브라질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동성애자 사제와 관련된 질문을 받고 말했다. “누군가 동성애자인데, 그가 주님을 찾고 선의를 가졌다면, 제가 그를 어떻게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꾸준하게 그를 비난하는 이들은 교황이 교회의 가르침에 혼란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서 판단과 단죄보다는 위로와 격려, 치유를 건네려는 사목자의 모습을 발견한다.

판단과 단죄보다는 하느님 백성의 고통에 공감하고 치유하기를 원한 교황은 두 차례에 걸쳐 가정을 주제로 한 세계주교시노드를 소집했다. 2014년 제3차 임시총회와 2015년 제14차 정기총회를 통해 교황은 가정과 관련된 긴급한 사안들을 다루도록 했다. 시노드에서는 피임, 동성애, 이혼 후 재혼자의 영성체 허용 문제 등 민감한 현안들을 다뤘다. 그리고 후속문헌으로 교황권고 「사랑의 기쁨」이 반포됐다.

교황의 고뇌는 깊었지만 적어도 사목적인 차원에서 그의 뜻은 분명하고 단호했다. 교황은 2015년 10월 4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가정을 주제로 한 두 번째 시노드를 개막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교회가 “유행이나 여론에 따라 변화될 수 없는” 진리를 선포할 의무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교황은 동시에 하느님의 자비를 바탕으로 현대 가정의 실제 삶과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며 “실수와 죄악은 단죄돼야 하지만,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은 이해받고 사랑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 가정의 잘못을 단죄하기보다는, 고통을 겪고 있는 가정들을 위해서 교회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대답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5년 12월 8일 자비의 희년 개막예식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 성문(聖門)을 열고 있다. CNS 자료사진

자비의 하느님과 가난한 이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선출 2주년을 기념하는 2015년 3월 13일 ‘자비의 특별 희년’을 선포하고 한 달 뒤인 4월 11일 희년 선포 칙서 「자비의 얼굴」(Misericordiae Vultus)을 반포했다. 당시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 의장 살바토레 피지켈라 대주교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이 자비의 특별 희년의 본질과 교황의 모든 사목적 계획을 담고 있으며 칙서 「자비의 얼굴」은 이를 더 구체화한다고 말했다. 희년의 근본적인 취지는 교회가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얼굴이 돼야 한다는 것이고 이는 당연히 교회의 사목적 쇄신을 요청한다.

20세기는 인류사적 비극의 시대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인종 학살과 집단 살육이 자행됐다. 21세기 초엽에 목도한 미국 뉴욕의 무역센터 빌딩 테러, 이후 세계는 테러와 대테러 전쟁, 불의와 기아와 폭력, 수백만 명의 난민들, 생태계 파괴와 자연재해, 심화되는 양극화 등 비극적 상황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자비의 얼굴」은 이러한 비극들을 우려하며 특히 가난한 이들에 대해 걱정한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상황들이 너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외침이 부유한 이들의 무관심에 파묻혀 들리지 않게 되어 더 이상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은 너무도 많은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눈을 뜨고 세상의 비참함을, 존엄을 박탈당한 우리 형제자매들의 상처를 보도록 합시다….”(「자비의 얼굴」 15항)

그래서 교황은 가난한 이들, 교회와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항상 찾아 나선다. ‘야전병원’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목 활동을 꿰뚫는 이상적인 사목자, 연대와 형제애에 바탕을 둔 교회의 모습이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복음적 사랑의 크기만큼 교황은 이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불의에 신랄하다. 불의한 현실과 세력에 대한 그의 분노는 고상한 이념이나 추상적 구호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랜 사목 활동과 삶의 체험 속에서 몸소 체득한 자비의 신념이다. 이미 고국 아르헨티나의 빈민가에서, 그리고 전 세계의 빈곤지역에서 보고 듣고 체험한 극도의 빈곤으로부터 그는 불의한 세계에 대해 분노했다. 신자유주의 경제에 대한 그의 신랄한 비판은 경제학 이론이 아니라, 빈곤의 고통에 대한 체험에서 나온 인간적인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라틴 아메리카 출신의 사목자다. 이 대륙은 자비의 신학을 품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풍부하게 받아들였고, 이른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끊임없이 던진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분투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든 사목 활동을 형성하고 있다. 전 세계 가톨릭교회를 통치하는 교황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는 세계교회라는 본당의 주임 사제이며, 실제로 그의 모든 교황직 수행은 자신에게 맡겨진 하느님 백성을 돌보고 치유하는 사목자의 면모를 띠고 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