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209. 다섯째 계명④(「가톨릭교회 교리서」 2305~2306항)

입력일 2023-03-14 수정일 2023-03-14 발행일 2023-03-19 제 3335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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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모든 평화의 원천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도메니키노 ‘안드레아와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가리키는 세례자 요한’.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 하느님 자녀가 되었음을 믿지 않으면 우리는 불안함과 두려움 때문에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될 수 없다.

채종기씨는 자신의 토지를 제대로 보상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숭례문에 불을 질러 국보 1호를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현장 검증에서 “내 말 한마디만 들어줬어도 이런 일 없었어요”라며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이런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은 ‘분노의 감정’이었습니다. 솟구친 화(火)가 화(禍)를 자초한 것입니다.

감정은 나의 모든 행위를 정당화합니다. 행위는 감정에 지배받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살인해서는 안 된다”(마태 5,21)는 행위에 초점이 맞춰진 계명을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마태 5,22)라는 감정에 관련된 계명으로 끌어올리십니다. 예수님께서 나자렛에 가시어 동향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리신 적이 있으신데 그들이 잔뜩 화가 나서 예수님을 고을 밖 벼랑에서 떨어뜨리려 했었습니다.(루카 4,23-30 참조) 행위에만 집중하는 사람은 항상 감정에 치우쳐 후회하는 행동을 자신도 모르게 저지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감정을 조절할 수 있을까요? 교리서는 감정이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분노는 복수하고자 하는 욕망입니다.”(2302) 감정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욕망을 버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보복하고 싶은 마음을 유일한 심판관이신 주님께 떠넘기면 됩니다. 주님께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의 악에 대해 (인간이) 복수하고자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2302) 바오로 사도도 “사랑하는 여러분, 스스로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성경에서도 ‘복수는 내가 할 일, 내가 보복하리라’ 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로마 12,19)라고 말합니다.

연세대 김주환 교수는 모든 감정이 ‘두려움’ 하나에서 나온다고 주장합니다. 내 생존을 위협받게 되면 그 불안함에 몸이 반응하고, 그 신체 반응을 해석해 내어 생겨나는 것이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불만이나 우울함, 무기력감이나 질투, 혹은 분노와 같은 감정들은 살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내는 몸의 변화를 긍정하게 만드는 방어기제들입니다.

나쁜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아이들에게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기 생존에 대한 ‘불안’(不安)을 부모에게 맡기며 ‘평안’(平安)을 얻습니다. 아이들은 부모 품 안에서는 안전하다 믿고 그렇게 안전할 때는 다른 형제들에게 자신을 내어주며 평화를 이룩합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자기를 온통 그분 품에 맡겨 불안에서 해방되지 않으면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아이는 부모가 자신에게 꾸준히 해 온 사랑을 보고 부모에게 자신을 맡겨도 됨을 알게 됩니다. 부모가 자신에게 젖을 주고 입혀주고 보호해주는 것을 보고는 믿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을 주셔서 먹이시고 입혀주고 보호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지상의 평화는 메시아이시며 ‘평화의 군왕’(이사 9,5)이신 그리스도의 평화를 나타내는 것이며 그 열매입니다.”(2305)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적개심을 없애셨고’(에페 2,16),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시키셨으며 … 인간과 인간이 하나”(2305)되는 평화의 원천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 하느님 자녀가 되었음을 믿지 않으면 우리는 불안함과 두려움 때문에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전삼용 노동자 요셉 신부 (수원교구 조원동주교좌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