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창간 96주년 특집-시노달리타스와 여성] 교회, 여성을 향하다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3-03-28 수정일 2023-03-28 발행일 2023-04-02 제 3337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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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참여 늘리는 보편교회와 달리 한국교회는 ‘제자리걸음’
교회 내 여성 소외는 세계적 현상
한국교회, 교황의 변화 노력 배워야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1월 23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봉헌된 미사 중 독서직을 받은 평신도 여성에게 성경을 건네주고 있다. CNS 자료사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따라 보편교회는 여성을 향해 눈을 돌리고, 교회 안에서 여성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넓혀나가고 있다. 교황청을 중심으로 한 보편교회는 어떻게 여성의 참여를 늘리고 있을까, 한국교회는 보편교회와 발맞춰 나아가고 있을까.

여성의 참여를 넓혀가는 보편교회

올해 3월 ‘바티칸 뉴스’의 조사에 따르면, 교황청에 근무하는 여성 직원은 2013년 846명에서 현재 1165명으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재임한 10년 사이에 보편교회의 중추인 교황청에 여성의 참여가 큰 폭으로 확대된 것이다.

특히 눈여겨볼 것은 고위직 직원 수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교황은 2021년 교황청 온전한인간발전촉진부 차관에 알레산드라 스메릴리 수녀를 임명했다. 여성이 교황청 기구 차관에 임명된 것은 스메릴리 수녀가 처음이다. 또한 5명의 여성이 차관보로 일하고 있다. 이는 교황청 기구에서 각각 2급과 3급에 해당하는 고위직이다.

아직 여성 장관은 임명되지 않았지만, 첫 번째 여성 장관 탄생도 그리 머지않은 것으로 보인다. 교황은 2022년 교황령 「복음을 선포하여라」에서 추기경과 대주교만이 수행할 수 있었던 장관직을 평신도도 맡을 수 있도록 했다. 평신도라 함은 남녀 평신도 모두에 해당한다. 교황은 지난해 12월 한 인터뷰에서 가까운 시일에 첫 여성 장관을 임명하겠다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여성의 전례 참여도 마찬가지다. 교황은 2021년 1월 자의교서 「주님의 성령」를 통해 기존 ‘남성 평신도’에게만 허용됐던 독서직과 시종직 수여를 남녀 평신도 모두에게 열었다. 이는 단순히 봉사자로서 독서자나 복사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공적 직무’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교황청의 변화에는 한국 여성들도 함께하고 있다. 교황청 성직자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혜윤 수녀(미리내 성모 성심 수녀회)는 프란치스코 교황 재임 이후 교황청에 증가한 여성 직원 중 한 사람이다. 교황이 처음으로 독서직을 수여한 6명의 여성 중에는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유학 중인 김나영(심포로사)씨도 있었다.

제자리걸음하는 한국교회

반면 한국교회는 보편교회에 비해 변화의 폭이 크지 않아 보인다. 최근 10년 간 교황청을 중심으로 여성 참여가 획기적으로 증진되고 있는 상황이나, 한국사회의 여성 참여가 증가한 것에 비교해보면 오히려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인상조차 받는다.

교황청 기구 장관·차관은 교구청으로 치면 국장·부국장, 위원장·부위원장에 비견할 수 있는 직책이다. 한국교회에서는 현재 교구 직속 국·위원회의 책임자는 모두 남성이다. 그나마 제주교구가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을 평신도로 임명하면서 약간의 변화가 생기기는 했지만, 그 밖의 모든 국·위원회의 책임자는 주교·신부가 도맡고 있는 실정이다. 추기경·대주교만 맡던 장관직을 평신도 여성에게도 열어놓은 교황청과는 대조적이다.

앞서(8면) 살핀 것처럼 본당 실정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물론 과거에 비하면 사목위원 중 여성 비율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총회장 등 본당사목 의사결정에 크게 개입하는 직책에는 여성이 드물다. 오히려 성모회·자모회 등 여성에게 ‘주부’, ‘보조자’의 역할을 요구하는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다.

마찬가지로 전례에서도 여성의 참여는 제한적인 것으로 보인다. 독서직과 시종직을 허용한 보편교회의 추세와 달리 한국교회는 본지 취재(8면)의 사례에서처럼 비정규 성체분배권에도 여성 참여가 극히 드물고 독서·복사 등의 봉사에서도 다소 제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정부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여성분과가 2021년 여성 신자 19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정부교구 여성 신자에 관한 실태 및 의식조사’는 이런 실태를 여성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조사에서는 ‘한국교회에서 여성 신자들이 활동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 결과 가장 많은 응답은 ‘전업주부를 주요 대상으로 진행되는 신앙활동’(40.4%)에 대한 문제의식이었고, 그 다음은 ‘주방일, 보조적 역할 등 고정된 성 역할 요구’(33.6%), ‘가부장적, 남성 위주의 교회문화와 정서’(25.2%)에 대한 의견이 높게 나타났다.

“교회 안에서 여성들이 많은 활동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중요한 의사 결정에서는 소외되는 현실”이라는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한국교회 종합의견서의 내용과 상통하는 맥락이다. 한국교회 하느님 백성의 소리를 담은 이 의견은 교황청 세계주교시노드 사무처에서 제출한 대륙별 단계 작업문서에도 그대로 인용됐다.

3월 26일 서울 연희동본당 청년미사에서 여성 청년 복사들이 전례 봉사를 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

전문가들은 한국교회에서 여성의 참여가 확대되지 않는 가장 큰 원인으로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유교적 가장제가 남성인 성직자가 중심이 되는 교계제도와 뒤섞인 것을 들고 있다.

가부장적인 문화는 농경이 중심이었던 많은 문화권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세계주교시노드를 통해 제출된 세계 각국의 의견서에서도 각기 양상은 다르지만 거의 대부분 여성이 겪는 불평등을 호소하고 있다. 그런 보편교회의 상황 안에서 교황이 교회 안 여성 참여를 획기적으로 넓힌 것이다.

이 변화가 그저 프란치스코 교황 개인의 성향이나 독단에서 온 것은 아니다. 교황은 자의교서 「주님의 성령」 반포와 함께 당시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루이스 라다리아 추기경에게 보낸 서한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이어온 쇄신의 지평 안에서, 교회 내 세례받은 모든 이의 공동책임, 특히 평신도의 사명을 재발견하는 것이 오늘날 더욱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교회 내 평신도, 그 중에서도 여성의 참여 확대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의 실현이라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사목헌장」에서 “마땅히 여성들은 고유한 특성에 따라 자기 역할을 완전히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60항)고 역설하고 있을 뿐 아니라 「평신도 교령」에서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여성들이 더욱더 능동적인 역할을 하는 오늘날, 교회의 여러 사도직 분야에도 더 폭넓은 여성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9항)고 선언하고 있다.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1차 의안집 편집위원으로 활동한 최현순 교수(데레사·서강대 전인대학원)는 “세계주교시노드 의견서들을 보면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교회 안에서 여성이 소외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교황님의 행보에서 평신도, 그중에서도 여성이 부각되는 것은 공의회가 지향하는 ‘하느님 백성의 교회’의 연장선”이라면서 “공의회 정신을 실현하는 교황님의 모습에서 한국교회도 배워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