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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 - 세상을 읽는 신학] (59)젊은 세대의 종교와 신앙

정희완 요한 사도 신부(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3-05-09 수정일 2023-05-09 발행일 2023-05-14 제 3343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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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만 든다고 해서 세속보다 종교에 더 관심 가질 수 있을까 
종교적 감수성 예민한 이때에
부모로부터 신앙 전수 못 받으면
나이 들어서도 종교 흥미 못 가져
교회 신앙 교육·문화 재구성 절실

지난해 7월 22일 서울 동교동 청년문화공간JU동교동 카페에서 청년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젊은 세대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오늘의 교회는 과연 신앙 교육과 문화를 어떻게 재구성해야 할까.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유동하는 세속 시대의 삶

사유보다는 감정, 감정보다는 욕망이 사람을 끌고 가는 시대다. 정신적 가치나 이상보다는 물적 쾌락의 향유가 더 중요시된다. 사람들은 대부분 지독한 현실주의자의 삶을 산다. 자기 성찰을 추구하고 아름다움과 사랑을 통해 절대적 존재와의 만남을 갈망하게 하는 정서가 부재하다. 현재는 흔들리고 미래는 불확실하다. 근대화와 자본주의의 승리 속에서 공동체적 삶의 소멸을 목격한다. 공동체에 대한 꿈은 사라지고 정체성과 자기표현만 강조되는 세상이다. 형제애와 연대의 삶은 교회 문헌에서만 볼 수 있는 먼 유토피아가 되어버렸다. 가난한 청춘의 삶은 더 고단해지고, 노후 돌봄의 문제는 심각해지고 있다. 힘들지 않은 세대가 어디 있으랴. 모든 세대는 다 저마다 자기 생의 무게를 지고 간다. 하지만 노년과 청춘이 사회적 삶에서 유독 더 배제되는 듯하다.

근대화의 여정에서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교육과 문화를 통한 개인의 건강한 자율성과 주체성에 대한 인식과 정념을 습득하지 못했다. 물질주의적 자본주의 성장 과정 안에서 개체의 이기성만 강화되었다. 감정과 욕망의 자본주의화만 이루어졌지, 이성과 계몽의 근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전통적 위계 문화는 건강한 자율성의 구축과 수평적 공동체에 대한 지향마저도 방해하는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 MZ세대

세대로 구분해서 사람의 특성을 찾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같은 세대라고 해서 다 같은 사고방식과 행동 스타일을 갖는 것은 아니다. 개별적 인간의 다양성은 세대를 넘어서 있다. 다른 한편으로, 세대가 다르다고 해서 다른 시공간을 사는 것이 아니다. 모든 세대는 같은 세계에서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자연환경과 식생활 변화에 따른 유전 인자의 차이와 성장 과정 속의 교육과 사회 문화적 배경의 차이는 세대적 감수성의 차이를 낳는다. 같은 시대를 살아도 현상들에 대한 대응 방식이 세대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한 사회를 구성하는 세대를 삼등분해서 구별한다. 젊은 세대, 중장년 세대, 노년 세대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를 흔히 MZ세대라 부른다. MZ세대의 일반적 특징은 ‘디지털 네이티브’, ‘개인주의적 성향’, ‘현재지향적 성향’으로 규정된다. 옛 세대에 비하면 고학력의 스펙을 가졌지만,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다. 급변하는 경쟁의 사회를 살아가기에 정서적 안정을 누리지 못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정서적·문화적 불안정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정치적으로 극단주의에 빠지는 경향도 많다. 공동체적 가치와 신념보다는 개인적이고 종교적인 확신이 정치·사회적 행동을 지배하기도 한다. 윤리적 가치에 대해서는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지만 경제와 정치의 영역에서는 이기적이고 보수적인 특성을 드러낸다.

오늘의 젊은 세대는 SNS나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많은 발언권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그들의 정치적인 힘은 기성세대에 의해 배제되거나 이용되고 있다. 젊은 세대는 선명한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며 규범과 전통에 저항하는 성향을 지닌다. 위계질서에 대한 태생적 거부감이 강하고, 불평등 사회에서 역설적으로 공정을 강조한다.(로버타 카츠 외 「GEN Z: 디지털 네이티브의 등장」)

■ 젊은 세대의 종교적 감수성

오늘의 세상이 세속화 시대인 것은 분명하지만, 지난 세대에 비해 이 시대의 젊은 세대가 유난히 더 세속적이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젊은 세대 역시 그 나름의 내적 의미를 추구하고 영적인 것을 갈망한다. 젊은 세대의 종교적 감수성은 어떻게 작동되고 자극될 수 있을까.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에 의해 종교 문화의 세례를 받았지만, 대부분 제도적 종교의 영역을 떠나있다. 그들에게 종교적인 것들이 낯설지는 않지만, 깊은 마음 없이 그저 이미지로 소비될 뿐이다. 젊은 시인들은 노래한다. “묵주 반지는 장미 모양/ 기도문을 외운다/ 기도문을 외우는 순간에 아이는 믿음을 밀고 나간다/ 그것에 말을 건다// 아름다움은 공포심과 마찬가지로 주도면밀하다.”(여세실 ‘빗댈 수 없는 마음’) “사실 우린 흙에서 온 게 아니라는 사설을 본 후// 나는 신은 없구나 생각했는데/ 너는 하느님의 눈물이구나 하는 것이다// 다르다 생각하니 틀리지 않을 수 있었다.”(유수연 ‘새로운 일상에서’) “나는 신이 깜빡 조는 사이 지옥에 잠시 다녀왔다 하얀 미사포를 쓰고 묵주반지도 꼈지만 하도 끔찍해서 미사 시간에 번쩍, 눈을 떴다 나란히 앉아 짓지도 않은 죄를 고백하던 엄마는 성호를 긋다 말고 소란스러운 나의 입술 위에 급히 검지를 가져다 댔다.”(이소호 시집 「홈 스위트 홈」 뒤표지)

■ 젊은 세대의 종교와 신앙

젊은 세대가 더 나이가 들면 다시 종교와 신앙의 영역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낙관적 전망과 기대가 있다. 다시 말해, 중장년과 노년에 접어들면 세속에 관한 관심에서 조금은 종교적 관심으로 옮겨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 말이다. 하지만 종교적 감수성과 영적 습성은 유년 시기와 청소년 시기에 주로 형성된다. 앞선 세대보다는 종교적 환경에 훨씬 덜 노출되었던 젊은 세대가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곧장 기존의 종교로 귀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은 나이가 든다고 세계관과 삶의 방식이 갑자기 바뀌지는 않는다.

사회학자 사라 윌킨스-라플람은 자신의 책 「Religion, Spirituality and Secularity among Millennials」에서 젊은 세대의 종교와 신앙의 미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망한다. 첫째, 아날로그 형식이 아니라 디지털 방식의 신앙생활이 중심이 될 것이다. 둘째, 복잡하고 고단한 경제적 삶의 환경이 신앙생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셋째, 인종, 성정체성, 여성주의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요인들이 종교와 신앙생활의 다원적 특성을 강화할 것이다. 넷째, 종교와 신앙생활에 있어서 개인적 선택과 진정성을 강조하는 개인주의적 성향은 지속될 것이다. 다섯째, 젊은 세대의 고학력 현상은 비종교적 성향을 여전히 강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연환경의 변화와 기후위기는 종교와 신앙생활에 깊은 영향을 미칠 것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기존 종교의 귀환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신앙은 전수되는 것이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종교적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신앙과 영성을 부모나 종교 행위자들에 의해 전수받지 못하면, 나이 들어서도 종교적인 것들과 영성적인 것들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발생할 확률이 낮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어쩌면 종교가 초기 설정(default)으로 자리하고 있지 않은 첫 세대다. 이 젊은 세대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오늘의 교회가 신앙 교육과 문화를 과연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

정희완 요한 사도 신부(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