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방사능 오염수 방출, 신앙인의 관점은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3-05-30 수정일 2023-05-30 발행일 2023-06-04 제 3346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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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은 인간 능력 범위 밖 문제… 심각한 피해 예측되면 즉각 멈춰야
정책 결정 투명했는지도 의문
핵기술,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
사회적 약자의 더 큰 고통 걱정

5년 넘게 서울에서 조개구이집을 운영해 온 A씨는 가게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코로나19로 한차례 타격을 맞았던 장사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소식과 함께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A씨는 “벌써부터 손님들이 일본산 조개가 아니냐고 묻는데, 후쿠시마 오염수가 방류되면 방사능 검사를 마치고 들어온 수산물이라고 해도 손님들이 뚝 끊길 게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해양에 방류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일본과 인접한 한국이 공포에 휩싸였다. 정치권은 “야당이 괴담선동을 시작했다”, “여당이 국민의 불안을 조롱하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방사능에 오염된 수산물 수입에 대한 공포, 정치적 충돌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신앙인들이 귀 기울여야 할 것은 공동의 집 지구의 울부짖음이다.

■ 진행 과정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에서 일어난 대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로 후쿠시마 제1원전 전원이 중단됐다. 이에 원자로를 식혀 주는 긴급 노심냉각장치가 작동을 멈췄고 3월 12일 1호기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났다. 당시 고장난 냉각장치를 대신해 뿌렸던 바닷물이 방사성물질을 머금은 오염수로 누출되면서 고방사성 액체가 문제로 대두됐다.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도 핵연료 냉각을 위한 작업이 계속되면서 오염수가 누적됐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 저장탱크가 가득 차는 시기를 고려해 2023년 봄부터 오염수를 바닷물로 희석해 후쿠시마 제1원전 앞바다에 방류하겠다고 2021년 4월 발표했다. 방류결정 이후 아소 다로 재무상은 “그 물은 마셔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같은 해 12월 10일, 도쿄전력은 방류 전 삼중수소 농도를 측정하는 저장소 공사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일본 정부의 요청을 받고 오염수의 안전성에 대해 검증을 하고 있으며, 방류 전 최종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안전한가

일본 정부의 결정에 대해 당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IAEA 기준에 맞는 적합한 절차에 따른다면 굳이 반대할 건 없다”는 입장을 2021년 4월 19일에 밝혔다. 대신 과학적 근거 제시와 정보를 충분히 공유할 것, 더 충분히 사전 협의를 할 것, IAEA 검증 과정에 한국 측 전문가나 연구소 대표 참여 보장 등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정화과정을 거쳐 방류하면 안전하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과 달리 원자력 관련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했다. 숀 버니 그린피스 동아시아 수석 원자력 전문위원은 5월 10일 열린 ‘일본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 대응 국제토론회’에서 “일본은 삼중수소가 내뿜는 에너지가 약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이는 외부피폭 시 적용될 수 있는 것”이라며 “피부나 호흡, 오염된 음식물을 통해 삼중수소를 섭취하게 됐을 경우 내부피폭을 통해 다른 방사선 핵종보다 더 강한 방사능 영향을 준다”고 밝혔다.

5월 25일, 환경운동연합이 주관한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관련 대국민 여론조사 발표 기자회견에서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최경숙 활동가는 “현재 후쿠시마 원전 부지 지하수 오염은 상상을 초월한다”며 “5월 12일 도쿄전력 발표 자료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 호안지하수 관측공 샘플링 장소 중 한 지점의 경우 세슘134와 세슘137의 합이 42만 배크럴(Bq/l) 검출되고 삼중수소를 포함한 베타핵종까지 심각한 오염을 나타내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환경운동연합이 5월 19일부터 4일간 실시한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와 관련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85.4%가 반대 입장을 밝힌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조사에 참여한 국민 79%는 후쿠시마 오염수 안전성에 대한 일본 정부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 핵기술에 대한 교회 가르침

교회는 오래전부터 핵기술의 심각성을 피력해왔다. 주교회의는 2013년 「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을 펴내고 핵기술 반대를 공식 천명했다. 2019년 10월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장이었던 강우일(베드로) 주교도 성명서를 발표하고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전 세계인들에게 드러내 보여 준 핵발전소의 문제는 우선 천재지변이든 인재가 되었든 핵발전소의 사고는 일어날 수 있고, 방사능 문제는 인간의 능력 범위 밖이라는 것”이라며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잘 통제되고 있다면서 오염수를 방류할 수밖에 없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은 역설적이게도 핵발전소의 문제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하시어, ‘살려면 생명을 선택’(신명 30,19)하라고 요구하셨다”며 “우리 사회는 경제 가치 때문에 생명을 경시하는 사회 구조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로 전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핵에너지, 핵폐기물, 핵무기 등 핵 문제의 심각성을 언급하면서도 정책 결정 과정에서 대화와 투명성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1992년 「환경과 개발에 관한 리우 선언」에 나온 ‘심각하거나 회복 불가능한 환경 피해의 우려가 있을 경우, 과학적으로 완전히 확실하지 않다는 핑계로 환경 악화 방지를 위한, 비용 효율이 높은 조치의 실행을 미뤄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언급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예방 원칙은 스스로를 방어하고 명백한 증거들을 모으는 능력에 한계가 있는 가장 취약한 이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한다”며 “정보를 통해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피해가 예측된다면 명백한 증거가 없어도 모든 관련 계획은 중단되거나 수정돼야 한다”(186항)고 강조했다.

핵 오염수 방류를 비롯한 핵 문제를 사회적 약자에게 피해가 쏠리는 불평등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전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장 김준한(빈첸시오) 신부는 2021년 9월 3일 열린 제7회 한일탈핵평화순례 및 간담회에서 “핵발전의 피해가 그저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준다는 사실만으로 더 고통을 받는 핵으로부터 가난한 사람의 문제가 가려질 수는 없다”라며 “악의 실체는 그 악으로부터 고통을 받는 가난한 사람들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만이 그 생생한 진상을 제대로 관찰, 판단,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밝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전문가들이 2013년 11월 27일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의 방사능 오염수 탱크를 점검하고 있다. IAEA 제공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