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글로벌칼럼] (127)프란치스코 교황, 주교, 하느님의 종들의 종/ 로버트 미켄스

입력일 2023-05-30 수정일 2023-05-30 발행일 2023-06-04 제 3346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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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은 종전 위해 노력하지만
가톨릭 교황의 외교 영향력은
더 이상 예전만큼 강하지 않아
할 수 있는 건 ‘평화’ 가르치는 것

날이 흐리고 부슬비가 내리던 지난 5월 13일, 로마는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방문으로 삼엄한 경비 속에 있었다. 이탈리아 정부는 1500여 명의 보안 요원을 동원했고, 지붕에는 저격수들이 자리를 잡았으며, 비행도 금지됐다. 많은 기자들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번 방문 목적은 오직 한 가지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만남이며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언급한 교황청의 평화 중재안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로마의 주교와 만났지만 그것이 그가 로마에 온 주 목적은 아니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탈리아를 방문한 실제 목적은 이탈리아 대통령과 총리와의 만남이었다. 목적은 한 가지였다.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얻는 것, 특히 무기를 제공받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는 이탈리아의 장거리 미사일을 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세계 6위의 무기 수출국이다. 이탈리아 국민들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일에 의견이 갈라져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러한 여론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 방송 인터뷰에 나서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교황을 만난 이유는 가톨릭교회 수장에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협상 테이블에서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설득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있는 모든 러시아 군대를 철수시키지 않는 한 협상 테이블에 앉을 마음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교황은 전쟁을 멈추기 위한 ‘비밀’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다. 전쟁 당사국 양쪽이 모두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분명 비밀이기는 했다.

교황은 거의 매일 공격당하고 순교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전쟁을 멈추기 위해 ‘무슨 일이든지 하겠다’는 교황의 의지는 감탄할 만하다. 하지만 여러 번 언급했듯이 로마의 주교가 러시아 정교회 세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동방 정교회의 태동지라고 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에서도 마찬가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러시아 정교회의 수장인 키릴 총대주교와 놀라울 정도로 좋은 관계를 맺었지만, 러시아 정교회 신자들은 여전히 로마 가톨릭신자들을 믿지 않는다.

물론 기적이라는 게 있다. 교황이나 교황청 외교관들이 두 정교회 국가의 전쟁을 멈추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기적이 필요하다.

로마의 주교로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중요한 역할은 가톨릭신자들을 가르치고 성화시키며 다스리는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로서 로마 가톨릭교회와 일치하는 다른 지역교회에 대해 특별한 수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 안에 있는 교황의 ‘양떼’는 전체 인구 1억490만 명 중 34만8000명일 정도로 아주 작다. 우크라이나의 가톨릭신자 수는 좀 더 많지만, 여전히 소수다. 약 4290만 명 중 480만 명 정도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비잔틴계 가톨릭신자다.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는 인구의 1%도 안 되며, 대부분 우크라이나 서부에 사는 폴란드계다. 요점은 이 지역이 로마의 주교가 관할하는 지역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교, 혹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그리스도교 교회의 영적 지도자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교황은 전 세계의 ‘사목자’가 되길 바라고 있지만, 이 경우 그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황들이 오랜 역사를 통해 일군 군주로서의 특권을 이용하는 것이다. 로마의 주교는 바티칸시국 수장이기도 하다. 교황은 군주처럼 교회와 바티칸시국 안에서 최고의 완전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런 견지에서 교황은 한 주권국가의 수장으로서 인류의 선익을 위해 다른 세계 정상들과 어깨를 견줄 수 있다. 문제는 그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의 잘못도 그의 교황직의 잘못도 아니다. 오늘날 가톨릭교회 교황의 상태인 것이다. 교황이 외교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시절은 지났다. 교황과 같은 왕들이 지배했던 유럽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었을 때 교황도 지정학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 시대는 지났다고 볼 수 있다.

만일 교황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전쟁을 멈출 수 있다면 아주 놀라운 일이 될 것이지만, 이런 기적은 일어날 것 같지 않다. 교황이 할 수 있는 일은 계속해서 가톨릭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평화와 유대감을 가르치는 것이다. 주교이자 하느님의 종들의 종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둡고 폭력적인 시대에 빛을 비추고 있다. 하지만 그는 구세주가 아니라 그저 종일 뿐이다.

로버트 미켄스

‘라 크루아 인터내셔널’(La Croix International) 편집장이며, 1986년부터 로마에 거주하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11년 동안 바티칸라디오에서 근무했다. 런던 소재 가톨릭 주간지 ‘더 태블릿’에서도 10년간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