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명예기자 단상] 당신의 침묵이 당신을 덮칠 때… / 최현경 명예기자

최현경 아나스타시아 명예기자,
입력일 2023-08-22 수정일 2023-08-22 발행일 2023-08-27 제 335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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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동네 친구들과 저녁 운동을 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집 근처 역에서 낮에 칼부림 사고가 있었다며, 영상을 보고 너무 놀랐다는 말을 했다. 사고 시간 즈음에 아이가 그 역을 지나갔을 거라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바로 아이에게 연락했고, 다행히 그 역이 아닌 다른 역을 통해 학교로 갔다는 말을 듣고 안도했다.

그 후 그날의 칼부림 사건에 대한 뉴스가 계속해서 나왔다. 지상파 뉴스에서조차 현장 영상을 약간의 모자이크 처리를 하고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 영상을 보는 것 자체로 폭력을 당한 느낌이었다. 이제는 거리를 걷다가도 누군가 뒤에서 나를 공격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며칠 후 그 사건과 같은 장소에서의 살인 예고글로 우리는 또다시 공포에 질렸고, 다음날 범인이 바로 검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역 근처에서 무차별적 흉기 난동으로 또 다른 희생자들이 생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건 현장 근처에 있는 회사에 다니던 지인의 친구는 사건 시간에 퇴근하다가 자신이 있는 방향을 향해 비명을 지르며 좀비 떼처럼 몰려오는 사람들을 보고 기겁을 했다고 한다.

강남 학원가에는 어차피 수능 망했다며 다른 학생들도 죽이고, 자기도 죽겠다는 살인 예고글이 올라와 그 일대가 학부모들 차로 난리가 나기도 했다고 한다.

잇단 칼부림 살인 예고 글을 이유로 전국에 중무장한 경찰특공대와 전술장갑차까지 동원되었다. 영화에서나 있을법한 일들이 일상을 뒤흔들고, 공포가 공포를 낳고 있다. 뮤지컬 ‘유린타운’의 리틀샐리는 공포가 지배되고, 희망이 없는 곳을 유린타운이라고 말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은 카페에서 소지품을 놓고 자리를 비워도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 안전하고, 도덕성이 좋은 나라로 유명했다. 한 외국인 친구는 분단국가임에도 그 안에 들어와 보니 너무나 평화로운 모습에 놀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과 잼버리 사태를 지켜본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

평화롭던 나라가 왜 갑자기 유린타운으로 바뀌게 된 것일까? 각자도생의 시대라는 말이 가끔 들린다. 국가가 더 이상 국민을 보호하지 않고, 국민 개개인은 자신의 안전과 재산을 스스로 지켜야만 하는 시대. 약자와 노동자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모습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꽃다운 청춘들이 길거리에 서서 죽어가고, 전세 사기 피해로 죽어가고, 열악한 노동 현장에서 기계에 끼여 죽어가고, 비가 오면 반지하와 지하차도에서 죽어가고, 전 국민이 핵오염수 위험 노출에 고통받고, 잼버리의 열악한 현장과 운영 미숙에 세계적 망신을 당해도, 책임지는 자는 하나도 없다. 제대로 취재하는 언론도 없다.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시 ‘처음 그들이 왔을 때’ 가 자꾸 떠오른다.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 나의 일이 아니기에 계속 침묵했고,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는….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마태 7,6) 가톨릭신문에서 연재하는 [홍성남 신부의 ‘신약성경,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26)개, 돼지] 편에 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최현경 아나스타시아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