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한국교회와 시노달리타스] (18) 수도회와 시노달리타스(하)

허성석 로무알도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입력일 2023-09-05 수정일 2023-09-05 발행일 2023-09-10 제 3359호 15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복음적 공동체 보여주고 영성 심화 이끄는 것이 수도회 역할
공동의 목표와 비전 지닌 수도회
초기교회 공동체 친교와 일치 따라
소통과 경청으로 하느님 뜻 찾아야

시간전례 기도를 바치고 있는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도회 고성수도원 수도자들. 수도회는 초기교회 공동체를 본받아 친교와 일치를 이루며 경청과 나눔을 통해 하느님 뜻을 찾아 나가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본 기획은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와 가톨릭신문이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 수도회의 역할

극단적 개인주의로 인해 가정부터 시작하여 사회 전반에 걸쳐 공동체가 무너져 가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시급한 일은 무엇일까? 아마도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참다운 공동체를 재건설하는 일일 것이다. 이 일이 바로 시노달리타스 여정에서 수도회가 해야 할 일차적 역할이 아닐까 한다. 무엇보다도 사도행전에 묘사된(사도 4,32-35) 초기 예루살렘 공동체의 모습을 삶으로 증거하며 이 여정에 참여해야 한다. 수도회는 초기교회 공동체를 본받아 친교와 일치를 이루며 경청과 나눔을 통해 하느님 뜻을 찾아 나가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친교와 일치의 모델

수도공동체는 ‘그리스도 안에 하나’(Unum in Christo)로서 형제적 사랑으로 충만한 친교와 일치의 공동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을 가로막는 가장 심각한 걸림돌은 수도생활 안에 만연해 가고 있는 개인주의와 세속주의다. 개인의 개성과 고유성만을 강조하고 공동체성을 무시할 때, 모든 것을 세속적 가치 기준으로 바라보고 판단할 때, 수도원은 그저 독신자들이 모여 사는 기숙사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수도공동체는 공동 목표와 공유 비전을 가지고 있다. 결코 각 개인의 이상이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장(場)이 아니다. 함께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이루려 노력하는 공동 수행의 장이다. 공동체 친교와 일치를 방해하는 개인주의와 세속주의는 우리 시대 수도회가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당면 문제일 것이다. 이 문제를 극복해 나갈 때 수도회는 친교와 일치의 공동체 모델이 될 것이다.

-소통의 모델

수도공동체는 소통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 소통은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며, 대화에는 경청과 열린 나눔,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전제된다. 소통은 수직적 일방통행이 아니라 수평적 쌍방통행이다. 종합의견서에서도 말한다. “소통의 수평적 구조를 위한 필요성과 실행에 대해 주목했는데, 특히 담대하게 말하기(parrhesia)의 중요성이 제기되었다.”(종합의견서 4쪽) 권위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잘못된 행사는 소통을 불가능하게 하고 모든 일에 있어 일방적이고 독단적이게 한다. 권위는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다. 권위주의는 권위의 그릇된 인식의 산물이다.

성 베네딕토는 공동체 안에서의 소통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그래서 공동체 안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아빠스(장상)는 공동체 전체를 소집하여 형제들의 의견을 경청한 후 심사숙고하여 더 유익하다고 판단하는 것을 행하라고 권고한다.(「규칙」 3,1 참조) 이는 수도승 전통의 스승과 제자 관계, 즉 가르치고 명령하는 스승의 절대적 권위와 듣고 실행하는 제자의 순종 관계를 뛰어넘는 파격이 아닐 수 없다. 서방교회 수도생활의 사부라 할 수 있는 베네딕토의 이 가르침을 염두에 둘 때, 수도회는 참된 소통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경청의 모델

소통의 시작은 경청이다. 경청은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귀 기울여 듣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각자 자기 생각과 의견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열린 대화,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차단된다. 특히 윗사람과의 대화에서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경청의 자세는 참으로 중요하다. 이는 시노달리타스 정신의 토대와도 같다. 종합의견서는 경청과 관련하여 한국교회 현실을 잘 지적하고 있다. “교회 안의 다양한 관계에서 듣는 데 어려움이 있으며, 함께 걸어가는 여정에 대한 동반자적 인식과 믿음의 부족이 경청의 부족으로 이어진다고 진단되었다.… 특별히 경청이 요구되는 그룹이 바로 성직자와 수도자이다.”(종합의견서 3쪽)

수도자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무엇보다도 ‘경청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는 수도자의 소명이기도 하다. 수도자는 ‘말하는 자’라기보다는 ‘듣고 실행하는 자’여야 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그분의 뜻을 실천해야 한다. 따라서 말로 사람들을 가르치기에 앞서 그리스도를 닮은 삶과 인격으로 사람들에게 복음의 정신과 가치를 드러내려 노력해야 한다. 그때 사람들은 그들을 통해 복음을 희망과 위로를 주는 기쁜 소식으로 경험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하느님 뜻을 찾는 모델

베네딕토는 말한다. “모든 일에 있어 하느님이 영광 받으시게 할 것이다.”(「규칙」 57,9) 모든 일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으려 한다면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느님의 뜻을 찾으려면 ‘공동 식별 과정’이 필수다. 그것은 한 사람이나 소수의 일방적인 식별과 결정 과정이 아니라 함께 모여 기도하고 식별하고 결정하는 과정이다. 시노달리타스는 다양한 소리와 관점을 듣고 수렴하여 하느님의 뜻을 식별해 가는 것이다.

일각에선 시노달리타스를 다수결로 결정하는 단순한 민주주의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베네딕토는 결코 다수결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현대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방식을 말하고 있지 않다. 중요한 일을 결정하기에 앞서 아빠스가 여러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참조하여 결정하라고 한다.(「규칙」 3장 참조) 여기서 강조점은 ‘경청’이라 할 수 있다. 또 아빠스 선출에서도 단순한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구조가 아님을 볼 수 있다. “전 공동체가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으로 만장일치로 선출하는 사람이나 혹은 비록 소수일지라도 보다 더욱 건전한 의견을 지닌 공동체의 일부가 선출하는 사람을 세우는 것이다.”(「규칙」 64,1) 비록 소수의 의견일지라도 합리적이고 건전한 의견이라면 이것을 채택하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수’가 아닌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합리적이고 건전한 의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느님의 뜻을 찾아가는 이런 바람직한 모델이 되는 것은 시노달리타스 여정에서 수도회의 또 다른 역할일 것이다.

-영성의 모델

지난 5월에 방한하여 강연한 토마시 할리크 신부는 현재 교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시노달리타스 개혁은 단지 교회의 제도적 구조를 새롭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동시에 영성의 심화를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교회가 영성의 심화를 거치지 않는 한, 머지않아 대부분 교회가 텅 비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그는 최근 우리말로 출간된 「그리스도교의 오후」(분도출판사·2023)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영성은 살아 있는 신앙으로 (교의적 측면의) 지적 성찰과 신앙의 제도적 표현보다 앞선다. 영성이 그것들을 초월하고, 이따금 위기의 순간에 그들을 되살리고 변형시킨다. 신학적 사상에 활기를 불어넣고 교회 개혁을 이끈 자극들 대부분이 영성의 중심부에서 비롯되었다.”(226쪽) 영성은 교회 개혁의 원동력이자 그리스도인 삶의 토대다. 깊은 영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교회 개혁과 쇄신, 그리스도인 삶과 활동만이 참된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수도회는 영성 심화를 위한 견인 역할을 해야 한다.

이상이 시노달리타스 여정에서 한국교회 수도회가 더욱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역할이 아닐까 한다. 즉 친교와 일치, 소통과 경청, 하느님의 뜻을 찾는 노력을 통해 복음적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영성 심화의 견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허성석 로무알도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