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애벌레의 성장 / 공지영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입력일 2023-10-04 수정일 2023-10-04 발행일 2023-10-08 제 3362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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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게 뭐냐고 가끔 질문을 받는다. 나는 대답하곤 한다.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억지로라도 신앙교육을 시키지 않은 것이라고 말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나는 “신앙 같은 것은 커서 스스로 선택하게 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 했다. 신앙이 취미쯤 된다고 여겼던 것일까. 그러면서 억지로라도 한글을 배우게 하고, 구구단을 외우게 했으며 아무리 울어도 소용없어 하면서 예방주사를 맞췄다. 지금 돌아가 다시 선택하라면 나의 우선 순위는 필연코 바뀌었을 것이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벌써 십년도 더 된 일이지만 머리가 다 큰 사춘기 아이들을 겨우겨우 설득시켜 성당에 보냈다. 온갖 조건을 다 달고 잔소리를 참아가며 얻은 성과였다. 그런데 아이가 성당에 잘 나가지 않는 것이다. 몰래 보좌신부님께 문자를 넣어보니 “학원시간 방해하면 안 되잖아요” 하셨다.

그분을 탓할 생각은 없다. 이해심이 많으시고 인생을 길게 보시니까 그러셨으리라. 신부님이 그러시니 나도 아이를 더 부추기지 못했던 씁쓸한 기억이 있다.

가끔 젊은 신부님들이 내게 “걸그룹 노래를 허용해도 애들이 잘 안 와요” 하시면 솔직히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나이 들어 잔소리만 느는 것 같아 그냥 웃고 말지만 말이다.

내 어린 시절에도 과외, 학원 별의별 것이 다 있었다. 그 당시 나를 하루 종일 성당에 붙들어 두었던 것은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아주 다른 감동들이었다. 우리는 일요일 새벽부터 성당에 나가 짐을 쌌다. 일주일 동안 모아놓은 옷가지들, 쌀, 라면, 비누 등등을 꾸러미에 담아 버스를 타고 빈민촌으로 떠났다. 오후에는 고아원, 양로원, 병원을 찾아 노래를 불렀고 그리고 주일 저녁 미사에 참례하고 나면 밤이었다. 나는 고3때까지도 그 활동을 빠뜨리지 않았다. 체력이 좋아서도 아니었고 부모님의 강요도 아니었다. 그렇게 하고 났을 때 내 가슴 속으로 차오르는 어떤 차원이 전혀 다른 감동이 이 세상에는 없고 성당에는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세상 노래에는 없던 근본적인 질문과 대답이 젠 성가에는 있었다. 이 세상에는 없는 것이 포콜라레 모임에는 있었다. 나는 그것을 사랑했고 매료되었다. 당시 대체 어떤 걸그룹, 어떤 멋진 남학생이 내게 그런 감동을 줄 수 있었을까.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 유럽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길로틴의 전통이 있는 프랑스에서 사형을 폐지시킨 좌파 대통령 미테랑은–좌파이니 그는 무신론자였다- 죽어가기 전 병상에서 그의 친구 피에르 신부에게 물었다고 했다.

“이보게 정말 하느님이 계실까?”

그러자 피에르 신부님은 대답했다. “물론이지, 우리 젊어서 기억나나? 길을 가는데 거지가 있길래 우리 가진 돈을 다 주어버렸지. 그러고도 우리는 행복했네. 그 바보같은 짓을 하고도 말이야. 그것이 바로 하느님이 계시다는 증거라네.”

걸그룹 노래를 어떻게 더 부르게 할까 고민하는 성당에는 사춘기의 나라면 가지 않을 것이다. 그건 세상이 훨씬 잘하는 것이니까. 세상하고 경쟁하면 세상이 이긴다. 성당은 늘 이류일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애벌레의 성장이란 나비가 되는 것이다. 더 큰 애벌레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공지영 마리아(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