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정리해야 할 때 / 김민수 신부

김민수 이냐시오 신부,서울 상봉동본당 주임
입력일 2023-11-28 수정일 2023-11-28 발행일 2023-12-03 제 3370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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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에서는 지난 10월부터 ‘정리수납 전문가’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중랑구청 평생학습관이 신설한 야간 프로그램 중 하나인데, 본당에서는 장소만 제공한다. 인터넷으로 접수가 시작되자마자 순식간에 수강생 모집이 마감되었다고 한다. 요즘 전문가 자격증을 따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어서 그런지 인기 강좌로 자리 잡고 있다.

전문가에게 정리수납을 맡기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능력으로는 정돈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소유하고 있는 물건이 너무 많다는 방증이다. 또한 삶과 공간을 조화롭게 만들어 더욱 단순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선호하기 때문에 정리와 수납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소비하려는 욕망’과 삶의 공간을 단순하고 효율적으로 만들고 싶은 ‘정리의 욕망’이 상호 충돌을 일으키는 시대라 하겠다.

‘정리’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하고 그대로 실천한다면 누구라도 주변의 물건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는 ‘필요한 물건과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구분하여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과감하게 처분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필요’(needs)와 ‘욕망’(wants)의 차이를 잘 알아 필요에 따르는 사람이라면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정리를 잘하는 사람일 것이다. 필요는 당장 현실에서 없으면 어려워지고, 필요를 해소하기 위해 꼭 그것이 아니어도 되며, 충족되면 끝나는 것이 필요다. 그렇지만 욕망은 불안하게 만들어 나중에 필요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하고, 꼭 구체적인 그것만 원하며, 또 다른 욕망을 낳는다. 일반적으로 욕망이 필요보다 크고 구체적이기 때문에 정리할 물건의 필요성과 불필요성을 고려해야 한다.

정리의 기준이 ‘필요’임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적이다. 그래서 정리수납 전문가 프로그램의 첫 번째 주제인 ‘정리수납의 이해’에서 강조하는 것은 ‘버리기’이다. ‘버리기’의 대상은 당연히 개인의 욕망이다. 욕망을 포기하고 버릴 때 필요한 것만 남게 되고 삶과 공간은 여유로워진다. 이것이 진정한 정리가 아니겠는가! 따라서 물건을 정리한다는 것은 간단히 물건을 다른 곳에 이동시키거나 처분하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삶 자체를 정리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삶 자체가 필요와 욕망으로 뒤엉켜 있지 않는가? 더군다나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기까지 하는 게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다시 말해서 나의 욕망은 다른 누구의 것이고, 때로는 나의 소유와 소비가 조작되고 강요되기도 한다. 우리의 삶이 필요에 따른 삶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욕망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삶의 정리를 한다는 것은 끝없는 욕망의 집착과 고리를 끊는다는 것이고 ‘필요’의 삶을 지향하겠다는 의지의 실천이다. ‘필요’의 삶은 ‘비움의 영성’을 배경으로 한다. 그것이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생활이고, 신약에서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 위의 인생’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이때에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는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정리하는 일이다.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하루하루를 보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후회나 실수는 없었는지, 힘든 일 혹은 기쁜 일, 보람된 일이 있었는지 차분히 자신의 발자취를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대나무가 자라면서 마디를 만들기 위해 잠시 멈추는 시간이기도 하다. 외적으로 볼 때, 마디를 만드는 시간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낭비의 시간이 되는 것 같지만 그 시간은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때이다. 집착으로 이어지는 욕망을 버리고 필요의 삶을 향한 선택으로 나아가게 하는 정리가 잘 이루어질 때 또 다른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이다.

김민수 이냐시오 신부,서울 상봉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