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이냐시오
성인은 스페인 로욜라 성에서 귀족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스페인 왕실 재무상 집에서 위탁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젊은 시절은 명예를 얻으려는 욕망과 머리와 옷 등 외모에 대한 관심으로 허영과 사치를 일삼는 시기였다.
세상의 헛된 욕심을 추구하며 지내던 성인은 군에 입대해서 프랑스군과 교전 중 다리 부상으로 병상에서 지내게 된다. 치료를 마치고 회복기에 접어들었던 성인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인들에 대한 책을 접하면서 차츰 깨달음을 얻는다. ‘기사’로 살고자 했던 욕심이 자신을 황폐하게 만들며 아무런 만족도 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인들 모범을 따르는 삶에는 기쁨과 평화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전자는 세상에 속한 것들이고 후자는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라는 자각이었다.
이즈음 성인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환시를 보았고 이 환시에서 큰 위안을 받았다. 아울러 육적인 것을 따르던 자신의 행실에 대해 혐오감을 느꼈다. 이는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고자 하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그리스도께 봉사하고자 하는 강렬한 심정으로 로욜라를 떠난 그는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머물며 가난한 이들을 찾아가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나누고 대신 포대로 싼 두루마기를 걸쳤다. 기사의 상징인 장검과 단검은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제단에 바쳤다.
이후 15㎞ 정도 떨어진 만레사 마을 근처 동굴로 거처를 옮긴 성인은 기도와 극기, 명상에 몰두했다. 또 구걸로 생계를 꾸리고 고행을 하며 그리스도의 길에 함께하려 애썼다. 그리스도교 영성사에 큰 영향을 끼친 「영신수련」은 이때 그 바탕이 이뤄졌다.
그리스도를 위한 봉사의 첫걸음으로 다른 이들을 돕기로 한 그는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더 잘 봉사하기 위해 건전한 학문의 지식을 보충해야 함을 깨닫고 약 11년간 학문에 정진했다. 공부를 마치고 1537년 46세에 사제품을 받은 성인은 뜻을 함께하는 동반자들과 새로운 사도적 수도 단체 설립을 구상하고 1540년 예수회를 창설했다. 1622년 그레고리오 15세 교황에 의해 성인 반열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