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담장 낮추고 힐링 공간으로 거듭난 대전교구 신리성지

민경화
입력일 2024-06-17 수정일 2024-06-20 발행일 2024-06-23 제 3398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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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맛집’으로 SNS에서 인기…주말 방문객 70% 이상 비신자
개방성 높이고 기도 공간에 대한 설명 덧붙여…"천주교 정서 경험 자체가 큰 의미"

수녀원으로 사용되는 한옥 한채, 초가집 주교관과 성당, 단체 순례객 쉼터로 사용되는 임시 강당 한동이 전부였던 신리성지. 보잘 것 없고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순교성인의 숨결과 흔적은 그 곳에 머문 사람들에게 안식을 선물했다. 20년전 성지를 지켰던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녀들은 “신리성지가 아름다운 기도 공간이 되길” 간절히 기도했다.
2024년, 신리성지 옆에는 ‘핫플레이스’, ‘SNS 감성 맛집’, ‘아름다운 힐링 공간’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입소문이 난 덕분에 주말이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20년 전 수녀들의 기도처럼 신리성지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쉼과 기쁨을 선물하게 된 것이다. 신자들만의 기도 공간이었던 성지가 대중적인 사랑을 받게 된 비결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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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신리성지 전경.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조선의 카타콤바

삽교천 상류에 위치한 신리는 조선시대 때는 밀물 때 배가 드나들었다. 따라서 외부인과 접촉하는 것이 용이했고 프랑스 선교사들이 배를 타고 입국하는 통로가 됐다. 제5대 조선대목구장 다블뤼 주교도 신리에 거주하며 신자들과 만났다.

신리에 천주교가 전해진 것은 1784년 무렵이다. 하느님의 종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에 의해 천주교가 전해졌고 신리에 정착해 살고 있던 밀양 손씨 집안을 중심으로 교우촌이 형성됐다. 1866년 무렵에는 마을 사람 400여 명 전체가 신자였다고 전해진다. 신자들이 많이 모여 살았기에 박해의 피해도 컸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손자선(토마스) 성인이 공주에서 순교했고 그의 집에서 머물던 다블뤼 주교는 오메트르·위앵 신부, 황석두(루카)와 함께 1866년 3월 신리에서 1km 떨어진 거더리에서 체포돼 3월 30일 갈매못에서 순교했다. 성지 인근 합덕읍 대전리(大田里)에는 40여 명의 무명 순교자들이 묻혀 있다. 신리성지가 조선의 ‘카타콤바’(지하 무덤)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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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곡 창고를 리모델링해 문을 연 카페 ‘치타 누오바' 사진 민경화 기자

■ 담장 낮춘 성지, 쉼과 회복의 공간으로 거듭나다

6월의 신리성지는 푸르고 청명하다. 넓게 펼쳐진 성지의 푸른 잔디밭 뒤로 모내기를 끝낸 푸른 논의 풍경이 하나로 이어진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하느님을 알 수 있는 상징은 순교자 미술관 꼭대기에 걸린 십자가가 유일하다. 하늘과 땅을 잇고 있는 십자가는 우리를 품어주는 예수님을 닮았다.

신리성지에는 드나드는 대문이나 주변을 두르고 있는 담장이 없다. 사방 어디에서 와도 성지에 들어올 수 있다. 안과 밖, 하늘과 땅의 경계가 없는 모습은 성지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보여 주고 있었다. 신리성지 전담 김동겸(베드로) 신부는 “교회라는 공간이 어느 정도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면이 있기에 신자가 아닌 분들은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라며 “성지가 신자들이 기도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신자가 아닌 분들도 느끼고 체험하는 곳을 만들고자 신리성지는 눈에 보이는 종교적 상징들을 줄이고 개방성을 높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작은 언덕 위에 세워진 순교미술관은 유명 포토존 중 하나다. 미술을 통해 신앙 선조들의 믿음과 삶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한 이곳은 전망대를 오픈해 신리성지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신자인 순례객들이 기도할 수 있는 장소도 곳곳에 마련해 놨다. 푸른 잔디밭 위에 작은 집처럼 보이는 5개의 조형물은 모두 경당이다. 두 사람이 앉으면 딱 맞을 작은 경당은 각각 성 다블뤼 주교·성 오메트르 신부·성 위앵 신부·성 손자선 토마스·성 황석두 루카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 경당 안에는 성인의 조각상과 함께 성인이 남긴 말씀이 적혀 있다. 경당을 모를 수 있는 방문객을 위해 ‘경당은 기도하는 장소’라는 문구도 친절하게 적어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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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리성지 경당. 경당이 생소한 방문객을 위해 ‘기도하는 장소’라는 문구를 적어뒀다. 사진 민경화 기자

큰 바위 위에 14처 부조를 새겨 넣은 십자가의 길은 신자가 아니라며 찾기 어렵다. 경당도 십자가의 길도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이질감 없이 성지의 풍경 속에 녹아 있다. 이곳을 찾는 이들 누구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천주교의 상징이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신리성지에서 천주교의 감성을 느끼고 돌아갔다.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좋은 기억은 신리성지를 다시 방문하게 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다 잠시 스쳤던 ‘순교자’의 이야기가 궁금해 성당의 문을 두드릴지도 모른다. 실제로 주말에는 방문객의 70% 이상이 비신자라는 게 김동겸 신부의 설명이다. 특히 신리성지의 이국적인 풍경이 ‘인스타 감성’과 맞물려 SNS를 통해 확산되며 젊은층의 방문이 2018년부터 크게 증가했다.

물론 젊은층의 방문이 선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천주교의 정서를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게 김 신부의 설명이다. 김동겸 신부는 “신자가 아니어도 신리성지에서 좋은 느낌을 받았다면 천주교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신리성지를 찾는 신자들이 “순교자들의 신앙을 보면서 자신의 신앙을 회복하고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