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노드

‘시노드의 길(Synodal Path)’ 통해 본 독일교회 쇄신 여정

박영호
입력일 2024-07-08 수정일 2024-07-10 발행일 2024-07-14 제 3401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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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적 독자노선·보수주의 거센 저항…아직도 험난한 쇄신의 길

보편교회는 시노드 교회를 향한 긴 여정을 걸어가고 있다. 2021년부터 시작된 세계주교시노드의 여정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바탕으로, 교회의 선교적 쇄신을 교황직의 소명으로 여긴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인도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여정은 순탄하지만은 않다. 의혹과 불신, 무관심이 사라지지 않았고, 비난과 저항도 적지 않다. 시노드 여정은 성령 안의 대화와 식별을 통한, 함께 가는 여정임을 되새기면서, 독일교회의 ‘시노드의 길’(Synodal Path)을 통해 ‘급진적’인 독일교회의 쇄신 여정을 살펴본다. 아울러 파문된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 대주교를 통해 교회의 시노드 여정에 대한 보수적이고 극단적인 저항의 사례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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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3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시노드의 길’ 제5차 총회 전경. OSV

■ 독일교회 ‘시노드의 길’

복음적이지 못한 교회 모습에 깊이 실망한 많은 이들은 의혹과 불신, 무관심으로 시노드 여정을 시작했고 어떤 이들은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에 혼란을 야기하지는 않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일부에서는 신속하고 단호하지 못한 쇄신 여정에 실망을 표시하면서 보다 선명한 자기 쇄신의 길을 모색한다.

세계주교시노드와는 별도로, 독일교회는 독자적 쇄신의 길을 시작했다. 이른바 ‘시노드의 길’(Synodal Path)을 통해 광범위한 교회 쇄신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 왔다. 그 배경에는 썰물처럼 신자들이 교회를 이탈하는 상황에 대한 위기감이 깔려 있다.

2022년 독일에서는 52만2821명이 교회를 떠났는데 이는 2021년 35만9338명을 훨씬 웃도는 수치고, 2023년에도 40만2694명이 신앙을 등졌다. 독일교회는 그 이유를 성직자 성추문을 비롯한 교회의 비복음적인 면모에서 찾고, 즉각적이고 단호한 교회 쇄신만이 이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방안이라고 인식했다.

이에 따라 2019년부터 독일 주교회의와 평신도 기구인 독일가톨릭중앙위원회(Central Committee of German Catholic, ZDK)가 공동 주관하는 5차례의 총회를 통해 사제 독신제 폐지, 여성 사제품 허용, 동성애에 대한 교회 입장 변화 필요성, 평신도의 주교 선출 참여 등 파격적인 제안들을 교회 쇄신 방안들로 결정했다. 특히 2023년 11월 주교와 평신도가 동수로 참여하는 시노드 위원회를 교회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로 창립했다.

교황청은 이에 대해 우려와 반대의 뜻을 표시했다. 교황청 국무원 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은 독일 주교회의에 보낸 2023년 10월 23일자 공문에서 여성 사제 서품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교황 역시 11월 10일자 서한에서 독일교회의 시노드적 교회가 보편교회로부터 멀어질 우려를 전했다. 또 교황청은 “독일교회는 ‘시노드의 길’이나 그것에 의해 설립된 기구, 주교회의도 모두 주교들의 권위를 제한할 어떤 기구도 설립할 권한이 없다”고 단언했다.

이후 교황청과 독일 주교단은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논란이 되는 문제들에 대해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교황청과 독일 주교회의 대표단은 지난 6월 28일 교황청에서 만나 시노달리타스를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재차 논의했다. 이는 지난 2022년 11월과 올해 3월 22일 만남의 후속 모임이다. 가장 최근인 지난 3월 만남에서 양측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론, 교회법,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세계주교시노드의 열매를 바탕으로 시노달리타스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교회 쇄신 방안을 마련해 교황청의 승인을 받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번 만남에서는 주교 직무와 평신도 공동 책임성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구체적인 방안의 모색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특히 이 두 가지 요소를 조화롭게 구현하기 위한 기구의 교회법적 규정에 대해 성찰하고 이러한 기구는 결코 주교회의와 동일하거나 그 이상의 권위를 가질 수 없다는 점에 대해 동의했다. 아울러 교황청과 독일 주교회의는 세계주교시노드가 폐막하더라도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대화를 이어가기로 했다.

■ 공의회 거부한 비가노 대주교, 파문 징계

교황청은 7월 5일자 공지를 통해 전 미국 주재 교황대사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 대주교가 파문의 징계에 처해졌다고 밝혔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정당성을 거부하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권위를 부정함으로써 교회 분열의 죄를 저질렀고 이에 따라 파문의 징계에 처해졌다.

교황청은 공지에서 “그가 공적 발언을 통해 교황을 인정하고 순명하기를 거부했으며, 교황에 순명하는 교회 구성원들과의 친교를 거부했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당성과 교도권적 권위를 거부했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비가노 대주교는 자신에 대한 혐의 자체를 ‘영예’로 여기며 교황과 그의 교회 통치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재판 절차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2018년 8월 교황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시어도어 맥캐릭 추기경의 성추행 사실을 은폐했다며 사임을 요구했다. 그의 이같은 주장은 허위로 밝혀졌지만, 미국의 일부 주교들을 포함한 극보수 고위 성직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이후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진보적 성향을 비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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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미국 주재 교황대사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 대주교가 2012년 11월 13일 미국 볼티모어에서 미국 주교회의 총회에 참석,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교황청은 7월 5일자 공지를 통해 그를 교회 분열의 죄로 파문 징계에 처했다고 발표했다. CNS

비가노 대주교에 대한 파문 징계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회 통치에 대한 일부 보수주의자들의 저항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저항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 자체에 대한 거부로 간주된다. 이들은 프란치스코 교황과 그가 주도하는 세계주교시노드의 진행이 교회의 정통한 유산을 훼손하고 신자들을 신앙과 윤리 모든 측면에서 혼란스럽게 만든다고 비난한다.

교황과 시노드에 대한 저항과 비난은 교회 분열을 논할 정도로 빈번하다. 교황은 2023년 11월 11일, 교황이 신앙의 기초를 허물고 있다고 비난해 온 미국 텍사스주 타일러교구장 조세프 스트릭랜드 주교를 해임했다.

일부 보수 성향 주교들은 집단적으로 교황에게 반기를 들었다. 세계주교시노드 제1회기 직전인 2023년 10월 2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레이먼드 버크 추기경을 비롯한 5명의 추기경이 그해 7월 보낸 질의서에 대한 답변을 공개했다. 질의는 동성애와 여성 사제 서품 등에 대한 교황의 입장을 요구했다.

조지 펠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재앙’으로 부르며, 교황이 이단을 조장하고 교회를 분열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2012~2017년 교황청 신앙교리부 장관을 지냈던 게르하르트 뮐러 추기경은 교황청의 오랜 관습과 전례를 깬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당혹감을 책을 통해 공개하기도 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