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연중 16주일

이승환
입력일 2024-07-11 수정일 2024-07-17 발행일 2024-07-21 제 3402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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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예레 23,1-6 / 제2독서 에페 2,13-18 / 복음 마르 6,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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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라벤나 갈라 플라치디아의 무덤의 ‘착한 목자’(5세기경 모자이크) 

오늘 복음은 길지 않은 내용이지만, 두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이야기는 우리에게 고유한 묵상 주제를 제공합니다. 복음의 앞부분은 지난 주일 들었던 복음(마르 6,7~13)과 연결됩니다. 예수님에게 복음 전파의 사명을 받고 파견되었던 제자들이 사명을 수행하고 돌아온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둘씩 짝을 지어 여러 고장을 돌며 회개하라고 선포했으며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의 병을 고쳐주고 돌아왔습니다.

이는 결코 쉬운 여정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늘 함께했던 선생님 없이 제자끼리 둘씩 다니면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때로는 마을에서 환영받지 못하거나, 제자들 간에 갈등이 발생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의 완고한 마음으로 인해서 회개를 외치는 것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떨 때는 마귀들의 저항이 강해 땀을 뻘뻘 흘리며 당황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가는 곳마다 복음을 선포하며 간절히 도움을 청하는 병자들을 최선을 다해 고쳐준 제자들이 긴 여정을 끝내고 돌아왔고, 그들은 예수님과 동료들에게 자신들이 겪은 체험을 나누었습니다. 제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수님은 그들이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운 마음과 너무도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는 세상의 현실 때문에 아픔도 느끼셨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 무엇인지 묵상하게 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세상에 파견한 제자들의 공동체입니다. ‘사도’라는 단어는 ‘파견된 이’라는 뜻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파견되어 사도직을 수행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하느님 백성임을 분명히 합니다. 그렇기에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복음 사명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며, 이와 관련한 모든 활동을 평신도 사도직이라고 천명합니다.

물질과 돈이 주인이 되어 버린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나눔과 섬김의 복음적 가치를 갖고 살아가는 것은 그 자체가 회개를 권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과 함께 살고자 하는 모든 노력은 세상을 치유하는 사도직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는 제자들이 겪었듯이 세상의 냉소와 동료들과의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달리 말하면 이런 삶은 복음을 전하는 일들이 피할 수 없는 과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공동체는 파견되고 사명을 다하고 돌아온 제자들이 서로의 체험에 대해 나눔을 하고 하느님 안에서 쉬고 서로를 격려하는 터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미사 전례에 참여하여 세상 속에서 각자 살아간 이들이 하느님 안에서 서로의 삶을 나누고 위로를 얻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일치를 이루고 다시 파견될 힘을 얻습니다.

오늘 복음의 후반부는 또 다른 묵상을 하게 합니다. 복음을 보면 이렇게 최선을 다해 애쓴 이들을 좀 쉬게 놔두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도움을 절박하게 원하는 많은 사람이 제자들이 쉬어야 할 곳에 먼저 가 있습니다. 아무리 사명을 갖고 하는 일이지만 이렇게 숨 돌릴 틈도 없이 사람들이 밀려오면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들이 일어납니다. 우리도 쉬어야 하는데 자신들 생각만 하고 우리를 배려하지 않는구나 하는 매정함이 일어날 수도 있고, 이 사람들을 우리가 다 감당할 수 있나 하는 의문도 일어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제자들의 상황, 능력과는 별개로 수많은 고통이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많은 이가 도움을 바라며 그토록 매달리듯 찾아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비롯하여 선의의 사람들이 나름대로 애쓰고 있지만 세상의 아픔과 고통은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어떨 때는 우리의 노력과 애씀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보입니다. 불가능, 좌절, 절망, 포기, 이런 단어들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은 이렇게 밀려오는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침을 줍니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쉴 새 없이 사람들이 밀려오는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이 요동쳤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것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바로 그들을 보면서 일어난 ‘가엾은 마음’입니다.

복음서를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가엾은 마음’은 절박하게 도움을 청하는 이들을 마주할 때 예수님 안에 일어나는 마음입니다. 그리스어로는 ‘스플랑크니조마이’(σπλαγχνίζομαι)인데 이는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Compassion입니다. 흔히 ‘연민’이라고 번역되지만, ‘함께’(Com)와 ‘고통’(Passio)이 결합한 단어로, ’함께 고통을 겪는다’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야말로 예수님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당신께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을 좀 불쌍하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겪는 고통을 창자가 끊어지듯이 함께 아파하시며 마주합니다. 이런 마음이야말로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죄와 고통 중에 있는 인간들과 함께 아파하기 위해 하느님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인간이 되신 하느님은 항상 가난하고 소외된 이, 절망 가운데 도움을 바라는 이,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린 이들을 만나면서 그들과 함께 아파했고, 위로하고 치유하고 사랑하며 살아가셨습니다.

하느님은 창조 때부터 우리에게도 당신과 같은 사랑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랑의 마음을 느끼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느끼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의무로만 다가올 것입니다. 제자로 살아가는 삶은 그분의 삶을 보고 배울 뿐 아니라 그분의 마음을 느끼고 그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세상에 파견된 우리들이 어떤 마음을 느끼고 살아가야 하는지,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가엾은 마음’이 어디서 오는 마음인지를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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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현재우 에드몬드(한국평단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 소장)

이승환 기자 ls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