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특집] ‘기후위기 비상행동’ 기후재난 대응 촉구 기자회견
7월 9일 경북 경산에서 쿠팡 새벽 배송을 하던 40대 여성 노동자가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 폭우로 자동차가 물에 잠기자 급히 탈출하는 과정에서 변을 당한 것이다. 쿠팡의 물류자회사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는 이와 관련해 “기상악화로 인해 배송되지 않거나 지연되는 경우 배송 기사들에게 어떠한 불이익도 없기 때문에 배송 기사들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나, 박상호 서비스연맹 택배노조 롯데본부 본부장은 7월 17일 기후위기 비상행동 기자회견에서 “기록적인 폭우에도 쿠팡은 배송을 중단시키지 않았고 해당 노동자에겐 업무인 배송을 중단할 권리인 작업중지권이 없었다”고 반박했다.
기후위기로 한반도의 날씨가 달라지고 있다. 여름철 비의 양은 많아졌고 기온은 올라가고 있다. 이는 폭우로 인해 더 많은 배송 기사가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도, 폭염으로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기후재난은 뿌리 깊은 불평등의 경계선을 따라 약한 생명부터 무너뜨리고 있다”고 경고한다. 생각보다 가까이 와닿고 있는 기후재난. 매일 생명을 걸고 일하는 이들은 살기 위한 방법을 찾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 기후재난이 무너뜨린 가장 약한 생명
기상청에 따르면 2020년 7.7일이던 폭염일수는 지난해 14.2일로 3년 만에 2배 이상 늘어났다. 올해 강수량 또한 평년 평균 보다 124.3% 증가해 재해의 횟수도 늘어났다. 단순한 기상이변으로 여기기엔 꾸준히 증가하는 수치가 공통적인 원인이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유엔 재난위험경감사무국(UNDRR)은 2020년 ‘재난의 인적 비용: 지난 20년(2000~2019년)의 개요’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7348건의 자연재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홍수 3254건, 태풍 2043건, 지진 552건으로 전체의 90.9%가 기후와 관련된 재난이었다.
이는 20세기 말(1980~1999년)에 발생한 재난(4212건)의 1.7배에 이르는 수치다. UNDRR은 보고서에서 “지난해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1.1℃ 올랐고, 그 영향으로 폭염·홍수·산불 등의 극한기후 현상의 빈도수가 증가했다는 분명한 증거”라고 분석했다.
이미 올라간 지구 온도를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존재한다. 하지만 뜨거워진 지구가 내 가족과 이웃의 목숨을 위협한다면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후위기 비상행동은 7월 17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중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후재난 속에서 우리 모두가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라”고 호소했다. 이 자리에는 배달플랫폼 노동자, 에어컨 서비스 노동자, 건설노동자, 가스점검원, 오송참사유가족 등 기후재난을 겪는 시민과 노동자들이 함께했다.
이들은 “폭염과 폭우로 위험이 닥칠 때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작업을 멈출 권리, 참사의 피해자가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요구하고 실현할 권리가 보장돼야 하며 시간에 쫓기고 인원이 부족해서 위험한 노동환경을 감수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이 모든 것이 기후재난 앞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헌법이 보장하고 국가가 응답해야 할 시민들의 권리”라고 밝혔다.
배달플랫폼과 건설 노동자 등
폭염·폭설 등 노출 환경에서 안전권조차 보장 못 받아
인간 누구나 지닌 생명·행복권
위험앞에서 일 멈출 수 있고 생계 위협 없는
제도적 장치 마련해야
■ 기후위기 속,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생명
여름철 건설 현장은 한증막 안에 있는 것과 같다. 건설기계를 비롯한 장비, 철근, 망치 등 햇빛에 벌겋게 달아오른 쇳덩이들이 건설노동자의 손에 쥐어진다.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 박세중 노동안전보건국장은 “고용노동부는 물, 그늘, 휴식 3대 원칙을 잘 지키면 폭염에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제대로 된 휴식도, 작업 중지도 지켜지지 않는다”며 “실질적인 작업중지, 제대로 된 휴게시설 설치, 제대로 된 세척시설이 현장에 시급히 필요한 요소”라고 설명했다.
한파와 폭우에 속수무책인 것은 배달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 김지수 사무국장은 “극한의 기후일수록 추가 배달 운임과 프로모션을 통해 우리를 재해의 위험으로 유인하는 배달플랫폼 기업의 정책, 안전하게 일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AI 알고리즘, 플랫폼 노동자 보호를 위한 정책과 제도의 부재로 우리는 매일 생명을 걸고 일하고 있다”며 “기후재난으로 인해 일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때 노동자들의 생계를 보호할 수 있는 기후실업급여 제도가 절실하다”고 토로했다.
방문노동자인 가스점검원의 시름도 기후변화와 함께 깊어지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서울도시가스분회 허보기 분회장은 “가스 안전 점검원들은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며 도시가스 사고 예방을 위해 가가호호 가스 누출 여부 등을 점검한다”면서 “그런데 기후위기로 인한 폭염, 폭설, 한파, 장마 등에 무방비로 노출된 점검원들의 안전은 누구도 책임지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기후위기 속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 폭염, 폭우, 한랭, 한파 시 작업 중지 실질화를 위한 법제화 ▲산업안전보건법에 명시된 제한적인 고열작업 기준 확대 ▲ 악천후가 발생해 건설노동자가 일하지 못해 소득이 감소할 경우 건설노동자 생계 보장할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 인간의 존엄성을 기억하다
헌법 제34조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기후위기로 인해 국민의 권리가 온전하게 보장되지 못하는 가운데, 기후위기 비상행동은 헌법재판소에서 병합 심리 중인 기후 헌법 소원의 판결을 촉구했다.
기후헌법소송 청구인인 기후위기 비상행동 김은정 공동운영위원장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권리들 그 어느 하나, 기후위기로 인해 온전하게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며 “기후위기로 더 이상 아까운 삶들이 스러지지 않도록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국가의 기본권 보호책무를 인정하는 기후헌법소원 판결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고 밝혔다.
인간 기본권 보장에 대한 목소리에 교회도 힘을 보태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인간도 생명권과 행복권을 누리며 고유한 존엄성을 지닌 이 세상의 피조물”이라며 “그래서 우리는 환경 훼손, 현재의 개발 방식, 버리는 문화가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지난 4~5월 청소년 환경 단체가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국민의 생명권과 환경권,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며 낸 헌법소원의 공개 변론을 두 차례 진행했으며 2020년 3월 청소년 환경 단체 ‘청소년 기후 행동’이 낸 사건과 시민, 영유아 부모 등이 낸 비슷한 사건 3건을 합쳐 한꺼번에 심리 중이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