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 함께 짜는 미래] 평화3000 라오스 후아판주 ‘위앙싸이 소수민족학교’ 지원 현장(상)
[라오스 후아판주 박주헌 기자] 기근이 든 흙 속의 씨앗도 ‘물과 양분’(믿음)을 만나면 ‘꽃’(가능성)을 피운다. 메마른 세상을 적시는 인간애 역시, 동료 인간 안의 잠재된 가능성을 묵묵히 믿어주는 바로 그 지점에서 완성되는 게 아닐까.
사단법인 평화3000(상임대표 곽동철 요한 신부, 이하 평화3000) 활동가들은 이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10월 28일부터 31일까지 2박4일간 라오스 후아판주 ‘위앙싸이 소수민족학교’ 학생들의 직업 교육을 위한 지원 사업 활동을 펼치고 왔다. 학교에는 평화3000의 도움으로 학생들 취업과 자립을 위한 ‘재봉교육 직업훈련반’이 일찍이 개설됐다. 혼자서는 미래를 꿈꿀 수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잠재력을 펼칠 기회를 주고자 재봉틀 기증, 수업 참관 등 지원 사업 활동들로 구슬땀을 흘리고 온 활동가들 현장을 따라갔다.
■ 소외 속의 소외를 사는 이들을 위하여
28일 저녁 8시 인천을 떠난 비행기는 6시간가량의 비행 끝에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 도착했다. 비엔티안은 한 나라의 수도임에도 나지막한 건물들이 목가적인 정취를 자아냈다. 노동가능인구 중 62%가량이 농업에 종사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아등바등 살기보다 평화롭게 살아가는 라오스 사람들을 빼닮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많이 배우고 싶어 하고 열정적인 사람들이에요.”
현지에서 평화3000과 협력하는 이관택 코디네이터는 “현지 진출한 외국 사업가들은 라오스인을 계몽 대상처럼 여기기도 하지만, 이들은 무기력한 게 아니라 쫓기며 살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자정을 코앞에 두고 숙소에 도착한 활동가들은 다음 날 아침 ‘위앙싸이 소수민족학교’가 있는 북동부 후아판주 위앙싸이 마을로 떠나기 위해 여윈잠을 청해야 했다. 비엔티안에서 약 600㎞ 떨어진, 차로 가면 꼬박 16시간이 걸리는 산간 지역이었다. 후아판은 라오스의 18개 쾡(주) 중에서도 가난한 곳으로 손꼽힌다.
활동가들은 올해 4월 평화3000이 진행한 모금 캠페인으로 마련된 재봉틀 30여 대를 학교에 기증하고, 재봉교육 직업훈련반 학생들의 수업을 참관하며 취업과 자립의 꿈을 심어주기 위해 마을을 찾았다. 후아판주의 유일한 소수 민족 학교인 이곳에는 531명 중·고등학생이 배우고 있지만 졸업 후 진로가 막막한 상황이다.
차별과 핍박 받고 있는 몽족
농업 중심 경제 구조에서
작황 안 좋으면 생활고 빠져
마을 주민은 몽족, 크무족 등 소수 민족으로 많은 차별 속에 살아간다. 특히 몽족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고문과 핍박을 받았다. 현재 법적으로는 주류 민족 라오족과 평등하게 취급되나 차별은 지금도 계속된다. 직장에 취업하는 것조차 어려워 가난의 대물림이 이어진다.
“졸업 후 곧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데 전문 기술도 없고 소수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어요. 농업 중심인 경제 구조라 작황이 좋지 않으면 일자리도 부족한데, 전문 기술도 없는 소수 민족은 더더욱 취업에서 소외될 수밖에요.”
마을까지 가는 산길 내내 흔들리는 차 안에서 해외사업팀 정다와 팀장이 활동가들에게 설명했다. 산수화같이 운치 있는 풍경과 달리 계속 산등성이를 타느라 다들 멀미를 참고 있었다. 그는 “재봉교육은 특히 소수 민족 여학생들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나마 남학생은 부모를 따라 농사를 짓거나 일자리를 찾아 도시, 외국으로 떠날 수 있지만 여학생들은 어린 나이에 결혼하게 되고 꿈마저 포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고립무원한 처지 앞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희망을 전한다는 무거운 사명감은 활동가들에게 여독마저도 묵묵히 이겨낼 힘이 솟게 했다.
온화한 라오스 민족들을 빼닮은 뽀얀 벽을 한 학교가 나타났다. 그 앞에서 역시 온화한 미소를 띤 교사들이 “닌디떤합(환영합니다)”하며 활동가들을 맞이했다.
“재봉틀이 한 대도 없어 아이들 직업 교육을 못 하고 있었어요. 여러 곳에 재봉틀 지원을 요청했는데, 소수 민족 아이들 교육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우리 손을 잡아 준 평화3000과 후원자분들께 얼마나 감사한지요.”
■ 함께 짜는 미래
재봉교육 직업훈련반 교실에는 학생 30명이 재봉틀 30대와 오버로크 미싱기 5대, 다리미 5대 등 기자재로 한참 실습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평화3000이 기증한 기자재들 덕분에 9월부터 재봉교육 첫 수업을 시작했다. 작업 도중에도 일어나 열렬한 감사의 박수를 보내는 학생들 한가운데서 재봉틀 기증식이 열렸다.
기증식에는 후아판주 노동사회복지부 책임자와 학교 교감 2명이 함께했다. 그들은 평화3000 운영위원장 박창일 신부(요한 사도·예수 성심 전교 수도회)에게 후아판주 주지사의 감사장을 건넸다. 그러면서 “본교 학생뿐 아니라 후아판주의 다른 빈곤층, 조손 및 한부모 가정, 장애인 아이들도 이곳에서 재봉 기술을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아이들에게 비로소 취직의 꿈을 안겨줄 수 있음에 깊이 감사하다”고 전했다.
훈련을 마친 학생들은 현지 한국계 재봉 기업 ‘풍신’의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 풍신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정신에 따라 평화3000의 행보에 깊이 공감하며 여러모로 적극 협력하고 있다. 현지에서 내년 공장 가동을 준비 중인 풍신은 후아판주에서 노동자 1000명을 고용할 계획이다. 직업훈련반 과정을 마친 학생들을 고용한 후 일정 기간 자체 교육을 진행해 실무에 투입할 예정이다.
또 직업훈련반 지도 교사 9명이 일찍이 풍신의 도움으로 기초 재봉 수업을 받았다. 훈련 과정을 마친 이들은 곧 중·고급 과정 이수를 앞두고 있다.
이날 공장을 방문한 박창일 신부와 사업 논의를 한 풍신 박동운 대표는 “‘평범한 시민, 기업 등 모두가 십시일반 보태 사회공헌을 하고 미래를 함께 짜나갈 수 있다’는 평화3000의 신념에 참여 주체들이 보조를 맞추자, 기적은 점점 손에 잡히는 실체가 되고 있다”며 웃었다. 이어 “사람 안의 가능성을 일깨우는 일에, 기업으로서 가능한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전했다.
진로 막막한 청년들 자립 위해
재봉틀과 전문기술 교육 지원
미래 꿈꿀 수 있게 잠재력 키워
“아이들의 꿈이 머지않아 현실이 됩니다. 그만큼 조금 더 박차를 가하는 건 어떨까요?”
학교 교직원과 평화3000 관계자들이 함께한 회의에서 박창일 신부는 학교 측에 ▲더 많은 학생을 직업훈련반에 받아들이고 ▲수업 일수와 시간을 늘리고 ▲교사들의 기술 습득 속도를 높일 것을 제안했다. 박 신부와 완텅·라수깐 교감은 “미래를 함께 짜나가는 ‘동지’로서 노력을 아끼지 말자”며 “형제 같은 긴밀한 관계 안에 꾸준히 논의하자”고 한목소리를 냈다.
어려서부터 가정 형편, 연로한 부모님 걱정으로 일찍 어른이 된 원뉴 찌아뽀유(고3) 양도 “더 많이 수업받고 기술을 익히고 싶다”고 말했다. “나만의 봉제 공장을 운영할 꿈이 생겼다”는 찌아뽀유 양은 “내가 열심히 하는 만큼 꿈을 이루는 데 도움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니 기쁘다”며 빙긋 웃어 보였다.
박주헌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