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성당 스케치

[르네상스 성당 스케치] 아르놀포 디 캄비오

이형준
입력일 2025-01-10 11:17:59 수정일 2025-01-13 15:44:29 발행일 2025-01-19 제 3426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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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꽃’ 두오모…확장 공사 진행하며 돔 설계한 건축가

경제·예술·문화 크게 성장했던 피렌체
기존 대성당 확장한 웅장한 성당 원해
아르놀포, 돔 설계했지만 공사 중 사망
조토·탈렌티·브루넬레스키 거치며 완공

피렌체 사람들이 세운 성당 가운데 단연 최고는 ‘꽃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 피렌체 대성당 Duomo di Firenze)’일 것입니다. 그 대성당의 광장 우측에 성당을 바라보는 두 개의 조각상이 있습니다. 오른쪽 상은 아직 이 이야기에 등장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대성당 돔의 설계자 필립보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1377-1446)이고, 왼쪽 상은 그보다 130년 전에 대성당을 설계한 아르놀포 디 캄비오(Arnolfo di Cambio ·1245–1310)입니다. 조토의 스승 치마부에(1240-1302)가 피렌체 화단을 이끌고 있을 때, 아르놀포는 동시대 최고의 조각가이자 건축가로 활동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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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대성당 광장의 옆에 있는 아르놀포 디 캄비오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조각상. 위키미디어

시에나의 콜레 디 발 델사(Colle di Val d’Elsa)에서 태어난 아르놀포는 젊은 시절 니콜라 피사노(Nicola Pisano·1220–1284)의 제자로 시에나 대성당의 설교단 공사와 페루자 대성당 분수대 공사에 참여하면서 조각가로서 실력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오르비에토 성 도미니코 성당의 드 브라예 추기경 무덤의 조각으로 세상에 알려졌고, 이 작품은 르네상스 무덤 유형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후 아르놀포는 로마에서 활동을 하면서 성 바오로 대성당과 트라스테베레의 산타 체칠리아 성당의 제단 위 캐노피(발다키노, Baldacchino) 공사를 하였습니다. 같은 시기에 그는 프란치스코회 출신의 니콜로 4세 교황의 의뢰를 받아 로마의 성모대성당에 구유 조각상을 제작하였습니다. 조르조 바사리도 언급한 이 조각상은 역사상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그레치오 동굴에 구유를 재현한 지 70년이 채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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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고향 콜레디발델사 광장에 있는 그의 흉상. 출처 Sailko

이후 아르놀포는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Basilica di Santa Croce)의 설계를 수주하면서 피렌체 생활을 시작하였고, 팔라초 델라 시뇨리아(Palazzo della Signoria, 현 팔라초 베키오)의 설계도 맡았습니다. 이 무렵 피렌체의 주교좌성당(두오모)인 산타 레파라타(Santa Reparata)의 규모에 대한 논의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피렌체가 정치와 경제, 예술과 문화에서 크게 성장하면서, 경쟁 도시인 시에나와 피사의 대성당을 능가하는 웅장하고 거대한 대성당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에 피렌체는 산타 레파라타 대성당을 확장하기로 결정하고 아르놀포 디 캄비오에게 설계를 맡겼습니다. 그리고 1296년 9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에 새 성당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아르놀포는 피렌체 시민들의 바람에 맞춰 새 성당이 판테온을 능가하는 큰 돔을 갖도록 설계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새 성당의 본당 부분이 기존의 산타 레파라타를 포함하게 계획하여, 상당 기간 옛 성당이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단테의 「신곡」 연옥편 11장과 13장에 아르놀포의 출생지인 콜레디발델사의 전투가 인용됩니다. 이 구절들로 미루어보면, 단테는 아르놀포가 피렌체 대성당 공사를 하고 있을 때 그를 만났고, 그에게 존경심을 가진 듯합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1310년 아르놀포는 대성당 공사가 진행되는 중에 사망하였고 공사는 중단되었습니다.

이때 아시시와 파도바 등지에서 작품 활동을 벌이던 조토가 피렌체로 돌아왔습니다. 1320년대 초에 그는 아르놀포가 설계한 산타 크로체 성당의 페루치 소성당과 바르디 소성당에 프레스코화 작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피렌체 사람들의 마음은 온통 중단된 대성당 공사에 쏠려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1330년경 산타 레파라타 대성당에서 성 제노비오의 유해가 발견되어 대성당 프로젝트는 새로운 추진력을 얻었습니다. 당시 피렌체 경제는 양모 무역과 은행업의 발달로 매우 번창했고, 신흥 상인 계급 재력가들은 대성당 공사를 아낌없이 후원하였습니다. 이렇게 대성당 공사는 재개되어 건축 책임자로 조토가 선정되었고 대성당 광장에 조토의 종탑이 세워졌습니다.

조토 이후 1351년 프란체스코 탈렌티가 대성당의 건축 책임자에 임명되었는데, 그는 아르놀포의 대성당 평면 계획을 확대 수정하였습니다. 아르놀포의 평면은 아일(창측 복도)이 정사각형 모듈을 갖지 않는 직사각형이고, 아일의 두 배인 네이브(중앙 신자석) 역시 정사각형이 아닌 가로가 긴 직사각형이었습니다. 이런 평면 계획은 산타 크로체 성당에도 나타나는 아르놀포의 전형적인 설계 형태입니다. 탈렌티는 그런 아르놀포의 계획을 변형시켜서 네이브 한 베이(bay)를 정사각형 모듈로 만들었습니다. 네이브가 직사각형에서 정사각형으로 바뀌면서 네이브 한 베이의 종방향 길이가 늘어나게 되었고, 성당도 종방향으로 확장되었습니다. 탈렌티는 아르놀포의 파사드도 수정하였는데 아르놀포가 설계한 외부 측면의 채색 대리석 장식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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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대성당 평면도(산타 레파라타 평면도, 아르놀포의 평면도, 탈렌티의 평면도 비교). 위키미디어

아르놀포의 원래 대성당 설계가 산타 크로체 성당의 설계에 머문 것은 아닙니다. 아르놀포는 산타 크로체 성당의 천장을 목조 평천장으로 올렸지만, 피렌체 대성당에서는 석조 둥근 천장으로 설계하였습니다. 이스트엔드(성당 동쪽의 거룩한 공간)의 구성도 산타 크로체는 중앙에 커다란 앱스(제단이 있는 반원형 돌출 부분)가 있고 좌우에 일자 형태로 경당이 늘어서 있는 반면에, 피렌체 대성당은 세 개의 팔각형 앱스가 크로싱(네이브와 트란셉트가 교차하는 부분)을 중심으로 세 방향으로 둘러 있고 그 위에 대형 팔각 돔이 얹히는 방식입니다. 이런 피렌체 대성당은 아케이드(아치열이 있는 1층)가 높고 클리어스토리(천측창이 있는 2층)가 낮은 2단의 네이브월(nave wall)을 갖고 있으며 수평성을 드러내는 띠 형태의 장식 요소로 인해서 토스카나 지역의 로마네스크 전통을 떠올리게 합니다.

아르놀포의 평면도를 보면서 문득 그에게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가 대성당을 설계할 때 폭이 40미터가 넘는 돔을 올리는 방법을 생각했는지 말입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한 경당에 있는 프레스코화를 보면 1367년경 돔에 대한 어떤 공사가 있었을 것 같은데 실제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1380년 대성당이 완공(?)되었을 때 돔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꽃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은 브루넬레스키가 올 때까지 지붕 없이 50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래도 대성당 광장 옆에 말없이 앉아있는 두 거장은 지금 서로에게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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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강한수 가롤로 신부(의정부교구 건축신학연구소 소장)

 

<사진 설명> 빨간 글씨는 신부님 요청사항

1.  피렌체 대성당 광장의 옆에 있는 아르놀포 디 캄비오 조각상 . 강한수 신부
2.  피렌체 대성당 광장의 옆에 있는 필리보 브루넬레스키 조각상 . 강한수 신부
3. 피렌체 대성당 광장의 옆에 있는 아르놀포 디 캄비오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조각상. 위키미디어
(1과 2가 나란히 나갈 수 있으면 타이틀 사진으로 괜찮을 것 같음. 혹은 두 조각상이 같이 나온 사진 사용해도 됨)

4. 피렌체 대성당 평면도(산타 레파라타 대성당 시절 평면도, 아르놀포의 평면도, 탈렌티의 평면도). 위키미디어
(매우 중요한 사진. 꼭 넣어야 함)

5. 아르놀포가 설계한 파사드의 복원도. 출처: CHIESE DI FIRENZE di emma micheletti. 강한수 신부가 도록을 촬영
6.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고향 콜레디발델사 광장에 있는 그의 흉상. 출처: Sailko

이형준 기자 june@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