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특집] 피조물 보호에 동참할 수 있는 지구법
성경은 “주님 것이라네, 세상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시편 24,1)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피조물은 저마다 고유한 선과 완전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이를 존중하고 인간과 인간의 환경에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는 사물의 무질서한 이용을 피해야 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339항)
하지만 인간은 이러한 하느님 창조의 신비를 잊고 자연에 대한 온갖 착취와 폭력을 일삼았다. 인간의 권리와 의무만을 강조해 온 시간은 자연뿐 아니라 인간의 삶을 황폐화시켰다. 파괴된 자연이 인간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을 목도하며 모든 생명의 존엄성과 권리를 인정하는 움직임이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구 생명체들에게 법인격을 부여하는 지구법이 그것이다. 피조물과의 연대성을 확장하는 전 세계 지구법에 대해 살펴본다.
■ 자연 전체 권리를 법으로 인정
에콰도르는 근대 국민국가의 헌법으로서는 최초로 자연을 권리 주체로 포용하는 내용의 새 헌법을 2008년 채택했다. 에콰도르 헌법은 국가와 시민들에게 ‘자연과 조화하면서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안녕을 추구할 것을 명하고 있다. 에콰도르 헌법에 따르면, 자연은 크게 두 가지의 권리를 갖는다. 하나는 ‘존재 자체와 생명의 순환과 구조, 기능 및 진화과정을 유지하고 재생을 존중받을 권리’이고, 다른 하나는 ‘원상회복될 권리’이다. 또한 헌법에서는 국가는 종의 절멸이나 생태계 훼손 또는 자연 순환의 영구적 변경을 초래할 수 있는 활동을 미리 방지할 수 있는 제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볼리비아도 2010년 ‘어머니 지구의 권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 법률은 ▲어머니 지구의 권리를 생명에 대한 권리 ▲생명의 다양성에 대한 권리 ▲물에 대한 권리 ▲깨끗한 공기에 대한 권리 ▲평형을 유지할 권리 ▲복원의 권리 ▲오염되지 아니할 권리 등 7가지로 특정한다. 따라서 이 법률에서는 공기의 질과 구성이 보전되고, 유독성·방사능 폐기물과 오염으로부터 보전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힌다.
파나마는 2022년 2월 24일 자연의 권리법을 공포했다. 이 법은 자연을 자기 규율적인 불가분의 집합적 실체로 보고 자연의 내재적 가치에 기반해 자연을 존재하고 지속하며 재생할 권리를 가진 주체로 선언한다. 파나마에서는 자연의 권리를 ▲존재하고 지속하며 생명 순환을 재생할 권리 ▲생물 다양성 보전에 대한 권리 ▲인간 활동으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경우 복원될 권리로 보고 있다. 또한 국가는 자연을 본래 가치와 현세대 및 미래 세대의 향유를 위해 현 모습대로 존중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 특정 생태계와 종에 법인격 부여
뉴질랜드는 숲에 법인격을 부여하고 있다. 1954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테우레웨라 숲을 보호하고자 테우레웨라법을 2014년 제정한 것이다. 이 법에 따라 테우레웨라 지역은 영연방 국가 뉴질랜드의 토지나 국립공원이 아닌, 법인으로서 영구 보유지가 됐다.
이 법을 통해 테우레웨라의 법적 정체성과 그 보호 지위를 영구적으로 확립하고 보전하는 것이다. 법은 ▲지역 원주민인 투호에족과 테우레웨라 간의 유대를 유지 강화하고 ▲테우레웨라의 자연적 특성과 아름다움, 토착 생태계와 생물 다양성의 온전성, 그리고 역사적 문화적 유산을 가능한 한 보전하고 ▲공공의 이용과 향유, 오락과 학습 및 영적 성찰을 위한 장소 그리고 모두를 위한 영감의 공간으로 제공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세 번째로 긴 왕거누이강도 법적 보호를 받고 있다. 뉴질랜드 의회는 2017년 3월 15일 뉴질랜드 북섬에 있는 왕거누이강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내용의 왕거누이강 분쟁 해결법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우리족은 150년의 긴 싸움 끝에 자신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강이 법인격의 지위를 인정받음으로써 강을 둘러싼 고유한 전통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이 법에 따라 왕거누이강은 권리와 의무, 책임 등 인간이 가진 것과 같은 법 지위를 갖게 됐다.
스페인 마르메노르법은 지중해에 면한 연안 석호 가운데 스페인에서 가장 큰 135㎢ 면적의 마르메노르 전체 해양 석호 생태계에 관한 법이다. 이 법은 마르메노르 석호의 생태계에 고유한 생태적 가치와 세대 간 연대를 기반으로 자신의 권리를 갖는 법적 주체로서 마르메노르에 법인격을 부여해 미래 세대 보호를 보장하는 것이 목적이다. 즉 마르메노르 자연 실체에 권리를 부여하는 것과 동시에 생태 파괴로 위협받는 석호 지역 인근 사람들의 권리를 강화하고 확장하는 것임을 이 법은 명시하고 있다. 마르메노르를 포함하는 대상의 범위는 마르메노르 석호 및 그 유역은 물론이고 그들을 형성하는 물, 유기체, 군집, 토양, 육상·수상 하부 시스템의 모든 자연적 특성을 포함한다.
바다거북의 권리 주체성을 인정하는 법률도 2023년 파나마에서 제정됐다. ‘바다거북과 그 서식지의 보전·보호에 관한 법률’은 파나마 국토에 존재하는 모든 종의 바다거북을 보호·보전하는 동시에 바다거북의 서식지를 복원하고 오염과 훼손을 방지하고자 한다. 아울러 바다거북의 회복력과 생존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조치와 대책을 수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있다. 이로써 파나마 국토 전체에서 바다거북의 포획, 학대, 감금, 고의적 어획, 가공 내지 고의적 살해는 금지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 제정 움직임이 있다. 해양환경보호단체인 ‘핫핑크돌핀스’는 1월 9일 성명을 통해 “생태법인 제도 도입을 위한 제주특별법 개정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핫핑크돌핀스는 “다양한 환경·생태적 가치를 지닌 세계자연유산 제주도에서 생태적 보전 가치가 높은 특정 생물종, 생태계, 자연환경 등을 생태법인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한 ‘제주특별법’ 일부개정안이 발의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다”며 “생태법인은 비인간인 존재도 법적 주체가 된다는 것으로서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공생의 가치가 법적으로 보장된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갖는다”고 밝혔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위성곤(서귀포시) 의원은 12월 31일 제주 남방큰돌고래에 인격체와 같은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제주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제주특별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제주도는 제주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제주도 조례를 통해 권리를 부여받는 특별생물종으로 남방큰돌고래를 지정하는 등 생태법인 제도화 방안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