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 고딕·르네상스 양식 혼재하던 때 지어진 두 성당
고딕 건축에서 르네상스 건축으로 넘어가는 문턱 앞에 선 노장 아르놀포 디 캄비오(Arnolfo di Cambio)는 문학과 미술 분야에서 이미 르네상스를 향한 발걸음을 앞서 내디딘 젊은 단테와 조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건축 분야에도 르네상스의 기운이 밀려들고 있는 것을 의식하면서, 당대 최고의 건축가로서 절정의 고딕 성당을 설계하고 지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새로운 시대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인 준비로 지금의 시대를 완성하고자 지은 피렌체의 성당들이 있습니다. 고딕 성당이라고 하지만 프랑스에서 시작하고 발달한 고딕 성당과는 사뭇 다른 토스카나의 독자적인 양식으로 지은 성당들입니다. 사실 이탈리아의 건축은 고딕이나 르네상스의 시대에 상관없이 그 내면에는 언제나 고대 로마 건축의 정신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런 성당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Novella)입니다. 13세기 초 이탈리아에는 프란치스코회(작은 형제회)와 도미니코회가 창설되어 열풍을 일으켰습니다. 이 수도회들은 수도원 경내에서 기도하고 일하는 이전의 수도회와 달리 세상에 나가서 설교하고 탁발하는 수도회였습니다. 그렇게 세상과 소통하는 카리스마 때문인지 입회자가 급속히 늘어났고,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수도회원이 수천 명에 이르렀습니다. 수도회는 도시마다 분원을 만들었고 공동체가 어느 규모 이상이 되면 성당을 지어 봉헌하였습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은 1219년 볼로냐에서 12명의 도미니코회 수도자들이 피렌체에 도착하여 공동체를 이룬 것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가 팽창하면서 수도회는 1279년경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공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의심의 여지가 있지만 아르놀포의 스승인 니콜라 피사노(1220-1284)가 성당을 설계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성당의 파사드는 처음에는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으나, 1470년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1472)에 의해서 르네상스 양식으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성당 내부는 시토회 고딕 성당의 전형적인 특징이 잘 나타납니다. 성당 내부의 길이는 99미터이고 너비는 28미터입니다. 네이브월(네이브와 아일 사이의 벽체)은 확실하게 분할되지 않은 상태에서 클리어스토리(네이브월의 2층)에 해당하는 부분에 작은 원형창이 있고, 아케이드(네이브월의 1층)는 고딕 성당임에도 포인티드 아치가 아닌 반원 아치로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네이브월의 반원 아치와 가는 기둥은 내부 공간에 수평적 개방감을 주고 설교에 맞춤인 실용성을 보여주는데, 이는 고딕 양식이면서도 고전의 형식을 취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전과의 연속성은 평면에서도 볼 수 있는데, 3랑식 6베이의 평면은 별도의 성가대석이 없고 앱스와 좌우의 경당들은 둥근 형태가 아닌 정사각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라틴 크로스 형태로 진화하기 전인 초기 그리스도교의 바실리카 양식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천장이 석재 리브 그로인 볼트(리브가 있는 교차형 둥근 천장)로 축조된 것은 이 성당이 고딕 양식임을 알게 하여 줍니다.
미술 분야의 르네상스가 건축 분야보다 앞섰기에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는 르네상스의 미술 작품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먼저 네이브 중앙에는 조토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대성당 프레스코화에 그린 것과 같은 형태로 1290년에 제작한 높이 4.5미터의 대형 십자가가 걸려 있습니다. 왼쪽 아일 끝에는 최초로 원근법을 사용한 마사초의 ‘삼위일체’ 프레스코화가 있는데, 조르조 바사리는 이 그림을 보고 벽이 뚫려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고전 건축물을 배경으로 하는 이 그림은 눈높이를 그림의 하단에 맞추면 원근법상의 소실점이 형성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부 하느님이 장엄하게 성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받아 안아주고 성령이 성자의 머리 위에 내리는 모습으로 삼위일체 하느님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문학·미술 분야 변화가 더 빨라
고딕 양식과는 다른 성당 지어지고
성당 내에는 르네상스 미술품 놓여
피렌체에서 도미니코회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 견줄 성당으로 프란치스코회에서 봉헌한 산타 크로체 성당(Basilica di Santa Croce)이 있습니다. 1211년 프란치스코 성인이 피렌체를 방문한 후 이곳에 프란치스코회 공동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도회의 성장으로 많은 수도자와 신자를 수용할 수 있는 새 성당을 짓기로 결정하고, 1294년 당시 피렌체 최고의 건축가인 아르놀포 디 캄비오에게 설계를 맡겼습니다. 아르놀포는 제대를 중심으로 한 경당들과 성가대석 그리고 트란셉트의 공사를 진행하던 1310년경 사망하였지만, 그의 제자들에 의해 1385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성당은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을 의식한 탓인지 더 큰 규모로 지어져, 성당 내부는 길이 115미터 너비 38미터에 이르는 3랑식 7베이의 바실리카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하지만 평면과 네이브의 형태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과 큰 차이가 없으며, 그 외의 공간 역시 당시 토스카나 지방의 성당들과 유사합니다. 다만 네이브월은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보다 발전된 형태로, 팔각기둥과 고딕 양식의 특징인 포인티드 아치가 높은 아케이드를 형성하고, 그 위층에 높이는 낮지만 클리어스토리가 들어서서 창문을 통해 빛이 들어오게 하였습니다. 반면에 천장은 성당의 너비가 넓어졌기 때문에 무거운 리브 그로인 볼트 대신 경량의 목조 평천장으로 올리는 등 축조 기술의 한계도 드러냈습니다.
성당의 제단에는 중앙에 다각형의 앱스가 있고 양옆으로 직사각형 경당이 늘어서 있습니다. 중앙의 앱스에는 리브 그로인 볼트가 우산 모양으로 설치됐고, 길고 좁은 랜싯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서 빛을 제단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바르디 경당과 페루치 경당이 있으며 그 안의 프레스코화는 모두 조토의 작품입니다. 특히 산타 크로체 성당에는 르네상스인들의 무덤이 많은데, 단테의 기념비, 마키아벨리, 미켈란젤로, 갈릴레오 등의 무덤이 있습니다.
14세기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이 혼재하던 시기에 지어진 이 두 성당을 보면, 건축가가 마치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마태 13,52 참조)의 마음 같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들은 옛것을 소중히 여기며 새것을 희망했을 것입니다.
글 _ 강한수 가롤로 신부(의정부교구 건축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