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움트는 생명의 힘 보고 느끼며 ‘부활의 기쁨’ 체험

박지순
입력일 2025-04-16 09:42:27 수정일 2025-04-16 09:42:27 발행일 2025-04-20 제 3438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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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르포] 발달장애인들의 영농체험장, 강릉 ‘케어팜’
자연 안에서 생명 돌보며 심리 치유…친환경 농법으로 기후위기 극복 노력 동참

주님 부활 대축일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주님께서 부활하심을 경축하는 날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주님의 부활에서 새 삶과 새 생명의 희망을 찾는다. 강원도 강릉에 위치한 발달장애인 사회복귀시설 애지람(愛之籃, 원장 신현재 라이문도 수사)이 운영하는 ‘케어팜’(Carefarm, 돌봄농장)에서 발달장애인들의 손길을 따라 돋아나는 새 생명들은 부활의 의미를 알려 준다. 또한 케어팜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자연과 자연 간 상생의 노력이 배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주님 부활 대축일을 앞두고 케어팜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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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지람' 발달장애인 입주인들이 4월 9일 '케어팜'에서 직원들의 도움을 받으며 옥수수 모종을 심고 있다. 박지순 기자

케어팜이 이뤄지기까지

4월 9일 오후 강릉시 사천면 춘천교구 사회복지회 소속 애지람에서는 변중섭(빈첸시오) 사무국장과 고명숙(가타리나) 후원홍보담당자, 김동현(루카) 사회복지사, 박상규 사회복지 실습생이 애지람 입주인들과 케어팜에서 자라는 생명들을 돌보기 위해 이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날은 발달장애인 입주인 이귀용(스테파노), 김진호, 전찬우 씨가 동행했다. 바깥나들이를 하고 영농체험을 한다는 생각에 입주인들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거동이 다소 불편한 입주인들은 애지람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매주 케어팜에서 일을 한다. 애지람에서 강릉시 구정면 케어팜까지는 14km 정도 거리다. 변중섭 국장이 운전하는 승합차는 20분 정도를 달려 케어팜에 도착했다.

케어팜 입구에는 ‘치유의 숲 케어팜 땅을 돌보고 사람을 돌보고 서로 나누는 곳’이라는 단정한 글씨가 적힌 안내 간판이 서 있다. 케어팜이 어떤 곳인지 알기 쉽고 압축적인 설명이 이어진다.

“본 농장은 발달장애인을 비롯한 다양한 시민들에게 농장에서의 여러 활동을 통해 몸과 마음을 돌보는 치유의 시간을 제공하기 위해 조성되었습니다. 기후위기 시대의 방주가 될 이 공간은 탄소를 저장하는 생태농장이자 다양한 동식물이 함께 살아가는 생명다양성의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어 서로를 만나고, 자연을 만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공존하고자 합니다.”

안내 간판에서 눈길을 또 끄는 부분은 케어팜이 만들어지기까지 상생의 정신으로 협력한 기관들의 명칭이다. 강릉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생태전환마을 내일’, 한살림 강원영동 그리고 애지람이 나란히 등장한다. 케어팜 운영주체는 애지람이지만 캠코는 1100㎡ 넓이(약 333평)의 국유지를 5년 동안 19만230원의 임대료만 받고 빌려줬다. 거의 무상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강릉시는 이곳에 이동식 화장실과 교육용 컨테이너를 설치할 수 있는 예산을 지원했다. 환경과 미래를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모인 생태전환마을 내일에서는 케어팜을 디자인하고 생태농업 정보를 제공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와 한살림은 케어팜에서 생산한 농산물 등을 유통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케어팜이 공식 개장한 것은 2023년 9월 15일이다. 그러나 2021년 11월 30일 애지람과 캠코가 부지 대부계약을 체결한 뒤에도 복잡한 행정 처리와 민원 해결, 개간 작업을 하기까지 2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 이 과정은 애지람의 모토인 ‘사회 속으로!’ 장애인들이 나아가고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가 생명과 치유의 공간을 꾸며가는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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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사회복귀시설 '애지람' 입주인 전찬우 씨가 4월 9일 '케어팜'에서 잡초를 방지하는 짚을 나르고 있다. 박지순 기자

생명을 가꾸며 부활을 준비하다

케어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애지람 최종우(베드로) 관리사가 이날 심을 옥수수 모종을 조심스럽게 트럭에 싣고 따로 와 있었다. 케어팜에 처음 온 방문객들은 어디에 어떤 작물이 심겨 있는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튤립처럼 금방 알아보는 꽃이 아니면 언뜻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잡초처럼 보이는 식물들이 많다. 어떤 곳에는 벽돌이 쌓여 있기도 하고, 길도 복잡하게 갈라져 있다. 케어팜을 조금 더 풍요롭게 관리하기 위해 치유농업사 수업을 듣고 있는 고명숙 홍보담당자의 설명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잡초처럼 보여도 다 이름이 있어요. 아직 열매가 열리지 않았지만 포도, 복숭아, 사과나무도 자라고요. 작년에는 감자가 잘 돼서 애지람 입주인들과 맛있게 먹었고, 올해는 그 자리에 마늘이 자라고 있습니다. 작년에 케어팜 울타리에 수세미를 키웠는데 올해는 울타리 밖에 코스모스를 심기로 했어요. 케어팜 옆에 강릉 바우길 6구간 산책로와 장현저수지도 있어서 코스모스가 피면 사람들이 좋아하겠죠.”

중간중간 벽돌을 쌓아 놓은 곳은 휠체어로 이동하는 장애인들의 눈높이에 맞춰 벽돌로 둘러싸인 내부 공간에서 식물을 키울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케어팜 안에 복잡한 길을 만들어 놓은 것 역시 장애인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이동

하도록 돕기 위한 고민에서 비롯됐다. 길 위에 깔린 야자매트도 눈이나 비가 올 때 장애인들이 미끄러지지 않게 돕는 안전장치다.

이귀용, 김진호, 전찬우 씨는 옥수수 모종 심기 작업이 시작되자 표정에 의욕이 넘치는 듯했다. “기분 좋아요”라는 간단한 의사표현을 하면서 옥수수 모종을 심을 자리에 물을 뿌리고 모종을 심은 다음 흙을 덮어 다지는 일을 정성스럽게 해 나갔다. 애지람 직원들이 옆에 붙어서 하나하나 친절하게 도와줬다. 

변중섭 사무국장은 케어팜은 단지 농작물이나 과실수를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의지에 따라 시행되고 있는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과 기후위기 극복 노력에 동참하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치유의 시간을 주는 것이 케어팜을 운영하는 진정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작업 효율로 치면 장애인보다 비장애인이 비교할 수 없이 높습니다. 케어팜은 장애인들이 영농 체험을 하면서 심리적, 정서적으로 치유 받고, 사회와의 접촉면을 넓히는 공간입니다. 친환경 농법으로만 케어팜을 운영함으로써 생태계 보전과 기후위기 극복에 장애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의미도 중요합니다. 애지람을 운영하는 작은형제회의 정신에도 부합하는 측면이 있고요. 애지람 입주인들처럼 비장애인들도 기후위기 극복에 동참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옥수수 모종을 심은 뒤에는 숙성된 짚을 울타리를 따라 덮어 주는 작업을 이어갔다. 짚을 덮으면 잡초가 잘 나지 않는다. 이것도 친환경 농법이다. 애지람 가족들은 케어팜에서 생명과 상생의 소중함과 더불어 부활의 기쁨을 미리 체험하고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면서 하루 영농체험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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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지람' 가족들이 4월 9일 '케어팜'에서 하루 영농체험을 마치고 기뻐하고 있다. 박지순 기자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