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 르포] 인천교구 농인 공동체 청언본당을 가다 농인들 위한 특별 사목 활발…수어 중심 맞춤형 미사 전례
청인은 목소리를 내어 상대에게 말을 건네고, 상대의 말을 귀로 들어 소통한다. 이렇듯 소통이란 대개 소리를 매개로 이뤄진다. 그러면 과연 농인은 듣거나 말할 수 없다는 이유로 소통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소리’(聲)라는 한자는 손짓(殳)을 구성자로 쓴다. 말하고(声) 듣는(耳) 것을 넘어 손짓으로 전하는 이야기도 하나의 소리라는 지혜가 담겼다. 하느님 안에 모두가 같음을 믿는 우리는 교회 안에서 그 지혜를 어떻게 새롭게 찾을 수 있을까.
인천교구 농인 신자들의 신앙 공동체 청언본당(주임 임성환 바오로 신부) 수어 주일미사와 미사 전후 친교 현장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물리적 파장은 없어도 마음과 마음 사이 파동치는 손짓의 소리(聲)에는 청인들과 차이 없는 농인들의 믿음과 사랑이 너울거리고 있었다.
■ 소리 없이도 건네는 음성
4월 13일 오전 인천 일원은 초겨울처럼 찬 돌풍이 뜨문뜨문 몰아치는 가운데 소나기가 그쳤다가 또 내리기를 되풀이하는 날씨였다. 정오를 향할수록 언제 그랬냐는 듯 흰 구름 틈으로 햇빛이 고개를 내밀고, 봄기운 가득한 하늘 아래 찾은 청학동 주택가. 골목 어귀의 나무들은 지저귀는 새들처럼 스스로 음파를 일으키지는 않아도 ‘몸짓’으로 충만하게 한봄을 알리고 있었다.
길쭉한 소나무 잎새들이 잔바람에 하늘거리고, 목련 가지가 흰색과 자주색 꽃잎에서 봄비 방울을 똑똑 떨구고, 흩어진 벚꽃잎들이 이따금 돌풍을 타고 올라 도로 위 빙글빙글 춤을 추고 있었다.
이렇듯 동작만으로도 생기를 표현하는 자연물들을 넘어 주택가 안쪽 언덕을 올랐다. 청학감리교회 바로 뒤편, 조금 더 봉긋한 언덕배기에 성당이 있었다. 그 앞 차도로 ‘청언성당’ 글귀가 적힌 밴이 9시 무렵부터 농인 신자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형님은 이번 사순 시기 기도 실천에 성공한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아. 하지만 그 후에도 열심히 묵주기도 하려고. 기도 지향도 더 넓힐 거야. 돌아가신 부모님 외에도, 세상을 떠난 다른 농인 신자들의 영혼을 위해서.”
성주간 첫째 날인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인 이날. 농인 이태수(안토니오·64) 씨가 하느님과 약속했던 사순 실천 사항을 주제로 1층 친교 공간에서 벗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처럼 미사 전 신앙 나눔 삼매경인 교우들의 말소리에서 청인들이 들을 수 있는 건 옷소매가 마찰하는 가벼운 소음 정도였다. 하지만 농인들과, 수어를 할 줄 아는 청인 봉사자들 사이에는 시끌벅적하고 정다운 ‘소리’가 오가고 있었다. 청인 기준에서는 과장되리만큼 표현력을 최대한 담아내는 역동적인 표정과 몸짓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수어는 시각 언어라 뉘앙스를 담아내려면 정확한 수형(手形)과 동작 외에도 표정과 제스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청인 언어의 말투나 어조와 같다. 예컨대 오른손 주먹에서 새끼손가락만 편 다음 턱에 두 번 두드리는 ‘괜찮다’도 수형과 동작을 평안한 표정으로 하면 “괜찮아요~”(무사함), 우려하는 표정으로 하면 “괜찮으세요?”(걱정), 흡족한 표정으로 하면 “괜찮은데요!”(감탄)가 된다.
이렇듯 농인 신자들의 말은 음파만 아닐 뿐 똑같은 ‘소리’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11시 교중미사 10여 분 전, 2층 성당에 모여 각자 묵상에 잠긴 50여 명 신자들을 배경으로 주임 임성환 신부(청인)가 성지 주일의 붉은 제의를 입으면서 “농인들이 청인들과 아무 차이 없이 얼마나 성실하게 신앙생활 하는지 다들 감탄할 것”이라며 웃었다.
■ 마음과 마음이 이루는 소통
“둥!”
전례 봉사를 맡은 최우정(요한 세례자·52) 씨가 제대 옆에 꿇어앉아 경건한 표정으로 큼직한 북을 세게 내리쳤다. 거양성체·성혈 때였다. 농인들은 종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북소리는 고막이나 몸에 진동이 와서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청언본당 미사 전례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흐름을 놓치지 않게끔 맞춰져 있었다. 청인 봉사자들과 사제가 미사 통상문과 독서, 복음을 읽으면서 동시통역하듯 해당 내용을 수어로 구사했다. 강론과 성체 배령도 입말과 수어 양쪽으로 동시에 이뤄졌다. 사제가 “그리스도의 몸” 하며 성체를 상하로 한 바퀴 돌리자, 농인 신자가 묵례하며 받아 모셨다. 2개 언어로 미사가 동시에 거행되는 만큼 청인들의 미사보다 늘 길어진다.
농인들은 청인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 수어는 한국어와 별개 언어고, 수어가 모어인 농인들에게 한국어는 제2외국어와 같다. 높은 수준의 교육이 없으면 청인들만큼 빨리 글을 읽고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청인 미사에 큰 파워포인트 화면으로 전례문을 보여준다고 해도 농인들의 전례 참여를 높이는 데는 큰 효과가 없다. 봉사자 대표이자 수어 통역사인 우향숙(미카엘라·청인) 씨는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영어 직독 직해와 일상적 구사가 자유자재인 게 아님을 생각하면 역지사지로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청언 공동체 등 전국에 농인 본당들이 만들어지기 전, 청인들의 몰이해는 농인들을 교회에서조차 외롭게 했다. 이태수 씨는 하느님이 우리의 구원자라는 깨달음으로 20대에 세례받았으나 교우 간 소통이 안 돼 마음과 달리 냉담하게 됐었다. “글 못 읽어요?”라는 말은 사회에서도 자주 듣는 아픈 말이었다.
“귀찮아하거나 욕하는 것도 그 사람들 표정으로 직감할 수 있었죠. 수어는 표정이 중요한 언어라 잘할수록 상대의 표정을 잘 읽는데, 수어를 모어로 하는 우리가 그쯤 눈치 못 챌 리가요.”
그럼에도 농인들은 주일이면 성당을 찾고, 이곳에서 친교를 나눈다. “하느님과 영혼에 대해 늘 궁구하지만, 영적이지 않은 것들에 삶의 지향을 둔 사회 친구들과는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없어 목마르기 때문”임은 그들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요리 관련 자격증이 있는 최우정 씨는 농인이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부당한 해고를 당한 적이 있다. 사회에서도 교회에서도 소외로 상처 입은 그는 “청인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사랑’뿐”이라고 말했다. “‘사랑합니다’ 정도 수어는 교회 구성원 누구나 알고 서로 그 마음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농인이든 청인이든, 우리는 고통 속에도 사랑밖에 모르시던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잖아요. 물론 말과 손짓이라는 서로 다른 ‘소리’를 쓰지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소리인 사랑만큼은 수어로 주고받았으면 좋겠어요. 여러분, 많이 사랑합니다!”
한국교회 최초의 청각장애인 속인(屬人) 본당으로 2011년 설립된 청언본당은 ‘푸른 하늘 같은 하느님의 말씀’(靑言, 청언)을 받는다는 이름대로 수어 미사 및 고해성사 봉헌, 농인들을 위한 피정과 순례 등 농인 사목을 활발히 펼쳐오고 있다. 국내를 벗어나기 힘든 농인들을 위해 올해 4월은 3박4일 일본 성지 순례를 떠났다.
본당은 수어 구사 능력 상관없이 ▲주일미사 후 점심 준비 ▲인천, 시흥, 김포 각지에 사는 농인들을 성당으로 실어주는 차량 운전 ▲미사 음성 해설 등 봉사에 힘을 보탤 청인 봉사자들을 찾고 있다.
※ 문의 032-832-2361 인천교구 청언본당
※ 후원 농협 351-1150-4867-53 예금주 인천교구천주교회유지재단 청언성당
박주현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