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의 기하학적 특성 활용해 중앙집중형 구조 강화 브라만테가 돔과 후진 추가해 확장…돔은 완벽함 상징 요소로 작용
교회는 성 목요일 저녁에, 예수님께서 수난 전날 저녁 제자들과 함께 드신 마지막 만찬을 기념하는 미사를 봉헌합니다. 이후로 이 최후의 만찬은 교회 미술의 중요한 주제가 되어 그림이나 조각 등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러한 작품들 가운데 단연 첫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르네상스 미술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일 것입니다.
가로 8.8미터 세로 4.6미터의 이 대형 벽화는 젖은 회반죽 위에 그림을 그리는 전통적인 기법의 프레스코화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마른 석고 위에 템페라와 유화를 혼합하는 기법으로 그려진 것입니다. 이 기법은 레오나르도가 과학적 실험을 통해서 얻은 것인데, 안타깝게도 내구성이 약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벽화는 손상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실험 정신은 르네상스와 잘 어울립니다. 이 그림은 루도비코 스포르차 일 모로가 레오나르도에게 의뢰한 것으로, 밀라노의 도미니코 수도원 식당 북쪽 벽에 그려져 있습니다.
1459년 밀라노에 진출한 도미니코 수도회는 스포르차 가문으로부터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은총의 성모 마리아)에 봉헌된 작은 경당과 안뜰이 있는 땅을 기증받았습니다. 이후 1463년부터 1469년까지 구이니포르테 솔라리가 ‘죽은 자들의 회랑’과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경당’ 등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1492년 밀라노의 새로운 공작 루도비코는 자신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서 새로운 양식의 성당이 주변 도시의 대표적인 성당에 못지않게 세워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솔라리가 세운 성당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성당은 철거의 위기에 놓였습니다. 다행히 성당의 제단과 성가대석 부분만 철거하기로 하고 이 공사는 공작의 건축가인 브라만테에게 맡겨졌습니다.
브라만테는 돔이 있는 크로싱, 뒤쪽의 성가대석과 앱스 그리고 양쪽 트란셉트, 그리고 외부에 ‘개구리들의 회랑’과 ‘구 성구보관실’을 설계하였습니다. 그는 새로운 성당에 원이라는 기하학적 특성을 이용하여 중앙집중형 양식을 강하게 드러냈습니다. 크로싱은 정육면체 형태로 구성되었고, 그 위에 반구형 대형 돔이 얹혔습니다. 돔은 드럼이 받치고 있으며 그 아래 팬던티브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반구형 돔은 원형이 지닌 기하학적 형태에 의해서 완벽함을 상징합니다.
그 아래로 거대한 둥근 아치가 정육면체의 네 면을 감싸고 있고, 그 가운데 두 개의 측면 아치는 반구형이면서 격자형의 천장이 있는 앱스와 이어지고, 두 개의 중앙 아치는 하나는 네이브 방향으로 또 하나는 성가대석 방향으로 열려 있습니다. 여기서 성가대석은 크로싱의 반지름이 한 변을 이루는 작은 정사각형 형태이고, 양쪽의 트란셉트와 앱스도 같은 지름의 크기를 갖는 반구형 천장입니다. 또한 네이브의 폭도 앱스 및 성가대석의 폭과 같습니다.
성당의 외부 공사는 브라만테가 밀라노를 떠난 후에 이루어졌지만, 외관은 새롭게 구성된 장식 없이 내부 공간의 형태가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크로싱의 돔 하단 부분은 외부에서 보면 거대한 육면체 덩어리로 나타납니다. 그 위에 내부의 반구형 돔이 있는 부분은, 외부에서는 16각형으로 올라가다가 갤러리가 있고 지붕과 랜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앱스 형태의 양측 트란셉트는 외부에서도 반원형 공간으로 드러나며, 제단과 성가대석 부분 역시 육면체 공간과 반원형 앱스가 외부에서도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종탑이 성가대석의 북쪽 면에 직사각형 모양으로 갤러리 높이까지 세워져 있습니다. 이렇게 육면체와 원통형 등의 기하학적 요소로 외관이 이루어진 것은 중세의 형태를 벗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외부 장식의 주를 이루는 테라코타와 화강암은 중세의 롬바르디아 지역주의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장식과 벽체, 그리고 기둥의 오더(고대 그리스 로마의 기둥 체계에 따른 양식) 등에서는 아직 중세와 르네상스의 중간 단계에 머물고 있습니다.
1492년 브라만테는 산탐브로조(성 암브로시오) 대성당의 북측에 밀라노 교구 사제들을 위한 사제관(canonica)을 세우고, 남측에는 시토회 수도자들을 위한 두 개의 회랑(chiostro)을 만들었습니다. 세 공간의 기본 요소는 아케이드이고 여기에 브루넬레스키식의 독립 원기둥 혹은 알베르티식의 벽기둥이 배치된 형태입니다.
먼저 사제관은 고대 로마의 포럼을 참조하여 네 면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4개의 대형 출입구가 있는 평면으로 설계하였으나 실제로는 한 개만 세워졌으며 정사각형의 기둥이 큰 아치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특히 가지를 다듬은 통나무 형태의 기둥이 4개 있는데, 이는 비트루비우스가 말하는 건축 오더에 있어서 나무의 기원을 암시합니다.
브라만테는 대성당의 남측 부속 건물을 철거하고 이오니아식 회랑(chiostro ionico)과 도리스식 회랑(chiostro dorico)을 만들었습니다. 각각 이오니아 양식과 도리스 양식이 사용되었고, 이 가운데 높이가 7.5미터인 아치가 있는데 이는 식당이나 도서관 같은 2층 높이의 공간에 수도자들의 낮은 높이 방을 2층으로 구성한 결과입니다. 특히 도리스식 회랑은 우르비노 팔라초 두칼레의 중정과 브루넬레스키의 피렌체 고아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브라만테의 건축에서 가장 완성도 있는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브라만테가 밀라노 시기에 지은 산타 마리아 프레소 산 사티로 성당, 파비아 대성당,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은 브루넬레스키의 초기 르네상스 건축 양식을 많이 따랐습니다. 이는 밀라노의 장식 전통이 롬바르디아의 고전 영향으로 중세와의 연속성이 남아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산탐브로조 대성당의 사제관과 회랑 공사에서부터 브라만테는 알베르티의 영향으로 오더를 이용한 상징주의를 실험하였습니다.
오더에 있어서 상징성은 로마 고전 건축을 바탕으로 독립 원형 기둥을 다른 형태보다 우위에 두었습니다. 구조적 차원에서 원형 기둥을 주기둥으로 삼았고, 미적인 면에서도 고전 오더의 세 양식을 중심으로 원형 기둥의 기하학적인 명료성, 선형성, 부드러움, 리듬감 등을 표현하였습니다. 브라만테는 로마에서 활동하면서 오더의 상징주의를 더 발전시킵니다.
글 _ 강한수 가롤로 신부(의정부교구 건축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