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고(故) 유수일 주교, “가난한 사람 위해 일하라” 유언 남기고 떠나

이형준
입력일 2025-06-04 09:28:29 수정일 2025-06-04 10:20:25 발행일 2025-06-08 제 3445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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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 당일부터 빈소 조문 행렬 줄이어…겸손한 모습으로 교우 살뜰히 챙긴 모습 회고
작은형제회 입회 후 1980년 서품…2010년 제3대 군종교구장 임명

제3대 군종교구장 유수일(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교가 5월 28일 선종했다. 선종 직후 이틀간 마련된 빈소에는 고인의 생전 모습을 기억하고 회고하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30일 봉헌된 장례미사에서는 1500여 명의 신자가 참석해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했다. 빈소·장례미사 모습과 함께 소탈한 웃음과 겸손함으로 작은형제회와 군종교구를 이끌어 온 고인의 삶과 신앙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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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 고(故) 유수일 주교의 장례미사에 유 주교의 관과 영정사진이 놓여있다. 변경미 기자

 

빈소·장례미사 이모저모

◎... 유수일 주교의 선종 당일인 5월 28일 서울 정동 작은형제회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1층 성당에 마련된 빈소에는 오후 6시부터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프란치스코 가족 수도회 사제·수도자들과 재속회원 등 조문객들은 제대 앞에 수도복을 입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누워 있는 유 주교를 바라보고 기도하며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29일 오후 6시에는 군종교구장 서상범(티토) 주교와 교구 사제단이 조문하고 위령미사를 봉헌했다. 이밖에도 서울대교구 염수정(안드레아) 추기경, 제2대 군종교구장 이기헌(베드로) 주교,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마티아) 주교 등이 빈소를 찾았다.

◎... 조문객들은 하나같이 고인을 ‘소박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빈소에서 위령 미사를 주례한 작은형제회 호명환(가롤로) 신부는 “유 주교님은 소박하고 정이 많으셨다”며 “주교로 임명되시고 새벽에 전화를 주시더니 ‘난 그래도 끝까지 작은형제회다’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생활성가팀 제이팸(J-FAM)의 장환진(요한) 씨는 “유 주교님의 따뜻한 성품을 생각하며 작곡한 노래 ‘하느님의 사랑’을 주교님께서 자주 즐겨 들으신다고 응원해주신 것이 기억난다”고 했다. 이어 “2010년 군종교구장 임명 후 첫 사목 방문지였던 파주에서 군종병들과 미사를 드릴 때의 당당하고 멋있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군종교구 국군중앙주교좌본당 주일학교 교감 유미애(모니카) 씨는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항상 안부를 물어봤다”며 유 주교의 생전을 회고했다. 이어 “주교라는 직함이 무색할 만큼 늘 겸손하고 다정한 모습으로 교우들을 사랑으로 챙기셨다”며 “아프셨을 때도 신자들 앞에서 내색하지 않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시려고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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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장 서상범 주교와 사제단이 5월 29일 서울 정동 작은형제회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1층 성당에 마련된 유수일 주교의 빈소에서 위령미사를 봉헌하고 기도하고 있다. 변경미 기자

◎... 유 주교의 장례미사는 5월 30일 오전 10시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군종교구장 서상범(티토) 주교 주례로 봉헌됐다. 미사 시작 한 시간여 전부터 성당에 자리한 신자들은 묵주를 손에 꼭 쥐고 기도하거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장례미사에는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를 비롯한 한국교회 주교단과 각 교구 사제단·수도자, 신자 약 1500여 명이 함께했다. 참례자들은 평생을 소박하고 겸손하게 살아온 유수일 주교가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기도했다.

◎... 작은형제회 김찬선(레오나르도) 신부는 추도사에서 “주교님께서는 작은형제회 한국관구장과 로마 본부 총평의원 등 무거운 직책을 수행하시며 겪은 수많은 어려움을 오직 믿음과 교회에 대한 사랑으로 감수하셨다”며 “선종 직전에는 수도회 전체에게 ‘많은 일을 하려고 하지 말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일하라’는 유언을 남기시며 우리 수도회 영성의 원천인 프란치스코 성인께로 돌아가라 당부하셨다”고 했다.

◎... 유 주교가 입원한 병원을 자주 찾아 간병했던 조카 유영림(엘리자베스·수원교구 봉담본당) 씨는 “당신을 위한 건 아무것도 챙기지 않고 늘 남을 위해 희생하셨던 분”이라며 “가족이 주교님을 위해 옷가지를 여러 벌 챙겨 드리면 그중 한 두가지만 닳도록 쓰시고 나머지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줄 만큼 검소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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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고(故) 유수일 주교의 관이 운구되고 있다. 이형준 기자


 

삶과 신앙

가난한 가정, 명석하고 얌전했던 학생

유 주교는 1945년 3월 23일 충남 논산에서 4남매 중 막내로 출생했다. 중학교를 수석으로 합격할 정도로 명석했지만 형편이 좋지 않아 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장학금과 가정교사를 하며 얻은 수입으로 학비를 마련했다. 가톨릭 집안이 아니어서 학창 시절 하느님을 알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 지인하나 없던 대전교구 대흥동성당에 홀로 찾아가 3개월을 다녀본 것이 하느님과의 첫 인연이었다.

유 주교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육군사관학교 교장을 지낸 박준근(유스티노) 예비역 중장은 “고등학생 시절 주교님은 얌전하고 공부도 잘하는 친구였다”며 “당시 가톨릭신자가 아니었는데 나중에 신부님이 되셨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며 유 주교의 학창시절을 전했다.

유 주교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과에 재학 중 대학 동기에게 소개받은 개신교 선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1969년 졸업 후 모두의 부러움을 사던 대기업에서 일하던 유 주교는 돌연 개신교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회사를 그만뒀다. 이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프란치스코 성인에 흠뻑 빠졌다. 성인에 대한 경외심과 학창시절 성당에 대한 기억은 유 주교를 천주교로, 특히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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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자 시절의 고(故) 유수일 주교(가운데).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겸손함으로 작은형제회 이끌어

유 주교는 1973년 작은형제회에 입회했다. 수련자 시절, 당시 수도회 수련장의 잦은 꾸중에 첫 서원을 받지 못할까 상심할 정도로 마음이 여렸다. 유 주교는 1975년 첫 서원 허락을 받은 기억을 “내 생에 가장 감사했던 순간”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1980년 사제품을 받은 유 주교는 수원교구 세류동본당, 마산교구 칠암동본당에서 사목하고 서품 받은 지 2년만인 1982년 작은형제회 한국 준관구장이자 명도원 원장으로 발령받아 1985년까지 소임했다. 이후 미국 유학을 거쳐 작은형제회 한국 관구장, 로마 본부 총평의원 등을 거쳤다. 

프란치스코회 가족 수도회인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녀회 유정순(스콜라스티카) 수녀는 “작은형제회 관구장이시던 때 우리 수녀회가 수원교구 인준을 받을 수 있도록 함께 동행하시며 큰 도움을 주셨다”며 “마치 동네 오빠, 형제처럼 수도회 가족들을 대하셨고 당신을 어려워하지 않기를 바라셨던 기억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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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작은형제회 제8대 한국관구장으로 선출된 고(故) 유수일 주교 모습(가운데).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코로나19 팬데믹에도 굴하지 않고 ‘군 복음화’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부터 신병까지 군종교구 식구 모두를 똑같은 형제·자매로 대하겠습니다.”

2010년 한국교회 두 번째 수도회 출신 주교이자 제3대 군종교구장으로 임명된 유 주교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교구장 재임 시절 군은 ‘국방개혁’에 한창이었다. 출산율 저하와 그에 따른 입대 장병 감소, 부대 통폐합 등 군 조직에 큰 변화가 일며 군사목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지혜롭게 대처해 과도기를 극복했다.

유 주교는 군 복음화에도 힘썼다. 일관되게 성경 말씀에 중심을 둔 신앙을 중시했고, 신자 군인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모르는 군 장병·가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구세주로 받아들이길 바랐다. 군종후원회를 활성화하고 군 장병들을 직접 만나며 발로 뛰었다. 특히 ‘세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 주교는 “4~5주 짧은 예비신자 교리를 거쳐 세례를 줘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지만, 세례는 ‘기회’가 있을 때 줘야 한다”고 전한 바 있다. 군대에 온 젊은 청년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이 한국교회 청년 복음화에 큰 역할을 한다는 판단이었다.

2019년 8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 성당’을 봉헌한 것은 유 주교에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 성당 봉헌까지 한국교회와 국군, 미군 모두의 노력이 있었다. JSA 성당은 지금까지도 군사분계선에서 가장 가까운 성당이다.

코로나19 팬데믹도 크나큰 도전이었다. 단체로 생활하는 군 특성상 교구 전체가 신앙생활에 위기를 맞았지만, 유 주교는 교구 차원에서 발 빠르게 사순·부활 특강과 대축일 미사 영상 등을 제작하도록 이끌며 교구민들이 팬데믹을 극복하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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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장 재임 시절 군종교구 전진본당을 방문해 장병들에게 간식을 주는 고(故) 유수일 주교.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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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군종교구 JSA 성당 봉헌 후 기념촬영하는 고(故) 유수일 주교(가운데).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이형준 기자 june@catimes.kr

변경미 기자 bgm@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