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행복하여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칼을 쳐서 보습을”(이사 2,4)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20-12-28 수정일 2020-12-29 발행일 2021-01-01 제 3226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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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비 경쟁, 전쟁 막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는 꼴
세계대전 참극 경험하고도 군비 경쟁에 매달리는 인류
전쟁 막기보다 군사력 통해 자국 이익 관철하려는 속셈
2019년 전 세계 군사비 지출 1조9170억 달러 ‘역대 최고치’
지구촌 한편에선 먹을게 없어 굶어 죽어가는 상황이지만 천문학적 군비 지출은 여전
교황, ‘평화의 날 담화’ 통해 기아 퇴치·최빈국 지원 돕는 ‘세계 기금’ 설립할 것 촉구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1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서 군비 경쟁에 소요되는 자원들을 인류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교회와 교황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군비 경쟁의 허황된 이론을 비판하고, 군사비로 사용되는 자원들을 인간 발전과 빈곤 퇴치를 위해 사용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해 왔다. 하지만 군비 경쟁의 악순환은 끝없이 이어지고, 인류는 매년 천문학적인 비용을 무기 개발을 위해 사용해 왔다. 현황과 추세를 살펴 본다.

■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드는 세상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이사 2,4)

이사야 예언자는 역사의 끝에서 이뤄질 세 가지를 선포한다. 하나는 모든 민족이 하느님께로 모여드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느님이 유일한 판관으로서 불의를 심판하고 정의로 다스리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마지막에 세상에 평화가 임한다는 것이다. 그때에는 칼과 창이 필요없기에 보습과 낫을 만들 것이고 나라와 나라가 서로 거슬러 싸우지 않는다.

군비 경쟁은 상대보다 더 큰 힘을 가져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환상에 바탕을 둔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압도적인 군사력만이 자국의 이익을 무난하게 관철할 수 있다는 속셈에 근거를 갖는다.

1, 2차 세계대전의 참극을 경험하고서도 인류는 여전히 군비 경쟁에 목을 맨다. 지구촌 한편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마실 물이 없어 온갖 질병으로 죽어가지만 여전히 군사 강대국들은 천문학적 숫자의 군비 경쟁에 여념이 없다. 이로써 군사비는 매년 신기록을 경신하고, 군수업체들은 배를 불린다.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드는 꼴이다.

■ 군비 경쟁, 끝없는 신기록

스웨덴에 본사를 둔 스톡홀름 국제 평화연구소에 따르면, 전 세계 모든 나라의 군사비 지출이 2019년 1조9170억 달러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인 2018년에 비해 3.6%가 증가한 것이고 1988년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가장 많은 군사비 지출을 한 5개 나라는 미국, 중국, 인도,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로 이들이 지출한 군사비가 전체의 62%를 차지한다. 미국의 군사비 지출은 7320억 달러로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의 38%를 차지하고, 이는 2~11위 국가의 군사비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2위인 중국은 2610억 달러, 3위인 인도는 711억 달러다.

각국 군사비 증가는 당연히 무기 생산업체들의 배를 불린다. 군사비 지출 규모가 늘어남에 따라 전 세계 무기 시장의 매출 역시 큰 폭으로 성장했다. 매출 규모 주요 25개 무기 생산업체 매출은 2019년 총 3610억 달러로 전년인 2018년에 비해 8.5% 증가했다.

이들 25개 무기 생산업체 중 12개 업체가 미국에 기반을 두고 있다. 특히 매출 규모 상위 5개 업체 매출이 전체의 61%를 점유하고 있으며, 록히드 마틴, 보잉, 제너럴 다이내믹스 등 최상위 5개 업체 모두 미국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미국 다음으로 중국이 전체 매출의 16%를 차지하는데, 25개 업체 중 중국 4개 업체가 상위 10위권 안에 들어 있다.

■ 한국 군사비 지출, 세계 10위

한국 군사비 지출 규모는 2019년 430억9000만 달러로 확고한 10위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은 조금 더 많은 470억6000만 달러로 9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2013년 이래 줄곧 10위를 지켜오고 있다. 2019년 상위 100위권 내 무기 생산업체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46위), 한국항공우주산업(60위), LIG넥스원(67위) 등 3개 한국 업체가 이름을 올렸다.

지난 2018년 제주에서 예멘 난민 사태가 발생했다. 그해 6월 500여 명의 예멘인들이 제주로 들어왔고, 이후 난민 수용과 인정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거셌다. 이들 난민들은 내전을 피해 목숨을 지키기 위해 고국을 떠난 사람들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약 2870만 예멘 국민 중 내전을 피해 달아난 국내 피란민이 365만 명, 예멘을 떠난 난민이 27만 명에 이르고, 사망자만 10만 명에 가깝다. 예멘 내전은 인도주의적 재앙이었다. 그리고 그 재앙의 현장에서는 한국산 무기들이 사용되고 있다.

한국산 무기가 이라크와 인도네시아, 터키 등에서 사용되고, 최루탄들이 인도네시아, 바레인, 터키 등 독재 정권이 민주화 운동과 독립운동 등을 진압하는 데 사용됐다.

2019년 10월 1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의 ‘동풍 41’ 대륙간 탄도 미사일 시가 행진. CNS 자료사진

■ 2000년 이래 재점화한 군비 경쟁

냉전이 정점에 달했던 1988년 전 세계 군비 지출은 1조4410억 달러에 달했다. 탈냉전이 시작되면서 이 수치는 1998년 최하인 745억 달러를 기록했다. 2000년, 분단 후 55년 만에 열린 남북정상회담은 독일 통일에 이어, 탈냉전과 세계 평화의 정착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군비 경쟁이 재점화됐다. 2000년에는 1999년 대비 3.1% 오른 7980억 달러, 2004년에는 1조 달러로 올랐고, 2008년에는 1조4600억 달러로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1988년 전 세계 군비 지출 규모를 넘어섰다.

군비 경쟁은 무기 생산 업체들의 호황으로 이어졌다. 2000년 588억 달러이던 상위 100대 무기업체의 매출액은 전 세계 군비 지출이 1조 달러를 넘어선 2004년 2360억 달러로 4년 동안 4배 증가했다. 2000년 이후 감소한 적이 없었고, 2019년에는 3610억 달러를 기록했다.

■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라”

교회는 분명하게 군비 경쟁이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해악이라고 선언한다.

“군비 경쟁으로 전쟁의 원인들이 제거되기는커녕 오히려 점차 증대될 수밖에 없다. 국제 분쟁이 진정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번져 가고 있다.”(「사목헌장」 81항)

프란치스코 교황은 올해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서 “많은 지역과 공동체가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았던 시절을 더 이상 기억하지도 못한다”며 “분쟁의 원인은 많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파괴와 인도주의적 위기”라고 지적했다.

교황은 이어 무기에 소비되는 막대한 자원들은 “평화와 온전한 인간 발전의 증진, 빈곤 퇴치, 보건 서비스 제공과 같은,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더 중요한 우선 사항에 사용될 수 있다”며 “무기와 다른 군비에 투자할 돈으로 결정적인 기아 퇴치와 최빈국 발전 지원을 위한 ‘세계 기금’을 설립할 것”을 촉구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팬데믹은 보건의료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요구한다. 202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은 코로나19 이전보다 두 배 이상의 사람들이 굶주림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한다.

감염병 팬데믹과 뿌리깊은 과제인 기아와 빈곤과 같은 인류 공통의 위기 상황,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맞는 극도의 위기 앞에서 이제 인류는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라는 이사야 예언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