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한국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회장 유덕현 아빠스

정리 방준식 기자
입력일 2021-12-01 수정일 2021-12-01 발행일 2021-12-05 제 3272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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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수호의 힘, 굳건한 신앙 공동체로부터”

낙태는 태아에 대한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하는 것
기도와 교육, 홍보와 참여로 생명문화 전파시켜야
작고 겸손한 삶을 살며 공동체 카리스마 높여가면
오늘날 교회 성소의 위기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어

죽음의 문화가 만연한 우리 사회, 생명윤리는 무시당한 채 ‘책임 없는 자유’만을 추구하는 세태 속에 태아들이 죽어가고 있다. 생명경시풍조가 만연한 가운데, 인간의 손으로 인간을 단죄하는 사형제도 또한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는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를 일삼으면서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다. 세속주의, 개인주의 확산 등의 영향으로 교회도 ‘성소의 위기’를 걱정하고 있다.

해법은 없는 것일까. 유덕현 아빠스(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고성수도원 대수도원장)를 만나 생명문화 수호와 기후위기 대응, 그리고 성소의 위기 등 교회 안팎을 둘러싼 문제들에 대한 답변을 들어봤다.

유덕현 아빠스는 “생명문화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교회가 시노달리타스의 정신을 살려야하며 국민적인 공감대를 얻으려는 노력 또한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대담: 장병일 편집국장

일시: 2021년 11월 26일

장소: 고성수도원

-장병일 편집국장(이하 장 국장): 한국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신임 회장으로 선출되셨습니다. 소감과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유덕현 아빠스(이하 유 아빠스): 프란치스코 성인을 먼저 떠올려봅니다. 성인은 아주 작고 겸손하게 사시면서 이웃과 모든 피조물을 형제로 여기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노달리타스 정신은, 모든 이와 모든 것을 함께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장상들 역시 서로 위로하고 지지받고 관심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각 수도회가 보유하고 있는 휴가지, 요양시설, 각종 수행 프로그램을 서로 공유할 수 있도록 제안할 생각입니다.

덧붙이자면, 저희 수도원과 가톨릭신문이 함께 펼쳤던 ‘수도원 스테이’가 아주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안정화되면 각 수도회가 공동으로 ‘수도원 스테이’를 진행하는 것도 매우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장 국장: 프로라이프 운동 등 생명문화 가치 실현을 위한 교회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현재의 생명문화와 관련한 이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 아빠스: 1973년 모자보건법이 제정됐습니다. 낙태를 할 수 있는 5가지 예외조항이 있었습니다만 이를 악용해 매년 150만 명, 하루 평균 4100명의 태아가 살해됐습니다.

지금까지 7200만 명의, 전혀 자기 방어권이 없는 태아들을 학살한 것입니다. 경악을 금치 못할 일입니다. 낙태는 태아에 대한 사형선고이자 집행입니다. 경제적ㆍ사회적인 문제로 낙태를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의 문제들을 풀어나가야 합니다.

저희 역시 각 수도원에 작은 경당을 만들어 낙태 당한 아기들의 영혼을 위한 분향소에서 묵상하고 기도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사제와 수도자들을 대상으로 교회의 가르침에 따른 성교육과 실제 사례 전파 등 다양한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 있도록 독려하겠습니다.

-장 국장: 그렇다면 생명문화의 가치를 세상에 널리 전파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유 아빠스: 극단적인 자유주의, 유물론적인 사고, 우생학적인 사고, 쾌락주의와 소비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네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첫째로 기도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정치적이고, 세속적이며, 악마적인 것들과 싸울 수 없습니다. 둘째로 교육입니다. 성행위에는 반드시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것, 인간 생명이 태어난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생명문화 전문가를 양성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홍보입니다. 언론 매체가 적극 나서야 할 것이며, 특히 생명문화와 관련된 실화를 영화화하는 것도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참여입니다. 교회 고위 성직자들이 입법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하고 설득해야 합니다.

-장 국장: 생명문화와 관련해 사형제도 폐지 이슈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관련 특별법안이 국회에 9번째로 발의돼 있습니다. 특별법안을 관철시키기 위한 방안은 무엇이겠습니까.

▲유 아빠스: 사형을 받을만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생명도 하느님의 것입니다.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하느님께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줘야 합니다.

사형보다는 장기간의 징역형으로 전환하고, 죽기 전에 반드시 처절하게 반성하고 피해 입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속죄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처럼 범죄자 본인도 하느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해야 합니다.

교회가 왜 사형제도를 반대하는지에 대해 각종 교육과 홍보 매체를 통해 국민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낙태, 생명수호, 사형제도 폐지와 같은 큰 명제들은 다른 종교와도 연계해야 더욱 효과적일 것입니다.

-장 국장: 생명 수호의 힘은 결국 ‘신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유 아빠스: 신앙은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시도달리타스의 정신처럼 ‘함께 믿는’ 것입니다. 신앙은 교회의 신앙입니다. 성직자와 수도자, 각 교구와 수도회가 ‘신앙 공동체’로서 더욱 긴밀한 협조로 일치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한 노력이 신앙의 열매로 승화되고, 그 열매가 신자들을 포함한 세상 모든 이에게 생명의 가치를 인식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고, 외로운 사람들을 내버려 두지 않고, 모두가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고, 생명을 파괴시키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인식을 개선시킴으로써 우리 모두 함께, 자연스럽게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장 국장: 주제를 환경문제로 돌려보겠습니다. 생명문화와 함께 교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기후위기 대응’ 문제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어떤 대처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유 아빠스: 기후위기 역시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노달리타스 정신으로 돌아갑시다. 모든 인간과 피조물을 형제로 여겨야 하며, 미래에 태어날 우리의 후손들과 현재의 우리 모두가 긴밀하게 연결돼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기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에 ‘나만 잘 되고’, ‘우리나라만 잘 살면 된다’는 잘못된 의식에서 벗어납시다. 공동의 집인 지구를 살리기 위해 작고 겸손한 삶을 추구해나갑시다.

작은 노력으로부터 시작되는 환경수호 정신을 키워나가는 것이 그 어떤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도 급선무라고 봅니다.

-장 국장: 아울러 성소의 위기 문제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수도성소는 물론이고 교회 전반적으로 성소가 감소하는 현실입니다. 어떤 대책이 필요하겠습니까.

▲유 아빠스: 성소의 위기와 관련한 요인은 외부적인 것과 내부적인 것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외부적인 요인은 출산율 감소와 쾌락주의입니다.

그러나 외부 요인보다는 내부적인 요인이 더 심각합니다. 수도자들의 모습이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못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와야 할 강렬한 기쁨의 기운, 경청의 자세, 사랑하려는 열정, 기도와 말씀에 대한 갈증이 기성 수도자들에게 보이지 않는다면 젊은이들은 성소를 선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작고 겸손하게, 온 인류와 피조물을 형제로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각 공동체의 카리스마와 정체성을 살리는 길이며,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현대의 성인이라 할 것입니다. 성인 한 명이 나면, 성소자는 1000명, 1만 명으로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입니다.

가톨릭신문사 사장 김문상 신부(오른쪽)와 장병일 편집국장(왼쪽)이 11월 26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고성수도원에서 유덕현 아빠스(가운데)를 만나 대담하고 있다.

유덕현 아빠스(왼쪽)와 가톨릭신문사 사장 김문상 신부(가운데), 장병일 편집국장이 11월 26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고성수도원에서 대담을 앞두고 담소를 나누고 있다.

정리 방준식 기자 bj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