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특집] 발달장애인 관련 복지 정책 논란과 해결 방안은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22-05-17 수정일 2022-05-19 발행일 2022-05-22 제 3295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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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일적인 ‘탈시설 정책’ 재고해야… 현실 반영한 로드맵 절실
정부, 인권침해 이유로 장애인 시설 폐쇄·신규 금지 정책 추진
중증발달장애인 등 유형별 특수 상황에 대한 배려 부족 지적
장애인 생존 걸린 문제… 돌봄 서비스 지원·인식 개선 나서야

발달장애인 입주인들이 2021년 6월 ‘조이빌리지’에서 제빵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위치한 성인 발달장애인 주거공동체인 ‘조이빌리지’는 ‘1인1실’ 서구 선진국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조이빌리지 제공

지난 4월 19일 청와대 앞에서는 발달장애인과 그 부모 등 2500여 명이 참석한 집회가 열렸다. 이들 중 550여 명이 삭발하며 ‘발달장애인 24시간 돌봄시스템 구축’을 위한 정부 지원 확대와 탈시설 권리 보장을 요구했다. 또 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는 ‘탈시설은 곧 죽음’이라며 보건복지부 앞에서 소복을 입은 채 지금도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의 ‘탈시설’ 장애인 복지 정책에 대한 반대 담론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경우 장애인 탈시설 정책은 이들의 복지 현주소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가톨릭교회는 정부의 ‘장애인 탈시설’ 정책을 마주하며 발달장애인 복지에 어떤 대안과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지 알아본다.

■ 발달장애인의 특수성

발달장애인 복지는 그들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한다. 발달장애인은 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으로 나뉜다. 지적장애는 지능발달 장애로 학습이 불가능하거나 제한을 받아 성인이 돼도 어린아이 정신 수준에 머무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자폐성장애는 사회적 상호작용이나 의사소통 기술의 발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지적장애에 더해 감각이상과 심한 강박행동, 자해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발달장애인은 부모를 포함해 누군가의 돌봄이 항상 필요하다는 점에서 지체장애인, 시각·청각장애인 등과는 구별되는 특수성을 지닌다.

2021년 보건복지부 통계에 의하면 등록된 전체 발달장애인은 25만6000명 선으로 그 중 지적장애인은 약 22만2000명, 자폐성장애인은 약 3만4000명이다. 같은 통계에서 전체 장애인 수는 264만5000명으로 발달장애인은 전체 장애인의 9.7%를 차지한다. 장애인 10명 중 1명꼴이다.

그러나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 중 발달장애인 비율은 정원의 80%를 넘는다. 또한 시설 부족으로 발달장애인 중 노숙인시설이나 정신장애인시설 등에 거주하는 이들도 다수 존재하고 있다. 이는 보호자가 없을 때 혼자 살 수 없는 중증발달장애인에게 시설 거주는 온전한 돌봄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 ‘탈시설 정책’에 교회가 반대하는 이유

정부는 지난해 8월 2일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을 발표했다.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을 지역사회로 보내 자립시킨다는 취지다. 장애인 시설의 인권침해를 주된 이유로 꼽고 있다. 정부는 새 시설 설치를 금지하고 기존 시설도 폐쇄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탈시설 정책에 가장 밀접히 관련된 이들이 중증발달장애인들이다. 시설을 벗어날 경우 더 큰 인권침해 위험에 놓일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중증발달장애인 특성상 전문 돌봄 인력을 갖춘 시설을 벗어나면 장애인 본인과 가족 모두 불행해질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한국가톨릭장애인사도직협의회 담당 김재섭 신부(요한 마리아 비안네·작은형제회)는 “정부의 탈시설 정책은 인권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시설폐쇄만을 목적으로 하는 그릇된 방편”이라며 “장애 유형별, 장애인 개별 상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위원장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는 지난해 10월 6일 ‘탈시설 로드맵’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중증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의 어려운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강제적인 정책으로서 결과적으로 장애인과 가족들에게 돌봄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한 새로운 방향의 탈시설 로드맵을 구축해 달라”고 요청했다.

■ 발달장애인 복지 해답 ‘조이빌리지’에서 찾다

한국교회 안 다양한 발달장애인 시설 중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위치한 ‘조이빌리지’(원장 김미경 루치아)는 탈시설 정책에 대한 모범적 대안, 시설 거주 발달장애인들의 인간존엄성 실현, 장애인시설과 지역사회의 통합 모델을 제시하는 곳으로 손꼽힌다.

조이빌리지는 성인 발달장애인 주거공동체 시설이다. 1998년 12월 가톨릭신자 발달장애인부모 기도모임으로 시작된 자조모임 ‘기쁨터’에서 출발해 의정부교구 사회복지법인 대건카리타스(회장 도현우 안토니오 신부)와 손잡고 2004년 발달장애인 주간보호센터, 2005년 장애-비장애 통합지역아동센터, 2010년 발달장애인그룹홈 두 곳에 이어 2019년 5월 20일 ‘중증장애인거주시설 조이빌리지’ 설치 신고를 마쳤다. 24년 전 시작된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노력이 교회 협력을 얻어 결실을 맺었다.

조이빌리지는 공동주택의 장점과 개별적 돌봄을 조화시켜 중증발달장애인에게 지속 가능한 돌봄을 제공한다. 또 서구 복지선진국에서는 이미 법제화된 ‘장애인 1인1실’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조이빌리지에서 생활하는 중증발달장애인 27명은 각자 자기 방을 갖고 있다. 이에 대해 김미경 원장은 조이빌리지를 ‘일찍 온 미래’, ‘사회주택’으로 표현하며 “정부의 탈시설 정책은 아름다운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의사표현이 힘든 중증발달장애인이 혼자 살게 되면 의료서비스 등에서 소외되기 쉽고 오히려 고립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이빌리지는 의정부교구 파주 광탄성당과 바로 인접해 있어 거주하는 발달장애인들이 이웃주민과 신자들, 봉사자 등과 어우러지면서 의료서비스와 직업 훈련도 받는다. 지역사회 안에서 이미 탈시설 개념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의정부교구 출신 신학생 전체와 서울대교구 일부 신학생들이 군 제대 후 복학 전 3개월 과정으로 조이빌리지에서 현장 실습을 하고 있는 것도 지역사회 통합모델 실현에 일조하고 있다.

■ 국가 지원과 신자들 인식 개선 필요

가톨릭교회 내 발달장애인 복지시설들은 대부분 재정적 어려움을 토로한다. 특히 조이빌리지는 설치 신고를 마치고 3년이나 지났음에도 코로나19와 정부의 탈시설 정책으로 국고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도현우 신부는 “지금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조이빌리지는 고사 위험에 처할 만큼 국고지원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도 신부는 “복지는 본래 국가가 책임지는 영역”이라며 “하루빨리 조이빌리지에 대한 국고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도 신부는 “장애인 스포츠에서 지체장애인을 위한 패럴림픽과 발달장애인을 위한 스페셜올림픽이 구분돼 있듯 지적 수준이 어린 아기나 치매 노인 같은 중증발달장애인을 위한 거주 서비스는 달라야 하고, 이는 이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며 발달장애인에 대한 국가의 세심한 배려를 요청했다.

조이빌리지와 인접한 광탄본당의 예처럼 가톨릭신자들이 발달장애인 인식 개선에 허브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재섭 신부는 “신자들의 인식 개선이 발달장애인 복지 향상에 정신적 기초가 된다”며 “장애인들을 사회복지 대상으로만 여기지 말고 함께 사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