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특집] 캄보디아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상)

캄보디아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3-01-16 수정일 2023-01-31 발행일 2023-01-22 제 3328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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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맑은 눈 보고 웃었고, 희망 없는 현실에 눈물 흘렸다 
천주교 신자는 전체 인구의 0.12% 
신자 대부분이 피난 온 베트남인들
소수 종교라는 이유로 차별 받아와
출생등록 못해 정규교육도 어려워

식수 시설 마련·무료진료·방역 등
전천후로 사목하는 선교사제들
“열악한 환경에도 신앙 지키려는
 주민들 마음 알기에 소중한 공동체”

1월 11일 방배4동본당 신자들이 쎈쏙 성요셉본당 신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행. 색다른 풍경과 우리와 다른 문화를 가진 나라를 보고 느끼며 우리는 삶의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서울 방배4동본당(주임 이동익 레미지오 신부) 신자들이 색다른 여행에 나섰다. 한국외방선교회(총장 정두영 보나벤투라 신부)의 캄보디아 선교지를 5일 동안 방문한 것이다.

캄보디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591달러. GDP가 한국의 20분의 1 수준인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로 꼽힌다. 캄보디아와 멀리 있는 나라의 사람들은 미디어를 통해 먹고 자고 입을 것이 부족한 그들의 단편적인 모습만을 접할 뿐이다. 하지만 가난은 그것보다 큰 것을 빼앗고 있다는 것은 가까이에 섰을 때 볼 수 있었다. 바로 희망이다. 방배4동본당 신자들은 캄보디아 아이들의 순수한 눈을 보고 웃었고, 그런 아이들에게 희망이 없는 현실에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 그 시간을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느님의 자녀인 그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다. 캄보디아에서의 5일은 오늘과 다른 내일을 만들었다.

방배4동본당 신자들, 마음 따뜻해지는 여행 떠나다

1월 10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시작된 첫 여정. 화려하고 얇은 옷을 입은 여느 여행객과 달리 방배4동본당 신자들은 운동화와 얇은 가디건, 가방에는 모기기피제와 묵주, 미사보를 챙겼다. 풍경 좋은 관광지가 아닌 가난한 이들이 살고 있는 빈민지역에 갈 것을 대비해서다. 주임 이동익 신부는 5년 전 한국외방선교회 캄보디아 사목지를 방문하고 신자들과 함께 다시 올 계획을 세웠다. 캄보디아에서 만난 ‘양냄새 나는 참된 목자’를 신자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주춤했던 캄보디아 방문은 오랜 기다림 끝에 성사됐다. 1월 9일부터 13일까지 진행된 선교 워크숍에는 본당 사목회장을 비롯한 사목위원과 전 회장단, 여성구역장 등 19명이 함께했다.

이들은 한국외방선교회에서 운영하는 코미소 직업학교와 코미소 클리닉, 그리고 현지인 미사가 거행되는 썸롱톰성당, 뽀젠똥성당, 쎈쏙 성요셉성당을 둘러봤다. 불교 국가인 캄보디아에서 가톨릭 신자는 인구의 0.12%에 불과하다. 숫자로는 2만3000여 명으로, 이중 전쟁 때 캄보디아로 피난을 온 베트남인이 70%를 차지한다. 캄보디아에 있는 교회이지만 미사에 참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베트남 사람들인 것이다.

1월 12일 방배4동본당 유정임(오른쪽)씨가 썸롱톰본당 신자 어린이와 기쁘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캄보디아 내에서 소수 민족이자 소수 종교를 믿고 있기에 오랫동안 차별을 받아온 베트남 신자들. 그들은 먼 한국에서 자신들을 보러 온다는 소식에 기쁜 마음으로 손님을 맞았다. 12일, 썸롱톰성당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마중을 나온 것은 아이들이다. 성당에 모인 50여 명의 아이들은 두 손을 모으고 “줌 립 쑤어”라고 인사를 한 뒤 방배4동본당 신자들에게 와락 안긴다.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의 환대에 기쁨을 선물받은 신자들은 그런 아이들이 생계를 위해 초등학교도 졸업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말을 듣고는 가슴 아파했다. 캄보디아에 사는 베트남 아이들은 출생등록을 하지 못해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없다는 게 썸롱톰성당에서 사목하는 윤대호(다니엘) 신부의 설명이다.

“남대문에 가면 아이들이 신을 양말이나 티셔츠를 잔뜩 사올 수 있을 텐데….”

홍보분과장 조영애(체칠리아)씨는 손님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느라 맨발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한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양말을 가져오지 못한 게 마음에 남았다. 여성부회장 박미정(스테파니아)씨도 미사 중에 순수한 목소리로 성가를 부르던 아이들의 모습에 눈시울을 붉혔다. 박미정 여성부회장은 “노랫말은 알 수 없지만 그 소리가 너무 아름다워서 마음이 울컥했다”며 “내가 알고 있던 것 이상의 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선교사제에게서 발견한 예수 그리스도

“한국의 1970년대 모습 같네.”

197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신자들은 캄보디아의 풍경을 보며 40여 년 전 한국을 떠올렸다.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것들 대부분이 불가능한 캄보디아. 40여 년 전 한국을 기억하는 신자들은 열악한 곳에서 사목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선교사제에 대한 걱정과 응원의 마음을 기도로 전했다.

2001년 캄보디아에 파견된 한국외방선교회 선교사제들은 본당사목 외에도 코미소 기술학교, 무료진료소 등 NGO 활동을 하고 있다. 캄보디아는 불교국가이기에 자유롭게 선교활동을 하기 어렵다. 이에 선교사제들은 교육 등을 통해 아이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본당에서 하는 일은 미사거행만이 아니다. 교육시설을 만들고, 마을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시설을 만들고, 코로나19가 확산됐을 때는 방역까지 책임지며 ‘주민센터’ 역할을 도맡고 있다.

1월 12일 썸롱톰본당 아이들이 방배4동본당 주임 이동익 신부에게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1월 10일, 방배4동본당 선교 워크숍의 첫 일정이었던 쎈쏙 성요셉성당 방문. 가이드로 동행했던 이범석(시몬 베드로) 신부는 성당 도착 전 “사목지 중에서도 가장 열악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 놀라더라도 아이들을 보고 반갑게 인사해 달라”고 당부했다.

버스가 들어가지 못하는 흙길을 걸어 도착한 성당. 가는 길에는 쓰레기와 오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원종혁(아우구스티노) 신부는 지난해 9월부터 쎈쏙 성요셉성당에서 사목하고 있다. 이곳 역시 베트남 신자들이 주를 이루며 30~40명이 미사에 참례하고 있는 상황. 나무로 지어진 허름한 작은 성당은 우기에 비가 들이닥치면 바닥에 고여 악취가 진동한다. 하지만 함께 모여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이곳 신자들은 감사하게 여긴다는 게 원 신부의 설명이다. 사제가 없다면 사라질 공동체. 원종혁 신부는 “어려움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고자 한 주민들의 마음을 알기에 이 공동체가 소중하다”고 말했다. 생전 처음 본 풍경에 놀랐던 방배4동본당 신자들은 열악한 상황에서 신앙을 지켜낸 이곳 신자들의 마음에 감동하고 격려를 보냈다. 또한 이곳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한국에 돌아가 선교지를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다.

정영화(베드로)씨는 “취약한 곳에서 사랑의 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고 느낀 것이 많았다”며 “또한 캄보디아에서 선교하시는 신부님들을 통해 예수님의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사목회장 전병성(그레고리오)씨는 “캄보디아에서 신앙에 대한 생각의 폭을 넓히고 돌아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라는 주임 신부님의 뜻을 알 것 같다”라며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지속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사목위원들과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쎈쏙 성요셉성당 가는 길에 만난 캄보디아 아이들.

캄보디아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