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낙태시술이 가장 엄격하게 규제되는 나라로 유명하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한 독일 여성이 독일에서는 낙태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외국으로 가서 낙태 시술을 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낙태 시술의 엄격함은 물론 법적인 규제가 매우 엄격한데 그 이유가 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낙태를 직접적으로 시술하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반대가 더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그들의 커다란 반대에 독일 연방 형법 218조는 매우 엄격하게 낙태를 규제하도록 제정된 것이다. 그들이 반대했던 이유는 『의사란 생명을 구하는 사람이지, 죽이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매우 단순한 이유였다.
당시 가톨릭 신자 산부인과 의사들도 낙태를 엄격히 규제하는 입법과정에 매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들 역시 생명을 살리는 의사로서의 사명감에 기초하여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낙태시술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용기있게 선언할 수 있었고, 이처럼 생명을 사랑하는 그들의 올바른 양심이 독일을 그 어느 나라보다도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국가로 이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유보된 줄로만 알았던 대한의사협회의 「의사윤리지침」이 협회 상임위원들의 심의로 월초에 이미 통과되었다고 한다. 이 지침이 통과되기 전에 그 내용이 알려지면서 몇몇 사항에 있어서는 심한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그들은 그러한 논쟁을 뒤로한 채 단순히 실정법의 테두리 안에서 실천할 것이라는 단서를 붙이면서 통과시킨 것이다.
사회적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실정법과의 충돌 문제라기보다는 의료인들에게 있어서 더욱 본질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생명 존중의 문제였다. 그러나 그들은 더 중요한 문제에는 아예 귀를 막아버린 것이다.
「의사윤리지침」이 비록 강제지침은 아니라고 하지만 의료인들의 의료행위에 대한 윤리 기준을 제시하고, 의료인 개개인의 의료행위에 대한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이 지침의 기초는 인간 생명의 보호와 존중이라는 의료인의 철저한 직업윤리의식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지침의 내용 중에서 낙태시술, 인공수정, 대리모 그리고 인간배아 복제 문제 등에 대해 허용을 밝히고 있는 것은 가히 실망스럽다. 생명을 사랑하는 의료인들의 윤리기준이 오히려 생명을 거스르는 악을 선택함으로써 선을 행하겠다는 거짓을 아름답게 보이도록 포장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개신교 의사들의 일부 모임이 이 지침에 반발하여 대한의사협회로부터 탈퇴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의사윤리지침」이 그들의 종교적 신념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 지침에 대한 가톨릭 의사들의 생각은 어떤지도 궁금하다. 독일의 가톨릭 신자 산부인과 의사들이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낙태 시술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할 수 있었던 것처럼, 종교적 신념과 함께하는 삶이 요구되는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