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황폐한 지구촌에 ‘희망의 씨앗’ 함께 심어요!”

박주현
입력일 2025-01-16 10:47:50 수정일 2025-01-20 16:29:27 발행일 2025-01-26 제 3427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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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원조 주일 특집] 한국희망재단이 펼치는 마을생계자립 캠페인 ‘희망씨앗’

“우리의 작은 ‘희망씨앗’ 한 알은 다른 이의 두 알, 세 알과 모여 묘목, 병아리, 새끼 돼지가 되고, 주민들이 함께 일하는 협동농장이 되어 희망찬 자립 마을을 이룹니다.”
한국희망재단(이사장 서북원 베드로 신부)은 전쟁, 기근, 기후위기로 무너진 지구촌 이웃들을 일으켜 세우는 마을생계자립 캠페인 ‘희망씨앗’을 펼치고 있다. 협동조합 마련, 생계 수단 확보, 사회 기반 시설 설치로 ‘마을공동체’가 다시 세워지면, 자포자기했던 그들이 지구촌의 떳떳한 일원으로서 일어설 터전이 되기 때문이다. 일시적 지원을 넘어 동료 인간을 진정으로 일으켜 세우는 희망씨앗 캠페인을 해외 원조 주일을 맞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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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룬디 카마카라 마을의 ‘희망 초등학교’ 아이들이 교실 문을 열고 후원자들을 향해 감사의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 아이들은 재단의 도움으로 마을 내 식수시설이 마련되자 하루 왕복 3시간 이상 물을 길으러 다닐 일 없이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됐다. 한국희망재단 제공

■ 자립의 터전, ‘마을공동체’

재단은 2005년 설립 초기부터 ‘마을생계자립’ 캠페인들을 펼쳐왔다. 지역사회개발, 교육·식수·보건 개선, 기후위기 대응 등 한 마을의 주민들이 힘을 합쳐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단계적으로 진행한다.

캠페인은 겨자씨처럼 작은 나눔을 통해 무너진 마을과 사람들의 삶을 살릴 수 있다는 뜻에서 2024년 ‘희망씨앗’이라는 새 이름이 붙여졌다. ▲미얀마 군부 피해 실향민 공동체 회복 캠페인 ‘다시 일어나 미얀마’ ▲방글라데시 빈곤아동 교육사업 및 급식·간식 지원 캠페인 ‘따스한 밥 한 끼’ ▲아프리카 여아 인권옹호·역량강화사업 ‘걸스업’(Girl Stands Up) 등 사례 중심 사업들로 구성된다.

핵심 목표는 마을공동체 재건이다. 흩어진 개인이나 가정은 구조적 가난과 재난 앞에 속수무책이지만, 마을은 구성원들이 힘을 합쳐 대처하는 사회·정치·경제적 연대체의 출발점(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주민들이 난관에 부딪혀도 극복할 의지가 생기고, 후원 없이도 스스로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

활동가들은 식수시설부터 확충한다. 시설 설치·개보수, 식수관리위원회 조직 등 주민들이 스스로 시설을 잘 관리하게 돕는다. 물은 생존과 직결될 뿐 아니라 교육, 생계, 안전 등 삶의 모든 영역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물이 부족한 사람들은 삶을 전방위적으로 위협받는다는 것이다.

물 문제가 해결되면 교육사업에 착수한다. 하루 3~4시간 물을 뜨러 다녀야 했던 아이들은 학교에 가기 시작한다. 그러면 어른들도 안정적 생산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활동가들은 지역사회개발사업을 펼쳐 협동농장 구축, 가축 지원, 협동조합 설립 등 지역공동체가 스스로 빈곤에서 벗어나 안정적으로 소득을 창출하도록 돕는다. 주민들이 일할 수 있는 건강을 위해 보건사업을, 지속 가능한 자립이 되도록 친환경 농업 장려, 태양광 전력 시설 설치, 숲 조성 등 기후위기 대응사업을 펼친다.

이러한 물적 토대는 자립 노력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을 조성한다. 재단은 현지 지부를 두지 않고 현지 협력단체(NGO)와 협업한다. 현지 단체가 자연스럽게 역량을 키워 후원이 끝나도 주민들과 꾸준히 변화를 이어가게 하기 위함이다.

마을 단위의 주민들도 현지 단체 성장과 발맞춰 조직화한다. 자조(自助) 그룹 또는 협동조합 방식으로 기초 조직이 만들어지면, 그것이 더 큰 조직으로 확장돼 공동체 발전을 꿈꾸는 주민들의 역량이 마침내 하나로 모이게 된다. 그렇게 최종 목표인, 사업과 대상자 자체의 자립이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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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타플레 마을의 마하락시미 여성 협동조합원들이 2019년 현지 협력단체 SoD Nepal과 재단의 도움으로 진행된 자립 역량 강화를 위한 여성 리더십 훈련 수업을 듣고 있다. 한국희망재단 제공

■ ‘자립’의 떡잎, 나무로 숲으로

“‘우리도 뭔가 할 수 있다’는 의욕이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퍼져갔어요.”

여성 인권 인식이 낮은 네팔 타플레 마을의 ‘마하락시미 여성 협동조합’ 란지타 타파 조합장은 “협동조합과 신협을 조직하면서 우리 스스로 기적을 써내려 가게 됐다”고 강조했다. 마을은 현지 협력단체 SoD Nepal과 재단의 도움으로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추진된 ‘살기 좋은 타플레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통해 변화했다.

마을 여성들은 기존 소규모 조합들을 통합해 마하락시미 여성 협동조합을 구성했다. 조합 수익의 5%를 마을발전기금으로 저축하고, 예산으로 장학사업 등을 스스로 펼치며 완전한 자립으로 나아가고 있다. 2015년 네팔 대지진 진원지에 있는 마을은 코로나19 팬데믹 등 재난이 연거푸 덮쳐 10년이 지난 지금도 재건을 못 마칠 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렇듯 캠페인을 통해 아프리카, 남아시아 등지 지구촌 가난한 이웃들이 협동조합 등 자조 공동체를 꾸려 자발적으로 자립 노력을 기울인다. 한때는 재난과 내전, 기후위기의 직접적 피해자로 내몰렸지만, 모두가 모아준 물(일시적 지원)을 나무(실질적 자립)로, 또 숲(지속 가능한 자립)으로 가꿔간다.

1993년부터 2005년까지 내전으로 사회기반시설 미비와 총체적 빈곤(국민 80%가 절대빈곤층)에 내몰린 부룬디의 5개 마을이 스스로 서고 있다. 재단은 2014년 카루라마를 시작으로 2016년 카그웨마, 2017년 무진다, 2019년 무쿤구·카마카라 마을 5개 마을공동체를 개발했다. 이는 가정소득 창출을 위한 비누 사업을 시작으로 생산자 협동조합으로 확장됐다. 각각의 협동조합은 농업, 봉제업 등 소득증대사업 창출을 넘어 마을 내 식수시설, 학교, 마을발전센터를 조성했다. 더욱 지속 가능한 발전과 연대·협력을 도모하며 협동조합 연합체까지 스스로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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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룬디 카그웨마 마을 주민들이 마을 생산자 협동조합이 세운 마을발전센터에서 봉제를 하고 있다. 주민들은 센터에서 봉제 기술 훈련을 받아 봉제업으로 안정적인 소득을 창출하게 됐다. 한국희망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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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 엔데베시 마을 주민들이 한국희망재단의 마을생계자립사업을 통해 마련된 마을 식수시설에서 물을 긷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이전에 이들은 매일 왕복 3시간 이상 걸어 흙과 이물질이 섞인 물을 길어다 써야 했다. 한국희망재단 제공

기후위기로 목초지를 잃고 강제 이주한 탄자니아 엔데베시 마을의 마사이족은 자립을 위해 사회 기반 시설 구축에 나섰다. 2013년 재단의 마을 생계 자립 사업에 참여하며 식수시설을 갖추고 학교와 마을발전센터, 보건소를 열었다. 이를 바탕으로 과거 한국의 ‘계’와 유사한 마을 은행을 스스로 조직했다. 2022년 세워진 주민 협동체 및 마을 은행 조직 ‘VICOBA’다. 아직 협동조합의 형태를 온전히 갖추지는 못하고 있지만, 여성들은 발생한 수익금을 공동 분배하고, 일부는 마을 은행 자본금으로 재투자하고 있다.

재단 국제개발협력 사업을 총괄하는 이상준(알렉산데르) 상임이사는 “이렇듯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자립 의지가 없는 게 아니라 딛고 일어설 기반이 없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재단이 현재 사업을 펼치는 16개 아프리카·아시아 국가는 내전 등 정치적 불안 때문에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를 자주 받아 물가가 급등하고 국가 부채가 많다. 특히 연료비가 폭등하면서 건축비도 크게 올라 사회 간접 자본(도로, 항만 등) 확충조차 어렵게 된다. 천연자원이 많은 나라도 그를 개발할 시설을 짓지 못하고, 희망을 코앞에 두고 발전 의지를 잃는 것이다.

이 상임이사는 “해외 원조는 불의와 폭력의 산불이 꺼지지 않는 지구촌에 꾸준히 물을 길어 붓는 공동선 실천”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작은 마을 하나가 자립하면 주변의 다른 마을들을 도우며 더 큰 자립을 가져온다”며 “이렇듯 해외 원조란 단순한 인도적 동기를 넘어 지구적인 선순환의 씨앗을 심는 봉헌임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박주현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