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에서 간행한 「천주교용어집」에는 세례명(洗禮名, 라틴어 : nomen baptismatis, 영어 : baptismal name, Christian name)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세례명은 가톨릭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세례 때 새 이름을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남을 뜻한다. 세례명은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고 애쓴다. 흔히 본명이라고도 한다.”
박해시대 때 세례명은 「사학징의」(邪學懲義)나 ‘추안급국안’(推案及鞠案)에서 죄인들이 범죄 사실을 진술한 공초 기록에 많이 나타난다. 「사학징의」 공초에서 유관검은 세례명에 대해 진술하기를 “서양의 도가 높은 사람의 이름을 본떠 짓는 것(報名段, 擇其爲學頗勤之人)”이라 했고, 정복혜(칸디다)도 “사호를 부르는 것은 죽은 뒤에 좋다고 해서 짓는 것(盖称號者, 死後爲好云)”이라 진술했다. 이렇듯 세례명은 시대에 따라 보명(報名), 사호(邪號), 별호(別號), 성명(聖名), 본명(本名), 영명(靈名) 등 다양하게 불려 왔다.
한국교회 초기의 세례명은 중국에서 활약한 예수회 선교사 드 마이야(J.de Mailla, 溤秉正, 1669~1748) 신부가 1년 365일 매일 그날에 선종한 성인들의 전기를 수록한 「성년광익」(聖年廣益, 1783년 발행)에 따라 정했다. 그러나 한자음에 대해 충분한 연구 없이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오역의 세례명도 다수 생겨났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복자 권상문(權相問, 1769~1802)의 세례명이다. 샤를르 달레 신부가 1874년 쓴 「한국천주교회사」에 기록된 권상문의 세례명은 ‘세바스티아노’(Sebastianus)인데, 「성년광익」에 따르면 ‘파사제앙’(巴斯第盎)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문초기록인 ‘추안급국안’(推案及鞠案) 1801년 2월과 3월의 기록에 따르면, 정약용과 주문모 신부는 각자의 공초에서 진술하기를 권상문을 ‘권파서’(權巴西), 혹은 ‘권파서략’(權巴西略)이라 했다. 파서(巴西)나 파서략(巴西略)은 ‘바실리오’(Basilius)다. 따라서 권상문의 세례명은 ‘세바스티아노’가 아니라 ‘바실리오’다. 달레 신부의 기록보다 무려 70여 년이나 앞선 기록이고, 또한 동시대 사람의 증언이므로 달레 신부의 기록은 마땅히 수정되어야 한다.
그동안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에서 수년 동안 복잡한 절차에 따라 수없이 많은 연구와 검토를 했지만 가장 기본적인 세례명조차 대수롭지 않게 대강 보아 넘긴 점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미 복자 지위에 올랐고 장차 성인 반열에 오를 분의 세례명을 달리 기록하고 부른다면 말이 되겠는가? 또 일생 동안 그 복자나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분의 덕행을 본받고자 하는 신자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혹여 교황청까지 보고 되어 복자위에 올랐으니 세례명을 수정하지 말고 넘어가자는 주장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그대로 방치하고만 있을 것인가?
김춘수 시인의 시 <꽃> 중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구절이 있다. 꽃 중의 꽃이 되신 천상의 복자시니 참으로 더욱 송구할 따름이다.
글 _ 박용식 스테파노(수원교구 북여주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