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흑인이 백인들만 들어 갈 수 있는 아름다운 성당 앞에서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를 한다. “주님, 저 아름다운 성당 안을 꼭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러자 주님께서 나타나시어 “너무 애통해 하지 마라. 나도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라고 답하셨다는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신자에 따라서는 느끼는 바가 클 수도 있다.
오랜 시간 성지 안내 봉사를 해 오면서 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잘 가꾸어진 성지는 우리 것이 없어지고 유행 따라, 개인 취향 따라, 욕심 따라 낯선 모습으로 순례자들을 어색하게 반긴다는 것이다. 새로 지어지는 성전은 화려한 유리화와 고급진 소품들로 채워진다. 박해시대 신앙선조들의 끔찍한 가난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듯하다. 눈으로 보는 화려함에 모두들 눈이 먼 듯하다. 좁은 방바닥이 꺼질까 다닥다닥 붙어 앉아 미사 드리던 어느 성지 옛 건물은 없어지고, 미안한 듯 우리를 반기는 드넓은 논에는 골프장처럼 고운 잔디가 입혀져 있다. 옛 선교사들이 들여온 채소인 크레송(Cresson, 물냉이)이 지금도 도앙골 도랑에서 순례객들을 반기는 모습에서 위안을 얻는다.
부엉골 신학교 터를 찾아 현장에서 설명을 들으면 감격스럽다. 우리는 웅장함과 화려함보다는 소박함과 부족함을 좋아해야 하지 않을까. 커다란 건물과 일본식 정원으로 관광지화 되어 가는 성지와 볼 것, 먹을 것, 쉴 곳 찾아 편승하는 관광 순례객들을 보곤 한다. 갈 때는 거룩하지만 돌아올 때는 음주와 고성방가로 신나는 본당 성지순례를 원하는 신자들도 본다. 가끔은 순교영성보다 헌금을 설명해야 하는 사제들도 있다.
신자와 순례객이 줄어도 대형 성지를 운영해야 하는 어려움 앞에 답답한 현실이지만 부끄럽게도 나이가 들면서 나 자신도 비겁한 방관자가 되어 가는 듯하다. 어머니 품속 같이 편히 쉬고 다시 찾고 싶은 성지가 그립다. 10년 전쯤 천주교 신자가 아닌 초면 다큐 작가와 1박2일 성지를 찾아 나선 적이 있었다. 천주교 쪽에서 필요한 다큐를 만드는 사진작가로 왔으니 기록으로 남길 만한 성지를 소개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어색한 분위기도 풀 겸 한국 천주교회사를 조금씩 설명하고 배티성지를 가자고 했더니 다큐 작가는 배티성지는 이 다큐를 찍으려고 아무 지식도 없이 혼자 다녀 온 곳이라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다큐 작가가 배티성지에 늦은 오후쯤 도착을 하니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이 6인 묘소였다고 한다. 금방 다녀올 줄 알고 출발을 했는데 처음에는 경치에 취했다가 묘소 앞에 도착해 정신을 차리니 어두컴컴한데 무덤만 있어 너무 무서워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듯했단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제가 천주교에 대해 좋은 것을 알리려고 왔으니 여기 계신 분들이 저 무섭지 않게 해 주시라” 말했다며 웃었다. 그동안 성지 안내를 하면서 지식 전달과 안전에만 급급해 중요한 것들을 놓친 건 아닌지, 비신자 다큐 작가가 본 성지는 어떤 곳이며 그가 이해하는 순교자들은 누구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순례자라면 내가 방문한 성지에 작은 초 하나라도 봉헌해서 누구 탓하기 전에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성지를 우리 스스로가 보존해야 한다. 어느 순례 자가 성지 설명을 듣고는 모진 고통과 굶주림을 참았던 신앙 선조들 생각에 점심은 아주 조금만 먹었다고 했다. 어떤 방식이든 신앙은 각자의 몫이지만 우리들은 하느님 진짜 사랑으로 살아가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자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 _ 이래은 데레사(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