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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렘 신부 편지로 알아보는 안중근 의사

박지순
입력일 2025-03-25 17:41:44 수정일 2025-03-25 17:41:44 발행일 2025-03-30 제 3435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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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활동·독립운동 등 담겨…죽음 앞 의연한 모습도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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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렘 신부, 안중근을 기록하다」 표지

안중근 의사(토마스. 1879~1910)는 독립운동가이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신앙을 지킨 가톨릭신자이기도 하다. 파리 외방 전교회 빌렘 신부(Nicolas Joseph Marie Wilhelm, 1860~1938)는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26일 중국 뤼순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하기 전후의 행적을 다수의 편지에 남겨 놓았다. 빌렘 신부의 편지 내용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독립운동가이자 신앙인으로서 안 의사의 면모를 자세히 알 수 있다.

안 의사와 관련해 빌렘 신부가 쓴 편지들(연례 보고서 포함)은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조한건 프란치스코 신부, 이하 연구소)가 2020년에 펴낸 「빌렘 신부, 안중근을 기록하다」에 1896년 12월 6일자부터 1914년 2월 12일자까지 날짜순으로 모두 26통이 수록돼 있다. 또한 아직 정식으로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빌렘 신부가 1910년 6월 24일자, 1910년 9월 28일자로 작성한 편지 등도 연구소가 초벌 번역해 놓은 상태여서 연구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연구소가 번역한 빌렘 신부의 편지들은 안 의사가 가톨릭 신앙을 키운 장소인 황해도 청계동본당에서의 신앙활동, 아버지 안태훈(베드로) 등 안 의사 가문의 사람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전 안 의사의 독립운동, 거사 후 순국을 앞둔 시점에서 빌렘 신부와 안 의사의 만남, 안 의사 순국 후의 상황 등을 자세히 전해준다.

빌렘 신부 편지들 중 안 의사의 행적을 직접적으로 기록한 것으로는 1906년 2월 23일자를 우선 꼽을 수 있다. 이 편지에서 빌렘 신부는 안 의사가 1905년 반일운동을 위해 갑자기 중국 상하이로 떠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한 빌렘 신부가 작성해 조선대목구장이던 뮈텔 주교에게 보낸 1910~1911년 연례 보고서에서는 “제가 어느 사형수에게 목자의 의무를 이행하러 갔다는 이유로 주교님께서 내리신 60일간의 성무 집행 정지 처분에 대해 저는 작년 보고서에서는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았습니다”라고 기록했다. 이것은 빌렘 신부가 뮈텔 주교 허락 없이 1910년 3월 9일 중국 뤼순 감옥에서 안 의사에게 고해성사를 집전해 징계를 받은 사실을 가리킨다. 빌렘 신부는 같은 보고서에서 “주교님께서 이 사형수에게 하신 터무니없고 가혹하며 교회 법규에 반하는 말도 안 되는 그 성사 거절에 대해 변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안 의사에게 고해성사를 집전한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항변하고 있다.

안 의사가 순국한 이후인 1912년 3월 19일 작성한 편지에서는 1910년 3월 8일부터 11일까지 안 의사를 면회하던 상황을 기록했다. 이 편지에는 안 의사가 같은 해 2월 17일 빌렘 신부에게 전보를 보내 “사형선고 받음. 급히 오십시오”라고 요청한 사실, 빌렘 신부가 뤼순까지 가는 시간을 배려해 사형 집행 당국에서 사형 집행일을 본래 2월 26일에서 그해 성 금요일인 3월 25일로 연기한 사실도 적혀 있다. 안 의사는 3월 26일 순국했다. 편지를 보면, 빌렘 신부는 3월 8일 안 의사를 면회하기 위해 처음 대면할 때 “아, 가엾은 토마스, 자네를 여기서 만나다니!”라고 탄식했다. 같은 날짜 편지에는 안 의사가 1910년 3월 26일 의연하게 교수형 집행을 당하던 장면도 묘사돼 있다.

아직 정식 출판되지 않은 1910년 9월 28일자 편지를 통해서도 안중근 의사에게 성사 집전을 허락하지 않은 뮈텔 주교에 대한 빌렘 신부의 비난, 안 의사 가족들이 빌렘 신부에게 급히 뤼순으로 와달라고 간청했던 사실, 안 의사가 어머니의 말에 따라 1심 판결에 항소하기를 거부했던 강직함을 읽을 수 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