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한티성지가 안겨준 선물

민경화
입력일 2025-04-23 09:52:44 수정일 2025-04-23 09:52:44 발행일 2025-04-27 제 343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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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는 반드시 하느님의 이끄심이 작용해야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성지순례를 다녀온 사람들이 누구나 할 것 없이 그 성지의 홍보대사가 되는 것을 보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래 전, 나는 어느 수도회의 제3회 봉헌자가 된 기념으로 대구의 한티성지에 갔다. 삐뚤삐뚤 늘어선 그곳의 무덤들은 순교자들이 치명된 바로 그 자리에다 흙을 덮어 봉분을 만든 결과라 했다. 박해를 피해 세상과 단절된 오지를 찾아 옹기종기 주님과 함께 살려고 했으나, 그 소박한 꿈마저도 사냥개 같은 군졸들의 광기에 무참히 동강나고 말았던 현장. 거룩한 영혼들은 모두 부활해 떠나고, 지금은 고요한 평화가 되어 골짜기의 공기를 메우고 있었다. 무덤들 사이로 이어진 십자가의 길 기도처에서는, 순교의 전날, 하느님과 동거하며 평화로웠던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들려오는 듯해서 맥없이 주저앉기도 하였다.

순교자들이 꿈꾸었던 지상의 평화를 묵상하고 있는데, 발 아래로 미니어처같이 나지막한 초가들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의 소유를 최소단위로 축약하고 외부와 단절하며 지냈던 모습에서 오로지 하느님만 바라보며 살겠다는 다짐이 진하게 전해져 왔다. 비록 생존을 위해 내몰린 마지막 도피처였지만, 이것이 바로 지상에서 꿈꾼 마지막 정주의 모습이었음이 분명했다. 하느님의 일을 일상의 중심에 두겠다는 봉헌의 삶, 발 달린 동물이 뿌리박은 식물처럼 살겠다는 각오를 정주 서원이라 하지 않던가?

우리 일행은 한 명씩 십자가의 길 묵상을 자유기도로 바쳤다. 나는 기도할 때만큼은 미리 말마디를 준비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데, 다른 일은 몰라도, 하느님의 뜻을 알고 싶은 것이 기도라고 생각되어, 순서가 닥치면 그때 입을 열어 성령이 시키는 대로 말해볼 요량으로 그런다. 마침내 나의 순서가 왔다. “제13처, 십자가에서 내려지심을 묵상합시다. 살아가는 곳이 바로 순교할 곳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려고 주님께서는 저를 이곳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주님! 저는 아직도 정주할 거처를 찾지 못한 나그네이오니, 허락하신다면 제게 당신이 인도하시는 곳에서 당신과 결합하는 삶을 살게 해주소서!”

그로부터 한 달쯤 뒤, 일행 중의 한 분이 전화를 했는데, 나의 정주를 위해 줄곧 기도하다가 모종의 계시를 받았다고 그런다. 지금 어디로 가서 누구를 만나보자고 그런다. 그러고 난 뒤에 또 기도해 보자고 그런다. 나는 단지 기도만 했을 뿐, 아직 땅을 살 돈을 준비하지는 못했다고 하자, 계약금을 빌려주겠다고 그런다. 나머지는 하느님의 일이 되도록 기도만 하면 된다고 그런다. 세상에, 나도 모르게 세상에…. 아무튼 그렇게 얼기설기 교묘히 이가 맞물리면서 지금의 작업장 ‘해노비듣’이 지어지게 되었다. 나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면 그건 분명 선물이다. 선물을 받은 사람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선물이 될 꿈을 꾼다. 나에게 일어난 그 기적을 그림으로 엮어, 몇 년 동안 가톨릭 뉴스 사이트에다 ‘하삼두의 정주일기’를 연재했다.

한티성지는 내게 삼랑진의 작업장 ‘해노비듣’을 선물로 주었다. ‘해뜨면 노래하고 비오면 듣지요’를 압축한 ‘해노비듣’을 당호로 짓고, 선물을 준비하듯 자연채집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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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하삼두 스테파노(명상그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