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세계교회사 100대 사건 -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86) 루르드 성모 발현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3-08-10 수정일 2003-08-10 발행일 2003-08-10 제 2360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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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라!” 내적치유 이끌어
1858년 2월 11일 프랑스 남서부 피레네 산맥 북쪽 산기슭에 위치한 조그만 도시 루르드. 정오께 어머니를 대신해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14세의 벨라뎃다라는 한 어린 소녀가 나무와 짐승의 뼈를 줍기 위해 강둑을 따라가고 있었다.

다른 두 명과 함께 마을에서 서쪽으로 1㎞ 가량 떨어진 가브 강변의 동굴 근처로 간 벨라뎃다는 강을 건너기 위해 신발을 벗다가 이상한 소리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사방은 고요했고 나무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벨라뎃다는 마사비엘이라 불리던 동굴의 움푹 들어간 자리에서 머리 위로 빛이 나고 흰 옷에 하얀 베일과 파란 색 허리띠를 두르고, 양 발 위에는 노란 장미가 있는, 한 젊게 보이는 여인을 보았다.

놀란 벨라뎃다는 미소를 지어보이는 부인 앞에서 잠시 묵주기도를 바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비밀을 지켜줄 것을 약속받고 언니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었으나 비밀은 오래 가지 않았고 어머니에게 두 소녀가 모두 혼찌검이 났다.

벨라뎃다는 그러나 며칠 뒤, 14일과 18일에 또 다시 동굴 앞으로 갔고 그 여인에게서 『앞으로 15일 동안 매일 이곳에 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19일 금요일부터 3월 4일 목요일까지 매일 아침 동굴로 갔다.

그 동안 벨라뎃다는 2월 22일과 26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여인을 만났고 여인은 벨라뎃다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했다. 8월 24일 여인은 『회개하시오. 죄인을 위해 기도하시오』라고 메시지를 전했다.

여인의 메시지는 기도와 보속, 그리고 특히 회개의 증표가 보이는 회개가 그 핵심이었다. 여인의 메시지는 계속됐다.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무릎을 꿇고 땅에 입을 맞추어라』 『샘물을 마시고 씻어라』

13일째인 3월 13일에는 『사제들에게 알려 이곳에 사람들이 몰려오게 하고 성당을 짓게 하라』고 일렀다.

곧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몰려 들었다. 하지만 기적을 고대하던 사람들은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고 실망해 흩어졌다.

하지만 마침내 3월 25일 벨라뎃다가 다시 동굴로 갔을 때 여인은 처음으로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나는 원죄 없는 잉태이다』(Imma culata Counceptio).

루르드는 무엇보다도 회개와 보속을 통한 내적 치유라는 참된 의미의 기적을 만들어내는 순례지이다. 요즘도 루르드에는 매년 400만명에 달하는 순례객들이 찾아온다.

원죄 없는 잉태

성모 마리아가 잉태의 첫 순간부터 원죄의 모든 흔적을 받지 않았다는 원죄 없는 잉태의 교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교회 안에 내려왔다. 초대 교회 교부들은 성모 마리아를 거룩하다고 생각했으나 원죄의 흔적이 없다고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원죄 없는 잉태 신심이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동방교회와는 달리 서방교회에는 서서히 퍼지면서 수세기에 걸쳐 논의돼왔다. 그러다가 마침내 교황 비오 9세는 마리아가 잉태의 순간부터 죄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교의를 선포했는데 그것이 바로 루르드 발현 4년 전이었다.

이에 따라 루르드의 성모 발현은 교회의 원죄 없는 잉태 교의를 확인시켜준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후 벨라뎃다는 4월 7일과 7월 16일 다시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볼 수 있었는데, 촛불이 그녀의 손가락 위에서 오랫동안 타들어갔지만 전혀 상처를 입지 않는 기적이 있었다.

발현의 진위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다. 타르브 교구장 로랑스 주교는 벨라뎃다의 증언, 기도와 회개 운동, 그리고 많은 치유 기적에 근거해 1862년 1월 18일 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천주의 모친이 마사비엘 동굴에서 벨라뎃다 수비루에게 18번에 걸쳐 발현했다』는 이 인정서를 통해 주교는 교구 내 신자들에게 루르드 성모에 대한 공경을 허락했고 메시지의 요청에 따라 성당을 동굴 위에 세울 것을 발표했다.

한국교회의 수호성인

루르드의 성모는 한국 교회와도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 한국교회의 수호 성인은 성 요셉과 함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이기도 하려니와 한국 신자들의 각별한 성모 신심을 바탕으로 교회 곳곳에 성모님에 대한 깊은 신심이 깃들어 있다.

예컨대 한국교회에서는 성모와 관련된 내용을 수호자로 모신 본당이 200군데가 넘고 그중에서도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를 수호자로 정한 본당이 20곳이 넘는다.

오늘날 루르드에는 매년 약 400만명에 달하는 순례객들이 찾아온다. 수많은 순례객들 중에는 환자들도 많고 이들 중에 병이 치유되는 사례들이 종종 보고됐다. 특히 1866년부터 발간되는 「루르드 연보」에 따르면 1905년까지 모두 2천여건에 달하는 기적적인 치유 사실들이 증명됐다.

루르드는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호텔이 많은 지역이 됐다. 400여개에 가까운 숙소들이 들어서 있고 야영 장소만도 20여개에 달한다. 여름철이면 이곳을 찾은 순례객들이 보내는 엽서가 무려 700만장에 달한다고 한다.

특히 루르드에는 휠체어를 타고 온 환자와 늙고 허약한 노인들, 정신박약아나 지체부자유아 등 전세계에서 온 환자들로 붐빈다. 또 이곳에서 봉사를 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수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루르드는 이처럼 질병의 치유를 위해 찾는 사람들에게 기적을 선사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회개와 보속을 통한 내적 치유라는 참된 의미의 기적을 만들어내는 순례지이다.

박영호 기자